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스물셋
2002년 월드컵의 열기로 캠퍼스는 들썩였다. 누군가는 얼굴에 태극기 스티커를 붙이고, 누군가는 머리에 빨간 띠를 둘렀다. 하지만 서민과 도재는 그 열기와는 조금 다른 온도 속에 있었다.
무대가 어두워지고 조명이 켜졌다. 그 불빛 속에서 도재가 걸어 나온다. 차가운 얼굴에서 쏟아지는 봄날 같은 노래. 평소와 다르게 손짓도 있었고 웃기도 했다. 서민은 그 모습이 낯설어 자꾸 시선이 머물렀다. 차가운 아우라와는 달리 감미로운 노래 목소리를 가진 도재. 서민은 마음 놓고 그를 바라볼 수 있는 그 시간을 만끽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후 선후배들 모두 모인 단체 뒤풀이. 서민의 작은 불씨였던 그 마음이 바람을 타고 활활 타오르게 된다.
“누나! 이번에 도와줘서 정말 큰 힘이 되었어요. 한잔해요!”
동아리 회장이 서민을 향해 힘차게 잔을 들이민다.
“누나, 요즘 도재랑 뭐 있어 보이던데, 둘이 뭐예요?”
장난처럼 툭 던진 한 마디. 그런 말엔 멱살을 움켜쥐며 응수하는 서민인데 이번엔 술잔을 든 채 얼어붙었다. 무슨 말을 하나 머뭇거리던 그때, 갑자기 도재가 일어난다. 테이블 대각선 끝에서 서민의 옆까지 오는 동안 시끌벅적한 호프집의 공기가 쪼개진다. 서민이 앉은 테이블만 고요한 바다 위에 놓인 듯했다. 도재가 서민의 손목을 잡아 일으킨다. 맨 살에 닿은 도재의 손에 서민의 모든 감각이 벌떡 일어난다.
“누나, 우리 먼저 일어나죠.”
“오오오오오!”
서민의 등뒤에 닿은 여럿의 야유는 몹시 불편했지만 도재의 단호한 손과 등이 안도감을 줬다. 자취방 화장실 세면대 앞, 서민은 양치를 하다 칫솔을 쥔 손을 힘없이 세면대 위에 얹는다. 머릿속에 자꾸 그 뒷모습이 맴돈다. 도재의 마음도 지금 나와 같은 크기로 자라고 있는 걸까? 기대와 궁금이 함께 반반씩 곱게 갈려 양치 컵 안에 담긴다.
‘좋아하는 걸까? 아니야. 그냥 고마워서 그럴 수도 있잖아. 그런데 손목은…’
입안에 고인 침과 거품이 민망하게 손등 위에 뚝 떨어지며 서민의 정신이 돌아온다.
“많이 마신 것 같은데 데려다 줄게요.”
도재는 다른 이유를 꺼냈었다. 하지만 서민은 도재가 친구의 농담에 멈춰버린 자신의 눈빛을 외면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자꾸만 확인하고 싶었다.
며칠 뒤 하늘색과 회색이 섞인 여름 초입의 캠퍼스. 노천극장에선 결의에 찬 민중가요가 흘러나오고, 무대 위 문화패 회원들의 동작이 절도 있게 맞아떨어진다.
“도재야!”
학교 분수대로 가는 길, 멀리 있는 도재를 향해 서민이 목청껏 외친다. 혹시 보지 못할까 봐 펄쩍 뛰며 양팔까지 크게 휘둘러 준다.
“점심 먹고 나오는 거? 공강 있어? 뭐 할 거야?”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서민의 질문에 도재는 잠깐 기다렸다 짧게 대답한다.
“전공 수업 가요.”
“아, 그렇구나.”
힘을 잃은 서민의 작은 대답은 누가 봐도 실망한 모습이었다.
서민은 무모할 정도로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다. 그래서 처음 느껴보는 그 간지럽고 찌릿한 감정을 감추는 대신 활짝 꺼내 보이고 있다. 때론 상대방이 숨겨 주길 원할 때마저도.
툭, 자판기가 뱉어 낸 달달한 커피의 향이 종이컵 밖으로 흘러나온다. 학교에서 커피가 가장 맛있다는 교수회관 1층 자판기 옆에 선 윤정과 서민.
커피의 출렁임을 잠시 바라보던 윤정의 시선이, 문자를 보내는 서민의 핸드폰으로 옮겨온다.
“서민아, 내가 보기엔 도재가 아직 너한테 호감인지, 친한 선배라고 생각하는 건지 확실하지 않아. 좀 천천히 더 지켜봐.”
