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대』 『밝은 밤』

가족이라는 이름의 시간

by 서담

다른 시대, 닮은 이야기


1930년대의 조덕기와 2020년대의 지연이 나란히 서 있는 풍경을 그려보았다.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을 읽으며 염상섭 작가의 『삼대』를 떠올렸다.

시대도, 말투도, 풍경도 다르지만 내 마음 한가운데선 이 조합이 묘한 울림을 남겼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삶, 그리고 그 안에서의 애틋함과 단절, 혹은 연대에 대하여.



해체되는 가족, 무너지는 질서 – 『삼대』


『삼대』의 인물들은 혈연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조덕기의 시선에서 바라본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자신은 모두 각기 다른 시대의 속도를 살아간다.

유교 질서, 근대적 가치관, 그리고 식민지라는 현실 앞에서 ‘가문’이라는 틀은 점차 해체되어 간다.



기억을 잇는 여성들 – 『밝은 밤』


반면, 『밝은 밤』 속 여성들은 시대의 폭력에 맞서 ‘기억’을 나누며 살아간다.

증조모 정선(삼천), 할머니 영옥, 엄마 미선, 그리고 지연에게로 이어지는 기억들.

그 안에는 울분과 회한, 사랑과 그리움이 담겨 있다.

이 소설은 단절이 아닌 회복, 그리고 조용한 힘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말한다.



누가 말하는가 – 남성의 시선과 여성의 서사


『삼대』가 남성의 혼란과 고민을 통해 시대를 보여줬다면,

『밝은 밤』은 여성의 고단하고 조용한 서사를 통해 한국 현대사를 비춘다.

한 작품은 ‘잃어버린 것들’을 말하고, 다른 작품은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한다고 느꼈다.



나의 자리에서 다시 읽는 가족


문득 나의 가족을 떠올렸다.

나의 엄마, 나, 그리고 내 딸.

엄마는 후진국에서 나고 자랐고 나는 개발도상국에서, 내 딸은 어쩌면 선진국에서 자라고 있다.

그 격동의 세월 속에 세 여성의 시간이 겹쳐 있다.


어렴풋이 그려지는 조부모의 시간, 이해되지 않았던 부모의 시간, 내가 살아온 시간, 그리고 내 딸이 살아갈 시간.


누가 누구를 낳고, 또 누가 누구를 낳았다는, 지루하게 느껴졌던 성경의 족보는, 결국 역사가 이렇게 촘촘히 이어져 왔음을 말하고 있었다.


시대가 달라도, 언어가 달라도, 결국 우리는 누구의 딸이고, 손녀이며, 어쩌면 또 하나의 조상이 되어가는 중임을 생각하게 된다.


『삼대』와 『밝은 밤』을 통해, 그 긴 호흡 속에서 나와 가족, 그리고 우리 사회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보았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이, 그저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선 나를 만든 시간임을 느낀다.


최은영 작가님의 다른 책들도, 그런 이야기의 결을 따라가며 더 읽어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뜨거움을 지나, 부드러움을 지키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