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스물셋
“내가 못살아! 연못 들어가지 말랬지!”
두 아이의 점퍼와 물티슈가 담긴 에코백을 어깨에 메고 서민은 연못으로 향한다. 불과 10분 전, 서민은 놀이터 벤치에 앉아 어린 두 아이들에게 소리를 쳤었다.
“연못 들어가면 안돼!”
아이들은 대꾸도 없이 놀이터 우레탄 바닥에 희미해진 코끼리를 지나 연못으로 달려갔다. 서민은 코에서 숨 한 뭉텅이를 쏟아내며, 미세한 흔들림이 남은 시소에 시선을 고정한다. 이렇게 벤치에 앉아 아이들 노는 걸 보다 보면 머릿속은 각종 걱정으로 시작해 세기말급 재난 영화로 끝이 난다. 그 멍한 시선의 끝이 맞은편 벤치로 옮겨졌다. 손잡고 앉아있는 커플. 무언가 특별한걸 하는게 아닌 데도 마치 대학 CF 한 장면 같았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그 시절의 서민과 도재도 저렇게 반짝였을까. 첫 데이트가 어디였더라? 이름 모를 커플을 보다가 자신을 향한 물음표가 쏟아진다.
“참 좋을 때다.”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온 그 나지막한 말이 ‘한 물 간 나이’라고 선고한 것 같아 놀라 입을 가린다. 그리고 심장이 세차게 뛰었던 20년 전 그 봄날이 떠올랐다.
“엄마! 예준이 물에 빠져서 신발 다 젖었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걱정보단, 엄마 말 안 듣고 기어코 연못에 들어가 어제 세탁해 신긴 운동화를 버린 걸 고자질하려는 예솔. 그렇게 서민은 첫사랑의 한 장면도 떠올리지 못한 채 엄마의 자리로 돌아왔다.
“얼른 집에 가자!”
언성을 높일 줄 모르는 서민은 그저 화난 뒤통수로 아이들을 챙겨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향한다. 이런 말썽이 생길 때마다 서민은 ‘내가 더 단호했어야 하는데’ 또 자책이 고개를 든다.
퇴근길부터 이미 배가 고팠는데, 두 아이를 씻긴 후에야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명치가 따끔해 온다. 서민은 현관에서 예준이의 흙 묻은 젖은 운동화를 벗기고 안아 들어 화장실로 직행한다. 물 때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와 절로 미간이 더 좁아진다.
“예솔아, 잠깐 티니핑 보고 있어. 예준이 다 씻으면 들어와!”
그러나 엄마의 감정은 늘 육아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 서민은 오늘도 두 세 칸 쌓인 짜증을 풀어내지 못한 채 눌러 담고 아이들을 씻긴다. 빨리 재우고 맥주 한 캔 따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아이들과 클레이, 카봇으로 놀아주고 양치까지 시켰다. 이제 침대에 눕혀 재우려는데 예솔이가 상기된 얼굴로 달려온다.
“엄마! 나 이 목걸이 해 봐도 돼?”
새끼 손톱 만한 동그란 팬던트가 달린 로즈 골드 목걸이. 큐빅이 박힌 그 테두리를 손끝으로 문지르자, 잊고 있던 시간이 되감기듯 살아난다. 목걸이가 담긴 상자를 건네던 도재의 모습이 떠오른다. 마음에서 꺼내 서랍 깊숙이 넣어 두었던 그 시절. 그리고 후회와 그리움의 시간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그러지 말 걸.”
마치 20년 전의 자신에게 따끔한 한 마디라도 던져주려는 듯, 서민은 기억을 따라 그 시절로 흘러 들어간다.
2002년 봄, 어학연수를 마치고 복학한 99학번 서민은 마지막 청소가 언제인지 알 수 없는 퀴퀴한 과방에서 후배들과 밝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동안 구석에서 책을 들고 서서 단 한번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던 그.
“쟤 낯가려서 그러니 신경 쓰지 마요.”
누군가가 말해주기 전까지도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서민이 의식하지 않고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
“전도재에요”
짧고 낮게 울린 그의 목소리는 방금까지도 활기차게 흐르던 공기를 세워 버렸다. 창 밖의 화창한 날씨가 무색할 정도로 도재의 첫 인상은 어스름한 잿빛 하늘이었다.
겨울을 재우는 봄비가 내린 어느 날, 교정 위로 비냄새가 바람결에 물씬 올라온다. 도서관 앞을 지나 문과대를 향해 걷는데 맞은편에서 친구들과 걸어오는 도재가 보인다. 청바지에 베이지색 자켓, 하하 호호 웃고 떠드는 친구들 사이에서 그만 따로 어느 적막한 박물관에서 잘라내 붙여 넣은 조각처럼 보였다.