윤정은 자꾸 문자를 보내고, 도재 위치를 확인해 달려가는 서민이 불안하다. 보통 맞는 말만 하는 윤정이기에 그녀의 말이라면 줄곧 수긍하던 서민이지만, 이번엔 어디선가 옹고집을 주워 왔다.
“헷갈릴 때도 있긴 한데, 확실한 신호가 더 많아, 걱정 마.”
서민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다시 도재를 떠올린다.
그리고 서민은 그다음 날에도 도재를 불러 세웠다. 도재의 손에 파란색 캔커피를 건넨다. 그 순간 닿은 손 끝의 감촉이 열 겹 스무 겹으로 겹쳐 마음에 닿았다. 만약 그냥 도재가 돌아섰다면 서민도 속도를 늦출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도재는 돌아서는 서민의 손에 무심한 듯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칸초를 건넸다. 그 작은 분홍 상자 하나에‘나는 네 마음을 알고 있어’라는 도재의 조용한 응답이 담긴 듯했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서민의 눈에서 어찌 알았냐는 질문을 눈치챈 듯, 도재는 황급히 학교 식당으로 빨려 들어갔다.
서민도 윤정의 걱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칸초까지 손에 얻고 나자 마음에 오히려 속도가 붙었다.
도재의 분홍 칸초는 생각보다 오래 힘이 되었다. 하기 싫어 미루던 영어 과제를 들고 서민은 도서관 스터디룸으로 향한다. 그런데 열 개 남짓한 원형 테이블은 이미 누군가의 자리가 되어 있다. 늘어진 어깨로 발걸음을 돌리던 그때,
“어! 누나!”
2학년 후배들이 한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그중엔 고개도 들지 않고 책을 보는 도재가 있었다.
“누나! 자리 없으면 여기 앉아요.”
회장 녀석이 도재 옆자리를 가리킨다. 반가움보다 난처함이 앞선다. 도재를 보는 건 좋지만 2학년 네 명 사이에 껴서 영어 과제를 한다는 건 좀… 서민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내젓는다.
“아, 괜찮아. 도서관 가면 되지.”
그때 도재가 조용히 고개를 든다.
“그냥 여기 앉아요.”
그 공간에 자신이 들어온 것도 몰랐을 줄 알았는데 다 알고 있었구나. 스터디룸을 가득 채운 웅성임이 걷히는 듯하다. 서민은 천천히 걸어가 테이블 위에 가방을 올려놓는다. 서민이 조심스레 도재 옆자리에 앉아 책을 꺼내는 순간,
“그거 1학년 교양 영어 아니에요?”
서민의 울컥한 마음이 콧잔등을 구긴다. 표정을 숨기기 위해 급히 고개를 숙인다. 평소엔 말도 잘 안 하면서 굳이 이런 건 왜… 티 안 나게 눈을 흘기며 복화술처럼 속삭인다.
“응. 재수강이야. 조용히 해줄래.”
그 말에 도재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내려온다.
‘쪽팔려… 하아…’
속으로 머리를 툭툭 치고, 현실에선 필통을 열다가 연필과 형광펜을 우수수 떨어뜨린다. 허둥지둥 손을 뻗는 서민. 동시에 도재의 손도 내려왔다. 그 순간, 손등이 닿는다. 짜릿한 전류가 퍼지는 감각. 깜짝 놀란 심장이 빠르고 크게 뛴다. 도재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몇 개를 주워 책상 위에 올려준다.
“어, 고마워.”
서민은 도재가 아니라 도재의 손이 올려놓은 형광펜에 인사를 건넨다. 흔들리는 그의 눈동자가 글자 사이에 묻히고, 서민의 들려 올려진 마음은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속도는 도재와 달리 멈출 줄 몰랐다.
우리는 많은 ‘속도’를 지키며 산다. 운전 속도, 말의 속도, 그리고 마음의 속도. 감정이란 길에도 속도 제한이 있는 법이다. 하지만 충동적인 서민에겐 늘 속도위반 딱지가 날아들었다.
점심 먹을 틈도 없는 어느 목요일. 서민은 검정, 카키 라스포색들 사이를 가로지르며 학교 후문 앞 이삭토스트로 달려간다. 최애 메뉴 햄치즈토스트를 받아 들고 다시 뛰기 시작하던 그때, 저 앞에 반듯한 남방을 걸쳐 입은 도재가 보인다. 서민은 습관처럼 손을 흔들며 외친다.
“도재야!”
생각 없이 흔들린 손. 간신히 담겨 있던 토스트가 바닥에 떨어진다. 덜렁대는 자신을 자책하느라 서민은 인사하려 불러 놓은 것도 잊었다. 고개를 떨군 채 엉거주춤 토스트를 주워 쓰레기통에 넣는다. 그 사이 도재는 이미 멀어졌다.
‘오늘 8교신데 망했다.’
