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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작가 Aug 30. 2023

[일상] 박물관에서 만난 말레이시아

feat. 도슨트 한국어 해설

업무 상 말레이시아를 수차례 방문하면서 이 나라에 대해 알고 싶은 (역사적 배경을 포함) 것들이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서점에서 '말레이시아'라고 검색해 보면 여행안내책이 주로 나올 뿐 눈에 띄는 책이 없었던 거 같다. 주변의 혹자는 말레이시아는 역사가 별로 없는 나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하계휴가에 가족과 함께 말레이시아에 왔다. 아이들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을 찾다 보니 국립 박물관을 방문하기로 하였고, 마침 한국인 도슨트가 설명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어 참가하였다. (말레이시아 국립 박물관에는 매주 화/수 그리고 토요일 둘째/셋째 주 오전 10시에 자원봉사자 교민분들이 한국어 해설을 해주신다. 박물관에서 실시하는 도슨트 교육을 이수하신 분들이다.) 결과적으로 박물관 도슨트 해설은 아이들에게는 조금 지루했던 시간이... 나에게는 말레이시아 사회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 아주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박물관은 연대에 따라 4개의 전시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사시대를 보여주는 1관, 믈라카시대를 보여주는 2관, 식민지시대를 보여주는 3관,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4관이 그것인데 박물관 규모가 우리나라만큼 크지는 않다. 각 전시관에서 본 내용 중 인상적이었던 부분 위주로 적어본다.


1관)

여느 박물관과 유사하게 구석기 - 신석기 - 청동기.. 순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는 문자 기록 유무에 따라 나뉜다고 하는데 말레이시아는 우리나라에 비해 선사시대가 길고 역사시대가 짧은 편이라고 한다. 


2관)

믈라카가 지정학적으로 왜 중요했는지를 알 수 있다. 계절풍 또는 무역풍이라 불리는 몬순 (대륙과 해양의 비열 차이로 인해 6개월마다 바뀌면서 부는 남서풍과 북동풍) 그리고 아랍/인도와 중국의 중간 위치는 중계무역이 발달하는 최적의 요건이었던 거 같다. 믈라카는 향신료 등의 물건을 중계 무역하며 해상 무역의 중심지가 된다. 이 시기에 믈라카 왕조는 이슬람 상인으로부터 이슬람교를 받아들여 개종하게 되며, 이것이 말레이시아가 이슬람국가가 되는 계기가 된다.


3관)

대항해시대가 되면서 해상무역의 요충지였던 믈라카는 서구사회에서 탐내는 곳이 되고, 1511년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된다. 이후 네덜란드의 식민지가 되고 (1641년), 다시 영국의 식민지, 그리고 일본의 식민지, 이후 다시 영국의 관할하에 있다가 1957년 8월 31일 독립을 하게 된다.


말레이시아 역사를 얘기하면서, 계속 믈라카(현재 우리가 말라카라고 부르는)를 언급하고 있는데 지금의 말레이시아라는 국가가 만들어진 건 1963년이 되어서이며 그전까지는 믈라카 / 조호 / 페낭 등을 각각의 술탄이 지배하는 형태였다. 영국의 보호하에 있으면서 1946년 말레이반도의 주들이 연합하여 말라야 연합을 세웠고, 1948년 연합을 재편성하여 말라야 연방이 설립된다. (연합은 영국의 주도하에 세워졌는데, 술탄제를 폐지하는 정책이 있어 반대에 부딪히고 다시 연방이 설립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963년 사바, 사라왁, 싱가포르와 연합하여 말레이시아가 된다. (싱가포르가 1965년 연방에서 탈퇴하면서 지금의 말레이시아가 됨)


영국은 말레이시아에서 나는 고무와 주석에 주목했다고 한다. 이를 생산하기 위해 많은 노동 인력이 필요하였고 각각 인도(고무)와 중국(주석)에서 노동자를 데려와 이게 현재 말레이시아가 말레이계+중국계+인도계로 구성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4관)

1957년 8월 31일 메르데카 광장에서 말레이시아 초대 총리인 툰쿠 압둘 라만이 손을 번쩍 들고 독립(메르데카!!)을 외치는 사진과 함께 시작된다. 말레이시아의 독립을 주도한 국부로 알려진 압둘 라만 시기에 말레이시아계와 중국계 간의 갈등이 심화되어 학살 사건이 일어나고 (1969년), 이로 인해 초대 총리 사임가 사임하고 후임으로 압둘 라작이 총리가 된다. (이 당시만 해도 중국계의 비중이 40% 전후였다 하고, 이후 동섬 편입 및 자녀 출산수의 차이로 지금의 인종 비중 - 말레이계(62%) / 중국계(21%) / 인도계(6%) - 이 되었다고 한다.)

 

압둘 라작 총리 때에 말레이계를 우대하는 부미푸트라 정책이 정착되면서 갈등이 무마되고 지금의 말레이시아 모습이 유지되고 있는 거 같다.




말레이시아의 역사적인 배경을 알기 전에, 말레이시아의 몇 가지 모습들에 궁금함이 있었다. 예를 들면

- 말레이시아는 국왕의 생일이 말레이시아 공휴일인데, 각 주별 술탄 생일에는 해당 주가 쉬고. 그리고 어떤 이벤트에 의해 특정 주만 쉬는 날들이 있다. 왜 그런 문화가 생겼을까?

- 말레이시아는 어떻게 말레이계-중국계-인도계가 더불어 살게 되었고, (겉보기에) 마찰 없이 각자의 문화도 있으면서 서로 존중하며 사는 걸까? (말레이시아에서는 중국계들끼리 얘기할 때는 중국어로 얘기하고 말레이계끼리 얘기할 때는 말레이어로 얘기하고, 서로 같이 얘기할 때는 영어 또는 말레이어로 얘기하는 재밌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말레이시아 정치인들은 말레이계가 대부분이고 복지 등의 정책 또한 말레이계 중심으로 되어 있는 거 같은데, 비즈니스 미팅을 할 때는 중국계를 훨씬 많이 보게 되는 건 왜 그럴까?

- 말레이시아 사람들과 얘기해 보면 수용적이고 열린 성향을 보이는 편인데, 그런 특성은 어디서 오는 걸까?


박물관 도슨트 해설을 들으면서... 주 간의 연합 / 종족 간의 연합이라는 말레이시아 국가 성립의 근간을 이해하게 되고, 말레이시아 국장에 왜 '단결은 힘'이라는 문구가 표기되어 있는지를 이해하게 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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