“언니, 안녕하세요!”
도재와 대비되어 여자 후배들의 인사가 더욱 활기차다. 도재와는 눈이 마주치지 않았고 자신에게 시선을 두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도재는 말 대신 고개로 까딱 인사를 하고 지나갔고, 서민은 축축하게 늘어진 나무 밑을 지나는 도재의 뒷모습을 한 번 더 바라본다.
‘왜 자꾸 눈길이 가지?’
서민은 자신이 반가웠는지 도재 뒤통수에 써 있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든다. 그리고 며칠 뒤, 서민은 1,2학년들이 준비하는 동아리 공연에서 도재에게 안무를 가르쳐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마음이 확실한 이유를 알려 주진 않았으나 하겠다고 했다.
“서민아, 수업 끝나고 임연수에 막걸리! 혜은이도 온대.”
수업이 끝나자 윤정이 일체형 책걸상에서 몸을 빼내며 책과 필통을 챙겨 넣는다. 봄비의 흔적을 축축하게 머금은 공기, 정말 막걸리 먹기 너무나 좋은 날이었다.
“나 근데, 오늘 춤 가르치러 가.”
가방 지퍼를 닫던 윤정의 시선이 이유없이 기죽은 서민의 눈빛을 향한다.
“애들끼리 알아서 하라 그래. 3학년한테 왜 그걸 시켜.”
하고 싶지 않아도 거절하지 못해 응했을 거라 확신하는 윤정의 말이 쌀쌀맞다.
“괜찮아, 오랜만에 춤추니까 재밌더라고!”
괜히 어색한 웃음을 보이며 서민은 핸드폰을 접어 주머니에 넣는다.
문과대 203호. 모두들 공연 연습이 한창이다. 방해하고 싶지 않아 서민은 조용히 밀린 책상들 사이 의자 하나에 가방을 끼워 둔다.
“이거 마셔요.”
구김 없는 회색 카라 티셔츠를 입은 도재의 손에 이프로 캔이 하나 들려 있다.
“어, 고마워. 연습은 여기서 할거야?”
“옆 강의실도 비었어요. 거기 가서 해요.”
낯가림 심하다는 도재라면 춤 연습하는 걸 친구들에게 보이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서민은 가방을 다시 빼내어 옆 강의실로 옮겼다. 앞 줄 책상들만 대충 뒤로 밀어 넣는다. 끼이익- 밀려가는 책상 소리가 이상하게 경쾌하다.
도재는 CD플레이어에 스피커를 연결해 둔다. 같은 동작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 서민의 코에 땀방울이 맺혔다. 도재가 말없이 강의실 창문들을 하나씩 열고 나니 적당히 선선하고 습한 바람이 천천히 퍼져 나간다. 그리고 도재는 종로 파고다어학원이 크게 써져 있는 부채를 하나 내밀었다. 모두에게 무심해 보이는 도재이기에 이런 배려들이 서민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지금까지 알려준 거 혼자 한 번 해봐.”
서민은 가까운 의자에 걸터앉아 부채질을 시작한다. 도재는 몸이 뻣뻣하지는 않았지만 하는 내내 인상을 구긴 채 하고 싶지 않다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동작도 손끝이 헐렁하고 박자와 안무 순서만 대충 맞추고 있었다. 평소의 서민은 상대의 무례에도 웬만해선 화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날은 이유 없이 마음이 뾰족하게 뿔이 났다.
“하기 싫음 관둬. 나도 안 할래.”
서민의 말에 잠시 멈칫한 도재의 시선.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서민을 본다.
“미안해요 선배. 처음이라 너무 어색했어요. 안무 가르쳐 주는 거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눈을 바라보며 전하는 뜻밖의 진심. 그 말과 눈빛에 서민의 볼이 잠시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 색을 들킬까 싶어 괜히 더 부채질을 해 본다.
공연 연습이 끝나고 늘 그러듯 서민은 뒤풀이를 가고, 도재는 “먼저 가 볼게”하고 빠져나간다.
학교 앞 민속 주점, 문을 열고 들어서자 희끄무레한 형광등 아래 한문이 길게 써진 누런 벽지가 듬성듬성 뜯겨 있다. 주방에서 구워진 생선과 파전 냄새가 지하의 묵은 공기를 타고 곳곳으로 스며들었다. 서민이 소주잔을 여기 저기 부딪히며 마시던 그때,
-누나요즘도움많이받고있어요바쁜시간내줘서정말고마워요내일시간되면신촌에서밥살게요
띄어쓰기 없이 80바이트 꽉 찬 문자가 온다. 바쁘게 오가던 서민의 술잔이 딱 멈춘다. 후배가 고맙다고 밥 산다는 것뿐인데 빨라진 심장 박동이 술기운을 타고 밀려온다. 하지만 곧 술 마셔서 그런거겠지 그냥 웃고 넘겼다.
