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다니고 있는 회사를 떠난다. 그동안 오랜 회사생활에서 직간접적으로 많은 분들을 알게 되었다. 회사도 사회의 축소판이다 보니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만났다. 그분들과 인연이 되어 좋든 나쁘든 배우고 느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회사라는 특별한 학교를 졸업하는 것이다.
이벤트라고 표현했지만 여러 사람이 참여하는 특별한 행사를 계획하거나 진행하는 건 아니다. 지나간 시간들을 마무리하는 나만의 의식 같은 거니까.
3월 말 제주 자전거 일주나 6월 첫날 설악산 여덟 시간 산행도 이벤트 중 하나였다. 얼마 전엔 친구와 일본 도쿄에 다녀왔다. 무슨 졸업여행을 도쿄까지 가냐고 묻는다면 그냥 함 가고 싶었어요 한 마디밖에 할 수 없다. 가고 싶어서 갔다는데 더 이상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그렇다고,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간 건 아니다. 반대로, 여유보다는 앞으로 바뀔 새로운 일상과 환경에 대한 불안감이 압도적으로 많다.
불안감이 죄어 올수록 반대로 반발심도 크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해보자. 난 네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거 할 테니까하고.
하루정도는 일본의 대표적인 소설가
하루키를 만나고 (직접 그를 만난다는 뜻은
아님) 진보초 고서점 거리를 가보고 싶었다.
“해변의 카프카”, “1Q84”, “기사단장 죽이기”부터 최근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 이르기까지 다작을 쏟아낸 “무라카미 하루키”.
해학과 풍자가 가득한 오쿠다히데오 소설의
팬을 자처하면서 왜 하루키냐고?
“1Q84”, “기사단장 죽이기”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루가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등 장편들이 나올 때마다 구입해서 읽었지만 산문집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가 그를 주목하게 했다.
그는 이 책에서 작품관, 소설을 쓰게 된 경위, 자기 관리법 등을 담담하게 진술했다. “소확행”(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말도 그의 에세이 집 “랑게한스섬의 오후" 속에서 처음 나온 문구임을 알게 되었다.
29세 때인 1978년 4월, 야구경기장 외야석 잔디 위에 누워 맥주를 마시며 경기를 보고 있는데 타자가 방망이에 공을 맞추는 상쾌한 소리를 듣고 아무 맥락 없이 자신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단다. 소설의 쓰게 된 이유가 정말 맥락 없지만 당사자가 그렇다고 하는데 무슨 말을 할까.
야구시합이 끝나고 신주쿠의 기노쿠니야
서점에 가서 원고지와 만년필을 사서 밤늦게
일을 끝내고 식탁에 앉아 처음으로 소설을
썼다고 한다. 대략 반년 만에 마무리한 작품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소설.
현재의 화려한 명성과는 달리 하루키의 젊은 시절은 평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일찌감치 학교 다닐 때 결혼하여 생업전선에 뛰어들었고 대출까지 받아서 재즈카페를 열었다고 하니까.
최근, 하루키의 모교인 와세다 대학에 하루키 도서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루키가 처음으로 소설을 쓰기 위해 필기구를 샀다는 신주쿠의 기노쿠니야 서점에 먼저 들렀다, 신주쿠 중심가에 있는 번듯한 9층 건물이었다. 벽에는 전 세계의 주요 도시에서 운영하는 매장들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책이 얼마나 팔리길래. 교보나 영풍문고 같은 우리나라 대형매장이 해외에 매장을 운영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으니 그저 놀랄 뿐이다.
신주쿠 내에 있지만 서점에서 와세다대학까지 가는 교통편이 복잡해서 구글 앱을 보며 한 시간 이상 걸었다. 걷기엔 적당하지 않은 더운 날씨지만 도시 여행자에게는 불가피한 선택지였다. 어디든 처음 가보는 곳이니까.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한다는 신오쿠보 거리를 지날 때는 거리의 한글 간판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백종원 씨의 음식점도 보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다양한 상점들이 밀집한 인사동 같은 분위기였다.
