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 도서관에서 글쓰기 수업을 듣고 있다. 이번 주 과제는 ‘인상적인 첫 문장’ 수집이었다. 나는 아래 네 문장을 제출했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이상, 『날개』
“나라가 절단이 났다.”
― 조정래, 『한강』
“사형집행 15일 전, 나는 세 번째 자살을 시도했다.”
― 공지영,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그 노인은 84일 동안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써놓고 보니 나는 꽤 충격적인 첫 문장을 인상 깊게 여기는 편인 것 같다. 무심히 툭 던져진 강렬한 문장을 마주할 때면, 순식간에 이야기에 빨려 들어간다. 궁금해지고, 넘기고 싶어지고, 멈출 수가 없다.
생각해보면 모든 콘텐츠가 그런 것 같다. 유튜브 미드폼 영상은 초반 30초가 가장 중요하고, 릴스는 초반 5초 안에 시선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한다. 책에서 그 역할을 맡은 것은 바로 ‘첫 문장’이다.
과제를 하며 집에 있는 문학 책들을 들춰보았다. 대부분은 인물에 대한 묘사, 배경에 대한 묘사로 차분히 시작한다. 그런데 요즘의 나는 그보다 더 빠르고 강한 자극에 익숙해져 버려서, 도파민 중독자의 눈으로 책을 보고 있어서 인지 평이한 시작은 자꾸만 밋밋하게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도 든다. 첫 문장에서 사로잡지 못하면 그 이하 문장은 아예 읽힐 기회조차 잃을지 모른다는 것. 물론 책을 읽는 사람들은 플랫폼 콘텐츠 소비자보다 조금 더 너그러울 거라 믿고 싶지만, 그 너그러움에도 첫 인상은 필요하다.
이제는 책을 펼칠 때, 첫 문장을 유심히 들여다 본다. 그 한 줄이 얼마나 많은 것을 시작하게 만드는지. 좋은 시작은 늘 다음을 기대하게 한다.
결국, 박제가 된 천재도, 절단 난 나라도, 사형을 앞둔 자도, 빈 그물을 마주한 노인도… 모두 단 한 줄에서 시작된 이야기였다.
나는 또 어떤 첫 문장을 만나게 될까? 그리고 또 어떤 첫 문장을 쓰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