달려갈 의미를 잃은 발걸음이 터덜터덜 길바닥에 떨어진다. 강의실로 걸어가는 서민. 마음도 배도 너무나 공허하다. 무려 3시간짜리 부전공 경영학 수업 중간 쉬는 시간, 지잉- 문자가 하나 온다.
-잠깐만 강의실 밖으로 나와봐요
‘어? 도재다! 도재가 경영 건물에 무슨 일이지?
의자에서 복도까지 걸어가는 그 짧은 시간에, 서민의 머릿속엔 수많은 상상과 기대와 궁금증이 얽혀 들어왔다. 더위가 스멀스멀 내려 앉은 건물 밖과 달리 강의동 복도는 도재처럼 서늘하고 햇빛이 채 다 들어오지 않아 어스름했다.
그가 말없이 건네는 종이포장. 서민이 떨어뜨린 이삭토스트가 담겨 있다. 이 토스트에 서민의 마음속에 있던 수많은 물음표들이 느낌표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그 밤을 열 칸 앞당겨 버린다.
-어디야? 잠깐 볼 수 있어?
-집에 거의 다 왔어요.
-잠깐만! 나 지금 학교인데 금방 갈게 조금만 기다려줘!
-알았어요.
도재는 마치 서민이 문자를 보낼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그리고 자신이 무어라 답을 해야 하는지 안다는 듯, 빠르게 답문을 보내왔다.
도재가 부모님과 함께 사는 아파트는 학교에서 전철로 세 정거장 거리. 학교 근처에서 자취, 하숙, 혹은 고시원에 사는 학생들을 제외하고 가장 근거리의 집이었다.
“일부러 집 가까워서 이 학교 온 거야?”
자주 받은 질문이라는 듯 도재는 덤덤했다. 도재의 대학 입학이 결정되자마자 부모님이 이사를 준비하셨다고. 이제 고2가 되는 남동생이 있었는데 동생에겐 조금의 미안함이나 걱정을 두지 않으셨고 동생도 학교 다니기 너무 멀어진다며 한 두 번 불평을 쏟은 게 전부였다 한다.
덕분에 서민은 빠르게 도재네 전철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전철을 내려 긴 계단을 오르고 다시 또 긴 계단을 내려갔다. 4차선 횡단보도를 건너 도재에게 가기까지 서민은 술 한잔하지 않았는데도 발걸음이 하나하나 모두 확신에 차 있었다.
“도재야”
야구모자 아래 감춰졌던 눈이 조금 올라오면서 서민의 눈에 닿는다. 그러나 그 눈에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전혀 읽을 수 없다. 평소의 차가운 느낌은 아니었고, 마치 누군가를 다치게 하리란 걸 알면서도 칼자루를 쥐고 있어야 하는 사람 같은.
“나 사실 너 좋아해. 이미 눈치챘을 수도 있지만 공연 도와줄 때부터…”
서민을 조용히 바라보던 도재의 눈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야구모자 속으로 숨어든다. 도재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고 서민은 도재의 모자챙 아래로 흐르는 흔들림을 보았다.
“미안해요. 누나.”
도재의 그 축축한 한 마디에 서민의 가슴속 넘쳐나던 용기가 순식간에 흡입되어 뽑혀 나갔다.
“어? 아… 그냥 그렇다고. 괜찮아.”
서민은 어쩔 줄 몰라 아무 말 아무 웃음이 새어 나오고 있다.
“집에 데려다 줄게요.”
도재의 미안한 손이 서민을 향해 출발하기도 전에 서민은 서둘러 도재의 공기를 차단시킨다.
“아냐, 괜찮아. 나 택시 타고 가면 돼!”
마치 운수 좋은 날처럼, 딱 그 순간 서민 앞에 빈 택시가 도착해 있었다.
“갈게!”
최대한 떨림을 숨긴 채 크고 씩씩하게 목소리를 내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택시로 달려가는 서민. 서민의 뒷모습은 울고 있었다. 택시 문을 닫고 시트에 몸을 푹 구겨 넣는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불빛이 흐려지는 걸 보며 서민은 입술을 꾹 깨물고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미안해요, 누나.”
그 한 마디에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린 자존심과 용기. 괜찮다고, 울지 않을 거라고, 나는 아무렇지 않다고… 수없이 되뇌며 도착한 집. 아침에 침대 위에 아무렇게 벗어 놓은 트레이닝복과 머리띠를 바닥에 던져 놓고 상처받아 스러진 마음을 털썩 눕힌다. 샤워도, 밥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불도 켜지 않은 컴컴한 방, 그리고 더 어두운 마음. 침대 위에서 서민은 혼잣말을 한다.
“하필 왜 오늘 고백했을까… 진짜 바보 같아. 김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