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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송현 Nov 06. 2024

거절에 대하여

거절이 힘들죠? 그래도 거절해야 해요

갓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가 생각 나네요. 여기 저기에서 모임에 참석하라며 요청이 왔고, 과 모임, 동아리 활동도 3개나 했죠. 친구들 모임도 여러 군데가 있어서 그 곳에 다 가려면 시간 분배를 정말 잘 해야 했어요. 오죽하면 뛰어서 캠퍼스의 끝과 끝을 시간 내에 오가는 게 너무 힘들어 자전거를 사서 다녔을까요.

그 땐 힘든 줄도 몰랐어요. 사람들이 나를 찾아 준다는 것이 기뻤고, 내가 꼭 뭐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인지 사람들 간에 인기도 제법 있었죠. 실속은 없었지만요. 하하.


하여간 그렇게 2년 정도 하니까 점점 한계가 오더라구요. 그렇게 열심히 한 것이 인정을 받은 것도 있었지만, 그 시간동안 벌여 놓은 일이 너무 많아서 그걸 처리하는 데 시간이 부족했거든요. 학점도 점점 떨어지고, 부회장을 맡았던 동아리에서도 싫은 소리도 듣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는 그저 잘 해보고 싶었을 뿐인데, 부탁할 때 들어주니 좋다고 하고선 조금 못 해내니까 이렇게 싫은 소리가 날아 오는구나. 


그래서 마음에서 적은 부분을 차지하는 동아리를 탈퇴 했어요. 제가 바쁘게 사는 건 다들 다는 눈치였고, 과 동아리다 보니 아예 떠나는 것도 아니라서 조금 서운해 하기는 했지만 이미 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기도 해서 수월하게 나올 수 있었죠. 이건 "거절"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하게 부드럽게 나왔죠.


그러고 나니까 조금 숨 쉴 틈이 생기더라구요. 다시 에너지를 얻고 쳐내지 못한 일 들을 쳐내면서 결국 복수전공까지 하고 학점도 최대로 올리면서 잘 졸업 했어요. 거절이 힘들어서 여기 저기 다 발을 얹다 보니까 얻은 경험도 많고, 힘든 일을 억지로라도 이겨 내면서 얻은 경험은 두고 두고 자신감의 원천이 되었죠. 지방 대학을 나와서 그럴 듯한 자격증 하나 없지만, 열정있게 붙어서 하면 결과는 나온다는 근자감? 근거가 조금은 있으니까 조금자감이 있었고, 작은 회사를 전전했지만, 그 곳에서 나름 결과도 얻고 인정도 받으면서 지냈죠.


어떻게 보면 작은 우물에서 제대로 된 경쟁을 경험하지도 않고 주어진 상황에 이끌려서 이렇게 흘러간 것일 수도 있겠다 싶어요. 첫 직장도 교수님의 "추천"에 들어 간 중소기업이었는데, 대기업과 연계해서 일할 일이 많았거든요. 제가 맡은 일 뿐만 아니라 일의 핵심을 파악해서 프로젝트를 더 성공적으로 만들기를 반복하니 그 쪽에서도 저를 좋게 봐서 자기 회사 공채 한 번 보면 어떻냐고 은근히 추천하기도 했거든요. 그 때 빡세게 해서 대기업으로 이직 했어야 하는 건데, 하하. 결국 미국까지 흘러 왔네요.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듯이 큰 물에서 놀기 시작하니 이전까지 보지 못한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나름 열심히 살면서 그렇게 열심히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인생에서 "선택"이라는 요소를 빠뜨리고 그냥 주어진대로 순응해서 살면 아무도 나에게 더 나은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거든요. 마켓팅의 최고봉인 미국에서 나에게 달콤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넘쳐나지만 나에게 도움되는 사람은 적은 것도 한 몫 했죠. 


앞에서 좋은 소리를 하며 자기들이 얻을 것은 얻어 내지만, 나중에 내가 힘들 때 부탁하면 온갖 핑계를 대고 어떨 때는 핑계도 아닌 엉뚱한 소리로 시간을 끌다가 미팅 시간 끝나고 나면 연락도 안받는 상황도 있었고요. 대체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웃긴 게, 그렇게 온갖 알맹이 없는 말만 늘어놓는 사람이 더 잘나간다는 거였어요. 쉽게 말해, 자기가 손해는 안 보지만 적을 만들지 않는 사람이 사회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걸 깨달아 버린 거예요.


그리고 그 중심에는 "거절"의 기술이 한 몫 한다는 것이 보이더군요.


나를 원한다고 해서 내게 대가를 주기를 원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보통 이상적인 거래 관계를 윈/윈 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윈/윈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아세요?

저도 사실 잘은 몰라요. 제가 아는 건 내가 먼저 준다고 해도 돌아 오는 게 보장되는 건 아니라는 거죠. 회사에서 직원에게 일 시키는 논리가 네가 열심히 하면 승진도 시켜 주고 연봉도 올려줄 "수도 있다"예요. 

그 "수도 있다" 부분이 중요하죠. 거짓말은 아니니까요. 그 가능성이 1%라도 그럴 "수도 있는" 건 사실이잖아요? 이게 중요한 거예요. 사실 마음 속에는 1% 가 아니라 0.0001%만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죠. 그런데 세상 일이라는 건 모르잖아요? 혹시 정말 잘해서 회사에 이익을 10억, 100억 남겨 주면, 연봉 2000 정도 올려 주는 게 뭐 대수겠어요? 그럴 "수도" 있죠.

정말 더럽고 치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내가 제대로 된 "선택"을 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알아야 해요.


