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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상담을 그만두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나의 장점이자 단점은 마음을 먹기 까지는 애를 먹지만, 한 번 마음먹은 일은 쉽게 바꾸지 않는다는 점이다. 장점이 될 때는 마음먹은 일을 언제까지고 해내려는 성실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고, 단점이 될 때는 그 마음먹은 일이 설사 잘못된 길이더라도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험을 감수하는 성격이 아니기에 쉽사리 잘못된 길로 드는 과오를 범하지는 않지만, 쓸데없는 고집이 있어 감정적인 측면에서 가끔 한없이 땅굴을 파고든다는 점을 인정하는 바이다.
나를 너무나도 좋은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지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생각보다 강하지 않고, 생각보다 친절하지 않고, 생각보다 옳지 못한 사람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더 암울하고 어두운면이 많다. 모두가 쓰는 사회적 가면 속에 적절히 진짜 모습을 숨기고 살아가고 있다. 다만, 그 숨기는 모양이 너무나도 뛰어나서 문제이지만. 아주 오랫동안 회피하는 방법만이 최고의 안전함이라 여겼기 때문에 그 방법을 한 번에 폐기하기란 아무래도 무리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정말 힘든 순간을 지나고 있을 때는 절대로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않는다. 설사 그게 가족일지라도. 사소한 투덜거림이 아닌 감정이 뒤흔들리는 아픔은 어쩐지 말할 수 없다. 지난 과거를 가만히 뒤져보아도, 단 한번도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해 본적이 없었다. 누군가는 정말? 그럼 힘들때는 어떻게 해? 라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힘들때는 혼자 동굴을 파서 거기에 들어가서 있는것이 가장 편하다. 오히려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하는게 힘들다. 나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고난의 순간을 누군가와 나누는 일이다. 내 안에서 어느정도 감정이 갈무리가 되면 차라리 말할 용기가 생긴다. 말할 에너지가 없는것도 가장 큰 이유지만, 굳이 용기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내 안에 두려운 감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놓았을 때 그것을 수용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내 안에는 존재한다. 그리고 그 원인을 상담을 하며 찾아냈다. 막연히 안개처럼 쌓여있던 두려움의 근본. 근본을 찾는것만으로도 사람은 안정이 된다는 걸 느꼈다. 마치 공포영화에서 귀신이 다가오기 직전이 가장 공포스럽고 막상 귀신을 마주치면 공포는 결국 끝날일 만을 남겨두는 것 처럼. 원인을 알고나니 조금의 실마리를 잡은 느낌이었다.
선생님은 어린시절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아 본 경험이 없어서 두려움이 커진것이라 말했다. 일리있는 원인이었다. 우리 가족의 분위기는 늘 각자가 바쁜 느낌이 강했다. 가족이라기 보다는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모인 집단과도 같았다. 그 목표가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같이 행복하자고 모인 집단이 가족이라고 생각했는데, 감정적 교류는 늘 배제대상이었다. 각자 일만하고 서로 사적인 교류는 하지말죠. 라고 말해주는 꿈의 회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하는데, 그 꿈의 회사가 나의 가족이라고 설명하면 이해가 쉬울까?
그리하여 항상 감정의 교류에 허기져있었다. 그리고 끔찍한 결론에 도달하는데, 용기를 낸다는 건 한 개인의 성향에 맡길 문제는 아니라는 것. 제 아무리 용기가 있는 사람이어도 반향이 없는 용기는 비극에 불과하다고. 그 비극의 결말은 늘 자기혐오로 이어지고 만다.
스스로의 용기를 의심하고 주변의 환경에 적응하려 애쓰며 체념한다. 고유의 색을 지키며 따돌림을 당하느니 기민하게 카멜레온 처럼 모습을 바꾸고 감정을 숨기는 편이 훨씬 쉽다. 용기를 낸다는 건 그리하여 복잡다단한 일이다. 굳이 쉬운 길을 저 멀리 던지고 어려운 길로 내딛는 뚝심이자, 지리멸렬한 과정을 완주할 수 있는 지구력이 필요함을 뜻한다.
혼자서 판단할 때는 충분히 지구력이 있는 사람이었으나, 그 용기에 대한 응답이 고요할 때마다 물을 잔뜩 섞은 커피처럼 밍숭맹숭 해졌다. 잠을 깨든, 맛이 있든 둘 중의 하나의 역할을 해야 비로소 커피인것 처럼 역할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었다. 위로를 받든, 고립되든 그 기로에 놓였을 때 택한것이 고립이었다.