고기압이 힘을 쓰지 못해 서늘하게 흐린 토요일이었다.
두 사람은 신촌 아웃백에 마주 앉았다. 어둑어둑한 실내 분위기에 반해 꽉 찬 테이블과 부지런히 움직이는 서버들의 모습이 활기차다. 생각보다 많이 비싼 곳에 와서 엉덩이가 살짝 불편한 서민이었다.
“어제 과외비 받았어요. 괜찮으니까 먹고 싶은 거 시켜요.”
도재는 평소의 차갑고 굳은 표정을 오늘은 가져오지 않았다. 주문한 폭립의 예상치 못한 웅장함에 서민이 우물쭈물하자 도재는 아무 말없이 먹기 좋게 잘라 서민의 앞접시에 올려주었다. 말보다 손이 먼저 가는 도재의 배려는 그의 습관처럼 자연스러웠다.
서민은 양 손 검지와 엄지로 폭립을 집어 들었다. 입에 묻히지 않고 뜯어먹어 보려 이리 저리 돌려 볼 때, 착각인지 도재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늘 정적이고 서늘한 느낌을 주던 도재. 하지만 그날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식사하는 동안 도재는 서민의 물컵을 살폈고 입에 무언가 묻으면 말없이 냅킨을 건넸다. 서민은 그런 도재의 매너가 설렜다.
도재의 손에 시선을 꽂은 채 잠시 자신만의 세상에 있던 서민. 그는 부드러운 한 마디로 서민을 불러온다.
“다 먹었으면 일어날까요?”
정신이 번쩍 든 서민이 다급하게 소지품을 챙긴다.
“천천히 해요.”
마치 그의 말이 리모컨이라도 된 듯, 서민은 자연스레 속도를 늦춘다. 도재를 바라보기 괜히 머쓱해, 그저 이미 다 챙겨 넣은 가방의 소지품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토요일의 신촌 거리. 청바지에 후아유 티셔츠를 입은 서민, 흰 카라 반팔 티에 자켓을 걸쳐 입은 도재. 그런 비슷한 옷을 입은 많은 이들이 같은, 또 다른 방향으로 모이고 흩어져 가고 있었다.
서민은 커피를 사기 위해 대학생들 사이에 엄청난 인기라는 민들레영토를 골랐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상가도 카페도 아닌 듯 애매한 3층 건물.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입구에 들어선다.
“두 분은 영화관 룸으로 안내할게요.”
입장하자 어둠 속 2인용 커플 소파들이 줄지어 있다. 서민은 우뚝 서서 들어가지 못한 채 입술로 엄지손가락을 문다. 서민이 숨을 크게 들이쉬자 오래된 소파 냄새에 섞인 페브리즈 향이 훅 들어온다.
“들어가죠.”
개의치 않는 다는 듯 도재가 먼저 스크린만 번쩍이는 어둠 속으로 들어선다. 어색함을 감추려 입가를 힘주어 당긴 채 서민도 따라 들어가 앉는다.
그제야 다른 소파 커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담요 속 꿈틀대는 커플, 다리 얹고 키스하는 커플. 눈 둘 곳이 없어지는 그 순간 도재가 갑자기 재킷을 벗었다. 서민의 등이 곧게 펴지고 어깨가 높아진다. 하지만 곧 단정한 흰 티에 숨겨진 도재의 탄탄한 가슴에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멈춘다.
“누나”
도재의 몸이 스윽 자기 쪽으로 온다 느끼자 서민의 혈관 속 피가 초고속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서민은 두 눈을 꽉 감는다. 왜 감았는지 모르지만 몸이 자동으로 반응했다.
“우리 음료수 가져와야죠.”
이마를 쓸어내리던 손이 입을 막는다. 바보 같아졌다. 말을 걸기 어색해 자꾸 종이컵에 손이 가니 이슬차가 금세 바닥을 보인다. 도재는 이런 공간이 불편하지 않은 걸까? 아니면 내가 어색할까봐? 서민은 여러 번 자신을 챙기는 도재를 보며 가슴이 간질거렸다. 하지만 오해일까 두려워 종이컵 바닥에 그 감정을 깊게 밀어 넣는다.
그날 밤, 서민은 잠들기 전까지도 그 이슬차의 향과 도재의 손을 떠올렸다. 별일 아닌 순간들이 서민의 마음에 담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