서너 개의 거리와 아파트, 상가, 공원을 지나 마침내 와세다 대학 하루키 도서관 앞에 도착.
하얀 석재건물을 물결치는 나무 조형물이 감싸 안은 형상을 보고 한눈에 알아봤다. 미리 찾아본 사진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원래 있던 건물에 간단한 설치물만으로 드라마틱한 효과를 낸 최소한의 건축. 건물 입구로 들어가면 동근 아치형으로 잔뜩 구부린 터널 형태 구조물이 지상 2층과 지하 1층으로 이어져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2018년 11월 도서관 설립을 발표한 하루키의 기자회견이 발단이 되었다고 한다. 40년 이상 써놓은 원고나 자료가 방대하여 기록들을 보관할 장소가 필요했다고. 도서관 건립 계획이 전해지자 유니클로 창업자인 억만장자가 건립 자금을 지원했고 평소 하루키와 친분이 두터운 건축가 세계적인 건축가 겐고쿠마가 공간설계를 하겠다고 나섰다. 개관에 앞서 하루키는 소장 자료 모두를 기부했고 이곳에서는 하루키 소설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번역을 중심으로 세계문학을 연구하는 장소로 업그레이드되어 정식명칭도 “와세다 대학 국제 문학관”으로 정했다.
지하 1층에 있는 도서관내 카페에서 아이스라떼를 마시며 잠시 하루키 책에
빠졌다. 건물 내에는 세계 각국에서 출판한 하루키의 책들과 원고, 하루키가 소장했던
재즈 LP판 등다양한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에 있는 작가들의 문학관들도 원고와 자료뿐만 아니라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과 카페 등을 확충한다면 하루키 도서관처럼 문학관 이상의 기능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풍스러운 와세다 대학 캠퍼스를 걷다가 세계 최대의 서점 거리 “진보초 고서점 거리”로 향했다. 부산 남포동 책방거리와 비슷한 느낌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기 좋게 예상은 빗나갔다. 고서점들 뿐만 아니라 일반서점들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서점 거리라고 해서 특별한 고서를 찾는 사람들만오려니 상상했는데 어린 학생부터 나이 드신 어르신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책방을 찾고 있었다.
단순히 고서를 파는 게 아니라 각 서점마다 “문학”, “예술”, “역사” 등 전문적으로 다루는 “테마”를 정해서 취급하고 있었다.
대로 주변에 “진보초 책 호텔”이 눈에 들어왔다. 책과 호텔을 어떻게 결합했을까 궁금증을 가지고 호텔 외벽 안내판에 붙은 건물내부 사진들을 눈여겨보았다. 여기서는 투숙객들이 취향에 따라 책 추천도 받고 호텔에 소장되어 있는 2,000여 권의 서적을 투숙기간에 원 없이 볼 수 있다고 한다. 신문기사를 찾아보니 재투숙률이 30%에 이를 정도로 인기라고 한다. “예술” 분야로 유명한 “보헤미안 길드”를 일부러 찾아갔지만 폐점시간이 지나 문을 닫은 상태였다.
기껏 히라가나를 읽는 수준이라 서점을 기웃거리며 진열된 책과 분위기를 느꼈다.
좀 규모가 있는 서점에서는 차와 식사를 함께하며 책을 볼 수 있는 북카페를 운영하고 북토크와 사인회도 자주 열리는 것 같았다. 암튼, 예상을 뛰어넘는 사람들이 서점을 찾아 책 속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보기 좋았다.
무언가를 느끼고 체험했다는 점에서 적절한 졸업여행이었다. 언젠가 한 번은 가고 싶었던 곳이니까. 앞으로 마음먹는다고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이번 여행 경험이 하루키의 책들을 제대로 읽어보거나 일본어를 제대로 학습하는 계기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졸업을 앞두고 점점 불안감의잔소리가 많아진다. “정신이 있는 거야? 지금이 어느 때라고 하루키, 진보초 타령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