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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co May 10. 2022

길에서 글을 생각하다

남한강 자전거길을 달리다(양평역-여주 강천섬)


 언제부턴가 달력에 일요일을 제외한 빨간 날만 다가오면 숨어있던 역마살이 어김없이 고개를 들며 어디론가 달아날 생각뿐이다.


 집안 사정으로 주말, 일요일은

한정된 공간에만 머물러 있어야 하기에

이를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그 외 빨간 날은 무리를 해서라도 일상에서

멀리 벗어나려고 한다.


 1. 목적지는

대중교통으로 한두시간 이내일 것.


2. 목적지를 갈때는 전철이나 기차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


3. 목적지에서 이동은 걷거나 자전거를 탈 것.


4. 도심은 가급적 피할 것,


5. 몸안의 에너지를

남김없이 쏟아붓고 돌아것 등


 자연과 좀 더 가까이 하기 위한  

몇 가지 정한 원칙에 따라 목적지를 정하고

길을 떠난다.


 그러고 보니,

서울에서 전철로 한 번에 연결되고

상대적으로 도시의 때가 덜 묻은

춘천의 의암호, 공지천주변이나

양평의  남한강변길을  자주 찾게 되었다.


 이번 어린이날에는 일찌감치

양평으로 가기위해 상봉역으로 향했다.


 양평역 근처의 자전거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여주를 들러 작년에 신륵사 근처 강변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토끼들이

잘 있는지 보고 싶었다.


 사진을 찍도록 포즈를 취해 내게 행운을

전해준  토끼 두 마리에게 과자봉지라도

사서  늦게나마 고마움을 할 참이었다.


 남한강을 따라 갈산공원에서 후미개 고개 직전까지 이어진 초록 터널을 달릴 때는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짙게 드리워진 초록의 그림자를 밟고 가며 이 맛에 자전거를 타는구나 하고 탄성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후미개 고개를 넘어가는 순간

탄성은  소리로 바뀌었다. 20 여분 동안

계속되는 가파른 고갯길을 낡아서 느슨해진

MTB 기어만으로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고개 정상에는 힘겹게 오르막을 올라온

라이더들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명색이 부산까지 이어진 국토 종주길인데 너무 만만한 게 본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우리 동네를 지나가는 중랑천 자전거길에

비교할게 아닌데.


 이포보를 지나니 한동안 강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고속도로처럼 쭉쭉 뻗은 길의 연속이었다.


 뻥 뚫린 길을 달리는 것은 좋았지만 한편으로, 땡볕 아래서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무작정 가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여주를 상징하는 새인 백로와 백로 알을 형상화한 이포보


 세종대왕이 묻힌 영릉이 가까이 있음을 알려주는 듯 보 벽면에 훈민정음 해례본을 새겨놓은 여주보


 황포 돛배와 백로를 형상화한 강천보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나타나며 그나마 단조로운 여정을 잊게 해 주었다.


 내친김에 남한강 대교를 지나 강천섬( 한강 8경 중 6 경인 단양쑥부쟁이 군락지가 있는 곳)까지 갔다.


 강천섬의 넓은 잔디밭에서

아빠 엄마와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며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참 멀리 시간을 거슬러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엉덩이가 얼얼할 정도로 거의 쉬지 않고 달려 7시쯤 양평 대여소 도착. 반납 예정 시간을 한 시간이나 초과했다. 시간에 쫓겨 여주의 토끼들과의 만남은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강천보에서 멈추고 돌아갔으면

충분이 토끼를 찾아볼 수 있었을 텐데..


 하루 거의 100킬로를 달려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남한강의 풍광은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줄 정도로 강력했다. 한강 8 경중 전국에서 가장 디자인이 아름다운 보라고 하는 이포보, 여주보, 황포돛배, 강천섬 등 4 경이나  보고 왔으니....


 걸어 다녔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시선을 잡아 끄는 곳에서는

가급적 멈추고 풍광을 폰에 담았다.


 혼자 보기 아까운 풍광을 몇 장 벗에게

보냈더니  문자가 왔다.  


좋은 시간 보내고 와서 글로 남겨 보라고.



 단순한 인사치레로 하는 답장일수도 있었겠지만..


 문자를 보고 벗의 말대로 오늘 여정을 글로 정리해 볼까, 글을 어떻게 풀어갈까 생각에 잠겨있던 중 문득 길과 글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걷든 자전거를 타고 가든 모든 길이

대부분 즐거운 여정일 수는 없다. 때로는 즐겁기도 하지만 지쳐서 고통스럽기도 하다.


 길을 가다 보면 막힘없이 가다가도 막혀서 돌아가기도 한다. 힘들 때는 멈추고 쉬어야 계속 길을 갈 수 있다. 조급한 마음으로 먼 거리를 갈 수는 없다.


 글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는 과정이 즐겁기도 하지만 막힐 때는 고통스럽고 쉬어야 할 때는 문장을 멈추고 숨표를 찍어 주어야 하니까


  막히면 다른 길로 돌아갈 줄도 알아야 하고 중간중간 마음을 흔드는 문장으로 단조로움을 경계해야 하니까.


 처음 쓰기로 했던 대로 다 쓰지 못하고 다른 것으로 채우기도 해야 하니까.


남한강 자전거길을 달리며 충주를 지나 부산까지 달리는 상상을 해본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불가능한 꿈은 아니리라. 한 번에 가기 힘들면 조금씩  여러 번 나아가면 될 테고. 앞으로 더 나아 갈수록 내 글도 좀 업그레이드되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빨간 날은 또 언제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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