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하나만큼은 믿었는데

by 윤종현


어쩌다 보니 43살이 끝나갈 무렵이 되어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죽마고우 같은 친구라고 할 만한 녀석이 이제는 딱 한 명이 남아 있다.


사실 녀석은 내가 싫어하는 모습을 무척이나 많이 가지고 있는 놈이다. 장사꾼 타입에다 조금은 영악한 모습도 있고 약은 놈이기도 하며 이해타산을 잘하고 계산적이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좋은 점도 많은 녀석이다. 남자답고 호탕하며 의리가 있고 최소한 남에게 폐가 되는 행동은 결코 하지 않으며 아주 어릴 적부터 누구보다 정말 최선을 다해 아득바득 열심히 살아온 자식이다.


28살에 우연히 만나 친한 친구가 되어 애주가와 호색한이라는 서로의 공통점 아래 지난 15년간을 수없이 함께하며 때로는 서로를 미워하기도 하고 여러 번 잠시 동안 안 보는 사이로 지내기도 해 오며 온갖 볼 거 안 볼 거 다 본 사이이기도 하다.


그만큼 서로를 잘 알지만 몇 년 전쯤에는 주먹다짐까지 하며 크게 싸운 일이 있었다.


녀석은 스무 살 무렵부터 술집 웨이터부터 시작해서 주로 밤에 일을 하는 유흥 쪽에서만 평생을 일해온 데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바를 두 개씩이나 운영해 오면서 온갖 사람들을 지켜봐 오고 볼 거 못 볼 거 다 보아온 녀석답게 사람을 잘 믿지 않는다.


그런 놈이 흥분한 채 나와 싸움을 하며 주먹질까지 하면서 한에 맺힌 듯 무언가 말하려고 하다 말았는데 서로를 잘 아는 친한 친구였던 만큼 느낌으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너 하나만큼은 믿었는데…”


간접적으로 표현하며 말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싸움을 하며 본능적으로, 느낌으로 알아들었던 것 같았다.


사실 녀석은 어릴 적 불우한 가정사가 있었다. 아주 자세히는 모르지만 친어머니가 어떤 사정으로 집을 나가게 되시고 새엄마가 들어오신 후 고등학교 때 쫓겨나듯이 집을 나와 그때부터 혼자가 된 것이었다.


어린 나이부터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상처를 간직한 채 사회의 밑바닥부터 혼자서 세상을 살아오게 되었었다. 그래서 생활력도 너무나 강하며 안 해본 일도 없고 사람의 심리도 잘 알며 눈치도 엄청 빠릿빠릿하며 굉장히 독하고 머리도 보통 똑똑한 게 아닌 정말로 강한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나에게 “너 하나만큼은 믿었는데…”라는 마음을 처음으로 보여준 순간 진심으로 미안하기도 했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었다.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너무나 잘 알기에 그래도 나 같은 놈을 믿어줬구나라는 고마운 마음도 함께 들었었다.


사실 난 강한 어른인 척하지만 그 친구의 내면에 있는 순수하고 상처받은 어린아이 같은 그 녀석의 본모습을 좋아했었던 것 같다.


남들은 쉽게 알 수 없고 겉만 봐서는 도저히 볼 수 없지만 긴 세월을 두고서 천천히 아주 자세히 들여다봐야지만 알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이 녀석은 나에게 그런 친구였다. 그리고 녀석은 굉장히 재미가 있다. 함께 술을 마시든 당구를 치든 낚시를 하든 혹은 총각 때처럼 유흥을 즐기던 아주 어릴 때 꼬마 친구처럼 함께하면 언제나 천진난만하고 철없이 같이 웃고 떠들며 즐거울 수 있는 친구였다.


최근에서야 녀석이 날 가족처럼 생각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에도 표현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정말 많은 부끄러움과 자괴감, 스스로에 대한 경멸과 한심함을 느끼며 무거운 자학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지만 아픈 상처에 빨간약을 바르는 마음으로 혼잣말하듯이 써보는 이 글에서 그래도 나를 좋아해 주는 그리고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친구를 잠시나마 떠올려 보았다.



밤에 장사를 하며 일하는 것에 환멸을 느끼던 녀석이 일식집을 인수하여 경영을 하다 실패를 하자 같은 자리에 간짬뽕집을 차려서 직접 돈을 주고 산 요리 레시피를 배워서 혼자 주방장이 되어 음식 장사를 할 때는 결국 다시 실패하였을지언정 정말 참 대단한 녀석이구나 싶었다.


결국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다시 원래 하던 바를 두 개 운영하고 있지만 한 땀 한 땀 자신이 노력하여 흘린 땀으로 이미 30대 초반에 자신이 늘 갖고 싶어 하던 1억이 넘는 BMW 오픈카도 현찰로 주고 사서 끌고 다니고 집도 얻고 놀 거 다 놀면서도 정말 착실히 살아온 그를 보면 항상 부러움보다는 미소 짓게 만들고 진심으로 응원을 하게 했었다.


지금은 이 녀석도 여러모로 힘든 일도 많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일이 많은 듯하지만 지금껏 그래온 것처럼 잘할 거라고 믿고 있다.


두 번의 사랑에 크게 실패하고 마음 아파하는 것을 보았었다. 두 번의 커다란 상처 속에 이놈도 이제는 곧 있으면 44살이 된다.


어쩌면 나와는 반대로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법은 알아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법은 몰랐던 그이기에 그 사랑이 끝나고 나서야 자신이 사랑하는 법을 몰랐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내를 만나기 전 언제나 사랑하는 법은 알고 사랑받는 법을 몰랐었다.



기대하는 게 있어야 섭섭한 것도 느낄 수 있는데 여전히 이 친구에겐 기대하는 것이 있는 것 같다.


새벽에도 아무 때나 전화할 수 있고 반기든 안 반기든 언제나 가게 술집으로 찾아가 담배 하나 피자고 할 수 있고 약속 없이 보자 하며 당구 치자 조를 수 있는 친구가 한 명 있다.


오랜 세월 알코올에 중독되어 있는 그가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가정을 꾸리며 살아갔으면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꼭 다 같은 삶을 살 필요는 없다.


잘생긴 얼굴, 유쾌한 성격에 매력이 넘치는 그는 여전히 20대 초중반의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넘치고 여자들이 줄을 서 있다.


난 그의 삶이 멋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나쁜 남자 스타일에 한 편의 영화 속 주인공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그 영화를 좋아하든 말든 그의 영화에서

나는 함께 했었다.


그리고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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