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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Aug 06. 2022

매미와 중경삼림의 상관관계

이름 바꾼 기념으로


얼마 전 구매한 중경삼림 LP가 도착했다. 사실 나오자마자 사고 싶었는데, 늘 한발 늦고 말아서 번번이 기회를 놓치다가 다시 재발매된다는 소식을 듣고 재빠르게 주문을 해서 얻었다. 중경삼림은 그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일 뿐, 미친 듯이 돌려보거나 하지 않은 유일한 영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 싶었던 이유는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듣기 위해서였다.


아빠는 수집광이었다. 모양이 특이한 성냥갑을 모으기도 하고, 기상천외한 조각상도 모으곤 했다. 이 모든 건 해외출장이 잦은 직업이라 가기 힘든 곳도 자주 누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초등학교 4학년 때 쿠웨이트를 처음 알았다. 어디에 있는지도 가늠이 안 되는 그런 나라에 아빠는 훌쩍 떠나 장기간 머물다가 다시 훌쩍 돌아왔다. 그러면 희귀한 향초라든지, 진짜 코끼리 상아로 만든 장식품이라든지, 원주민들이 쓴다는 가면, 그 나라의 화폐까지 온 집안에 가득히 쏟아졌다. 옆에서 그것을 관망하며 이게 외국이구나 생각하는 것에 그쳤다. 모험심도 부족한 소심한 아이 었으니까 그 끝도 없는 세계가 궁금하지 않았다. 아빠가 들려주는 그 나라의 향신료 이야기, 관광지 이야기 모두 심드렁하게 듣고 흘렸다.


아빠의 수집이 사실 달갑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세계는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폐쇄적이었다. 그만큼 나의 세계를 침범받는 일도 싫었고, 굳이 타인의 세계를 침범하거나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유일하게 달가운 아빠의 수집은 LP와 테이프였다.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나는 중경삼림의 삽입곡인 줄도 모르고, 아빠의 테이프 진열장에 서서 하나씩 카세트에 넣어보다 발견하게 되었다. 아바, 스콜피온, 발음도 어색한 샹송을 지나 마음에 딱 꽂힌곡은 캘리포니아 드리밍뿐이었다.


영어 카세트를 넣고 발음을 반복해서 넣으라고 사준 카세트의 기능을 노래를 돌려 듣는데 썼다. 어린애가 뭘 안다고 노래가 쓸쓸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나이가 들어서 중경삼림을 보던 중 우연히 다시 만난 것이다. 영화의 감동을 잊을 만큼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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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사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건 순화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비슷한 습성이 묻어 나올 때마다 스스로를 다그쳤다. 혹시라도 물려받은 성정일까 봐 신경이 쓰일 정도로 어느 순간 먼 사람이 되어있었다. 나이가 들어 씨디를 사들이고 LP를 기어코 모으게 된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론 자괴감이 들었다. 내 취향이 꼭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엄마가 사라지고 7년 정도의 시간을 미워했다. 엄마를 사라지게 만든 장본인이 나였다가 아빠였다가 외할머니였다가 결국 아빠였다가 다시 나로 귀결되는 시간을 거치자 끝없는 자기 비하가 이어졌다. 그 자기 비하 속에서 아빠는 단 한 번도 위로한 적 없는 사람이었다. 생각해보면 아빠는 나에게 늘 부재중이었다. 누군가는 부재는 존재를 증명한다고 말했지만, 아빠에겐 해당되지 않는 말이라 생각했다. 중요한 순간에 항상 사라져 있는 사람은 존재를 증명할 수도 없다.


그래서 아빠와 닮은 모든 죄 없는 것들을 미워했다.

그에게서 건네받은 것들을 좋아하기가 싫었다.

취향을 의심했고

성격을 의심했고

자신을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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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친구가 뜻밖의 말을 건넸다. 7년의 시간 동안 매미는 땅속에 있다가 땅 위로 올라와 짝짓기를 끝내면 대략 7일 정도만 살다가 죽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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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시간을 땅속에 있으면서 스스로를 의심한 시간이 생각났다. 다시 땅 위로 올라와도 꿀이라도 바른 듯 자꾸만 땅으로 들어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중경삼림 LP를 받아서 듣는데 막상 기쁘지가 않았다. 마치 스스로가 매미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단 7일을 살아도 주어진 역할이 있다면 그것을 해보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매미가 여름 내 우는 것 같아도 사실은 일주일 남짓 울다 사라지는 것처럼. 사라질 것들은 사라진다는 이유만으로도 맘껏 사랑하는 게 가능하다.


처음으로 죄 없는 습관이나 취향을 미워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아빠와 닮은 모습은 정말이지 죄가 없다. 음악을 좋아하고 영화를 사랑하는, 하나를 시작하더라도 제대로 시작하려 하는 그 고집스러움이 어차피 여름 내내 아니 평생 이어질 거라면, 마음껏 울고 싶었다. 이게 그냥 나라고. 애초에 침범당한 세계가 아니라고.


한편으론 사랑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자책하고, 증오하고. 이 모든 감정들이 별개였음 어떨지 덧없는 생각을 했다. 차곡차곡 땅속에서 쌓아 올린 감정들이 쭉 뽑아 올리면 미친 듯 딸려오는 뿌리가 가득한 줄기가 아니라 한알씩 떨어지는 살구 같은 건 안될까. 눈물이 핑 돌만큼 시린 맛이더라도 기꺼이 먹어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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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먹어도 잘 안 되는 일들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굳이 바꿀 용기는 나지 않는다. 그래서 숨기기로 한다. 숨기는 건 언제나 익숙하고 익숙한 건 편안하다. 마치 늘 가던 길로만 집에 가는 것과 같다. 우울이 전염병과 같아서 주변 사람을 병들게 만들거라 생각하며 오늘도 해오던 대로 권태롭게 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사실 가끔 마구 화를 내거나, 마구 울고 싶다.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을 길가에 멈춰 세운 뒤에 감정을 다 토해내고 온 세상의 욕을 다 처먹고는 미쳤다고 손가락질받고 펑펑 울고 싶다.

울만한 핑계를 늘 찾고 있다. 핑계를 찾는다는 명목이 가끔 서럽다. 서럽고 지긋지긋해서 도망치고 싶었다. 누구보다도 나와 멀어지고 싶었으나 나는 너무나도 나여서, 항상 징그럽게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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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의 마음이 되어 다시 노래를 듣는다.

문득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다면 나는 만년으로 하고 싶다'라는 제일 좋아하지 않는 대사가 떠올랐다. 너무 유치한 대사는 어쩐지 몰입을 깬다. 그런데 어지간히 마음이 힘든지 유치한 대사가 단박에 떠올랐다. 매미는 본인의 유효기간을 알았을까? 몰랐을까? 굳이 찾아보지는 않았다. 알았다 해도 납득이 가고 몰랐다 해도 납득이 간다.


사랑의 유효기간을 만년으로 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유효기간을 알아도 울고, 유효기간을 모르더라도 힘차게 울어댈  같은 매미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살아가는 미래를 꿈꿨다.


금성무가 말했지. 사람은 변한다고 어제 파인애플을 좋아했던 사람이 오늘은 아닐 수도 있다고.


매미의 울음이 잦아드는 여름이 끝나면 변해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땐 내 것을 내 것이라 울부짖고, 징그러운 나와는 가끔 떨어져 있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갈 수도 있다. 늘 노래로만 듣던 캘리포니아에 갈 수도. 한 겨울에 캘리포니아를 꿈꾸는 허무맹랑한 노래 가사처럼. 살아있는 모든 것에 경외를 표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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