나에게 "돈"이 정말 중요하다면, 그렇게 연봉 2000정도 올려 받는 것을 목적으로 야근에 개인 연구에 회사일에만 집중하면서 일을 하는 건 "효율적"인 선택이 될 수 없겠죠. 나에게 "진급"이 중요하다면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진급"은 "연봉인상"의 수단일 뿐이잖아요. 그럼 "돈"을 벌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죠. 1%가 될 지 10%가 될 지 모르지만 그런 확실하지 않은 공수표에 현혹되어서 개인으로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날린다는 건 정말 멍청한 짓이죠. 

그리고 저는 그 멍청한 짓을 15년 이상 했습니다.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 거짓말 이예요. 무엇이든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작아도 결과를 남기니까요. 덕분에 탄탄한 엔지니어링 지식과 함께 자신감을 얻었지만, 그와 동시에 젊음도 많이 잃었죠. 그 노력과 시간이라면 더 값지게 사용될 수 있었다는 후회도 남고요.


지금 생각해서 보면,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착각 속에서 시간을 낭비한 것이 가장 컸습니다. 그런데, 그건 착각임과 동시에 착각이 아니예요.


당신은 중요한 사람이예요. 하지만 어디에서 중요할 지는 본인이 정해야죠.


회사가 아니면 남들이 당신에게 달콤한 이야기를 할 때는 항상 경계하세요. 


당신이 없으면 안되고 당신을 잃고 싶지 않다, 당신이 중요한 사람이다. 당신 없으면 안된다. 


다 사실이 아닙니다. 당신은 어느 조직에 있었던 간에 대체가 가능한 인력입니다. 다만, 당신이 사라지면 조금 더 귀찮고 일이 많아질 뿐이지요. 결국 그들이 편하자고 당신을 갈아 넣고 있는 겁니다.

본인의 미래 모습을 먼저 상상해 보세요. 이건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내가 남들에게 좌지우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대부분 내가 나 스스로 정한 인생의 지표를 따라가고 있지 않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좋은 사람이 되는 건 나쁘지 않아요. 다만 그게 내가 바라는 결과와 일치 되었을 때에 한해서예요. 반대로 인생의 지표가 너무 빡빡하게 세워지는 것 또한 좋지 않아요.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다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겁니다. 그건 인생 계획이 너무 세세했다는 것의 방증입니다.


만일 도저히 모르겠다면, "다양한 경험" 자체를 단기 목표로 삼아 보세요. 한 곳에 오래 머무는 것이 당신의 인생에 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당신은 중요한 사람이지만, 그 중요함을 정하는 건 남이 아닌 당신 자신이어야 해요. 물론, 아무도 당신이 중요하다고 인정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건 아니예요. 물론 남들이 인정하지 않고 혼자서 중요한 사람이라고 해 봤자 아무 의미 없죠. 제 말은, 내가 원하는 곳에서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게 진정한 윈/윈이겠죠.


솔직히 말해, 저도 아직까지는 답을 찾는 중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내 마음이 원하는 바를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법은 배운 것 같아요. 그리고 상대방에게 상처주거나 실망시키지 않고 거절하는 방법도 아직까지는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미국에서는 거절하는 것은 아주 어릴 때부터 배우는 것 같습니다. 로비의 나라 답게, 마케팅을 어릴 적부터 경험하게 하고 거절을 100번 당해도 한 번 성공하면 그건 성공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인지, 거절할 때 이러쿵 저러쿵 미안한 마음에 사족을 붙이는 건 오히려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하더라구요. 

거절은 기분이 나쁘지 않고 간결하게, 만일 거기에서 대화를 끝낼 수 없는 상황이라면 화제를 자연스럽게 돌리거나 농담으로 마무리하거나 하는 것도 어릴 적부터 키워지는 기술인 듯 보였습니다.

거기에서 그 이야기를 더 이어나가는 건 눈치 없는 짓이고 그룹에서 왕따 당할 수도 있죠. 쉽게 발해 "분위기파악"이 안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거절하는 것을 아주 어렵게 생각하죠. 이건 거절을 하는 사람이나 거절을 받는 사람이나 부담이라는 것을 받아 들여야 해요. 


거절을 위한 거절이어서는 안된다


거절이 마냥 좋다는 것은 아니예요. 보통 마케팅이나 광고같은 건 보지도 않고 그냥 거절 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범람하는 광고나 마케팅 중에서도 배울 건 있어요.

최근 변화된 구직 시장에서 구직을 도와준다는 마케팅이 많이 생겼어요.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나, 하고 들어 보았는데, 의외로 괜찮은 포인트를 잡고 있더라구요. 내가 원하는 게 확실하고 혹시나 도움이 될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면서 들었는데, 직접 듣지 않았으면 결코 몰랐을 정보들이었습니다.

이들의 가격이 조금만 쌌더라도 그냥 가입했을 지도 모르는데, 진짜 말도 안되는 가격을 부르더라구요. 그래도 나름 얘기하느라고 고생했는데 매정하게 거절하는 것도 못할 일이라 좋은 말로 거절하는 것도 반복하니 거절하는 기술도 늘더라구요. 물론, 시간이 지나서 내 상황도 변하고 정말 그런 서비스가 필요할 때가 오면 가입을 할 수도 있으니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다음을 기약하면서 필요한 사람에게 추천 정도는 해 줄수 있다는 생각으로 거절을 하니 생각보다 거절이 어렵지만은 않더군요.


하지만 이야기를 듣는 것이 나 혼자만 이득을 본 것은 아니예요. 마케팅을 하는 그들의 입장에서도 거절은 그들의 상품을 더 단단하게 하고 마케팅 기술을 갈고 닦는 기회가 되기도 해요. 이전에 약 2년 간 보험 영업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가장 힘든 건 말을 다 하고 거절을 듣는 것이 아니라 아예 말도 들어보지 않고 거절하는 사람들 이었거든요.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거절을 거절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 정말 필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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