누군가에게 고립은 막막함에 눈물이 차오르는 것이라면, 나에게 고립은 가장 편한 안식처이다. 더 이상 비난을 듣지 않아도 되는 상태. 다수의 비난보다 스스로에게 화살을 돌린 나 하나의 비난이 더 견딜만했던 시간들. 그래서 감정을 숨기는 일과 자기혐오는 뗄레야 뗄 수 없는 한쌍의 신발처럼 늘 걸음을 같이 했다. 늘 같은 속도로 발걸음을 맞추며 번갈아 가며 찾아왔다. 싸울의지를 상실한 병사처럼 무거운 걸음걸이를 질질 끌며 하루의 끝에 도착하면 반가운 한숨과 눈물이 친구처럼 맞이해준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 시간이 유일한 위로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어김없이 도망치고 싶었다. 극단적인 생각으로 내몰릴 때는 나만 사라지면 모든 게 해결될거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엔 이 말을 상담 때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이 말을 선생님께 전하니 무슨 의미로 말하는지 알고계시죠? 제가 생각하는 그런 의미가 맞냐고 말씀하셨다. 그 의미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서 탈이었다.
선생님은 오늘 가장 잘한 일이 그만 두고 싶다는 마음을 먹은것을 직접와서 전하려 했다는 것이라 말했지만, 사실 나의 계기는 거창하지 않았다. 아주 큰 용기를 낸 것이 아니었다. 처음엔 전화로 통보하려 병원에 전화를 걸었더니, 상담을 그만둔다는 것을 하루 전에 통보하는 것은 규칙상 맞지 않는다는 말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저 규칙이고 나발이고 깽판칠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길로 들어선 것이다. 순종적인 성향이 이럴때는 도움이 되는건지. 아무튼, 상담이나 약이 없는 세계로 가고 싶었다. 마주하는 모든 것들이 온통 견딜 수 없는 것들 뿐이라 그저 멀어지려 애썼다. 이렇게 빨리 다시 끌려온 건 처음이라 어안이 벙벙하다 사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도망친 곳 끝에는 언제나 막다른 길 뿐이라는 걸. 저 멀리 내달릴 만큼 달려본 적이 있어서 익히 알고 있는 것이다. 도망치고 도망치다 보면 처음엔 따라와주던 사람들도 모두 걸음을 멈추고 결국 혼자 남아 눈물짓는 다는 것. 그리고 더 멀어지면 되돌아 오는길이 너무 지쳐서 두렵다는 걸. 어릴 적 숨바꼭질을 하는데, 술래인 친구가 이미 집에 갔는지도 모르고 미련하게도 끝까지 숨어서 나를 찾기를 기다린 적이 있었다. 미끄럼틀 아래 사이 공간에서 나와보니, 이미 해는 어둑하고 정글짐의 맨 위의 경계가 하늘과 구별이 가지 않았다. 순간 들었던 감정이 가끔 기억날 때가 있다. 감정은 기억으로도 남는다고 믿는다. 어떠한 풍경, 어떠한 냄새, 어떠한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감정이 떠오른다. 똑같이 느끼진 않아도 메모리파일 처럼 한 구석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다. 그 어린시절의 감정을 시간이 흘러도 느낄 때가 있는데, 바로 도망쳤다가 돌아오는 길에서 느낀다. 늘 도망치는 일은 쉽고 돌아오는 길은 어렵다. 자명한 사실을 절박할때는 왜 잊고마는지.
상담을 그만두겠다는 나의 결심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저지당했다. 선생님이 강제로 막아도 의지를 피력할 수 있는 성인이니 나도 동의를 한 부분이긴 하다. 힘든 순간을 지나고 있을 때 누군가에게 말해본 것도 처음이고, 같이 위태로움을 직면하는 일도 처음이어서 아직은 헐벗은 느낌이다. 선생님이 별일 아닌일은 어떡하냐며 발을 동동 구르면서 이야기 하면서, 이렇게 큰일은 별일 아니라며 혼자 갖고 있으려 하는걸 아는지 물었다. 알고 있다고 순순히 인정했다. 나를 간파당해도 이제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위 내시경을 하면 구석구석 마취까지 하고 살펴보는 마당에 그것과 같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막연히 쓰고 싶던 이야기가 하나 있다. 혼자서 간직해 온 그런 비밀이야기 같은 것. 주인공이 집을 떠나 이것저것 많은 일들을 겪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세계를 만나다가 결국 집으로 다시 돌아와서 편안함을 느끼는 그런 이야기. 하지만 쓰고 싶다고 생각하고 써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집에서 시작해서 집으로 끝나는 이유는, 제일 떠나고 싶었던 장소가 사실은 발붙이고 싶은 장소였으면 좋겠다는 소망이었다. 이 이야기는 어쩌면 나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떠나고 싶던 가족과 집이라는 공간이 사실은 누구보다 절박하게 필요했음을. 나도 엄마가 아빠가 필요했음을. 다 늦은 고백을 혼자서 되뇌어 보니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스친다. 창피하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쌀쌀한 날씨에 외투가 필요하듯 그런일일 뿐이라고. 이제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