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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an 30. 2024

확진과 동거

아침에 눈을 뜨면 맞게 되는 하루가 버겁게 느껴졌다.

내 마음과  달리 질병의 늪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해가 있어도 빛을 느낄 수 없는 무감각의 시간 속에서 기침과 열로 대변되는 질병은  

공장 안을 침잠하고 있었다.

무겁게 내려앉은 뜨거운 여름의 열기가 무색하게 마스크로 얼굴을 덮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훔쳐가며 직원들은 그 여름과 질병과 맞서고 있었다.


김이사는 즉각 격리소로 이동해 갔다.

가족들도 모두 확진상태였는데 딸과 아내와  함께 격리되는 행운은  없었다.

가뜩이나 허리가 불편했던 그의 아내는 매트리스가 없는 맨바닥에서 고열과 씨름하며 버티고 있다고 했다.

김이사에게는 직원들 편으로 필요한 물품들을 조속히 조달해 주었지만 아내에겐  도움이 자꾸 늦어지고 있었다. 자신으로 인해 비롯된 가족의  힘든 시간은 병의 경중에  비할 수 없는

아픔이었다.


아는 보건소 직원을 통해  그의 아내에게 매트리스가 전달되기까지 3일의 시간이 걸렸고

생각보다 증세가  심한 편이라 걱정이 많았다.

그와 동시에  F1으로 격리된 한국 직원들의 손과 발이 묶여버려서   공장 현장을  감독해야 할 인력이 부족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과는 지속되어야 했다.

사무실에서 ZALO (베트남의 카카오 톡과 비슷한 앱)를 통해 업무를 지시하고 숙식을 해결하며

급히 해야 할 일을 우선적으로 처리하게 했다.

직접 발로 뛰고  현장을 돌아봐야 할 일들이 태반이지만  이렇게라도 일처리가 이뤄짐을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공단 주변의 다른 공장들도 사정이 다르지 않아 살얼음 위를 걷듯 조심스러운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하루 종일 힘차게 돌아가던 공장 엔진이 동작과 멈춤을 반복하며 위태로운 시간을 이어가고 있었다.


7월 12일

코로나 검사는 계속되고 있었다.

반복되는 확진자의 증가와 격리로  공장 직원들의 수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다.

핵심 직원들의 부재는 생산력을 떨어뜨리고 많은 불량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가뜩이나 오더도 줄어들고 잇었는데 제품 불량은 큰 불안요소였다.

불량이나 납품 기일이 늦어지는 데 따른 손실은 오롯이 회사 책임이었다. 언제나처럼.

이 정부에게 어떤 것을 기대하는 건 애초에 하지 않았다.

단지 질병에 대한 사회적인 책임 운운하며 외국계 회사에 책임을 전가하는 일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지만 않길 바랄 뿐이었다.

기계는 오늘도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에 검사를 위해  방호복 입은 보건소 직원들이 부스를 설치하고 있었다.

20명의 한국 직원과 사무실 직원들이 검사를 받았다.


``Mr.##, You are positive, OMG``

전화로 총무가 알려준다. 병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나만 양성으로 나온다며 탄식이 섞인  한숨이 배어든다.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팔에서 힘이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김이사의 확진 이후였기에 ` 만약`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양성 판정을 받고 나니 뭐부터 준비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 달 초 베트남 한인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일이 있었다.

한인 남성 한 분이  확진으로 격리되어 있다 사망한 후 가족들에도, 대사관에도 알리지 않고 화장을 해버린  사건이었다.

그 일로 한인 커뮤니티에선 불만이 폭주했고 공포감이  팽배했었다.

불현듯 그 사건이  더 크게 부각이  되었고, 공장을 비워야 하는 일생일대의 위기감에 눈앞이 캄캄했다.

감염자 신분으로 , 외국인으로 이 사회에서 내가 받을 수 있는 양성자로서의 처우는 그 어떤 확실한 경로도 방법도 제시되지 않은 채

불안요소만 증폭시켜주고 있었다.



공단 내 병원으로 방호복을 입은 채 이송되었다.

도착하자 직원들이 사유서를 쓰도록 했다.

무슨 사유서?

진료실 안으로 들어와 한숨 돌리며

병 걸리는 데 내가 어떻게 걸렸는지 알게 뭐람.

일단은 시키는 대로 다 했다. 대충 휘갈겨 썼다. 내 마음처럼 정돈되지 않은 글로.

양성이 나왔지만 재검 후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마스크는 최대한 벗지 않으려 노력했다.

병원 복도에 앉아 대기.


몇 시간을 앉아 처분만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같은 양성자들이 우글거리는 이 좁고 덥고 더러운  복도.

다른 나라와 다를 바 없이 늘어나는 확진자들이 편히 누워 치료받을 공간은 여기서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저 내 몸 하나 드러누우면 거기가 침상이고 치료실이었다.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양성자들은 부족한 침상으로 몸 누일 공간만 있으면 자리 잡아 누워있었다.

쓰레기와 드러누운 사람들로 복도 안은 아수라장이었다.


냉방 시설이 되어 있지 않은 병원 복도에 앉아 있으려니 땀이 비 오듯 흘렀다.

그렇잖아도 더운 나라에서  바람도 통하지 않는 방호복에 마스크까지.

극기 훈련이 따로 없었다.


아직 뚜렷한 증세는 없었다.

그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부여잡으며 마스크를 움켜쥐고 최대한 기침과 고열의

대열에서 벗어나 있기 위해 노력했다.

벽에 기대고 다리를 쭉 뻗어 한참을 앉아 있었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나니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방호복의 압박이 점점 심해져 왔다.

답답하고 짜증 나는 무더위와 땀과의 사투였던 듯싶다.


복도에서 언뜻 진료실 안이 보인다. 오!

냉방 시설이 되는 것 같다.

염치도 생각 않고 , 감염 여부도 무시하고

일단 더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앉았다.

살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에어컨을 틀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다시 땀으로 온몸이 흥건해졌다.

진료실 안에서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누구에게 물어봐도 어떤 답도 해주지 않았고 그저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했다.

묻는 것도 , 어떤 답을 기대하는 것도 지칠 때쯤

정신없이 병원으로 이송되다 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복도나 진료실 곳곳은 방치된 쓰레기와 방호복으로  넘쳐났다.

복도마다 처리되지 않은 방호복과 쓰레기가 넘쳐났다.

복도 모서리마다 하수구가 흐르고 있는데 왜 이런 식으로 지어졌는지 이해를 할 수 없는 구조였다.

복도 하수구 시설. 저 벽에 기대어 앉아 있기도 찜찜한 기분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병원 내부는 하수구 냄새와 배급된 음식 냄새, 제때 청소되지 않은 화장실까지

온갖 냄새로 넘쳐나고 있었다. 게다가 사람들의 기침까지.

이런 환경이라면 치료는커녕 다른 병원균에 감염되는 염려해야 하는 거 아닌가!

방호복도 입지 않고 마스크도 없이 기침을 해대는 저 사람, 저 사람 때문에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다.

여기저기 폭탄 터지기 일보 직전 모습이다.

공단 내 병원이 이지경이라면

밖은 어떨까.


상상하기조차 싫은 시간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결국에 나는 숨쉬기 힘들었던 마스크를 내려 고른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최대한 그들과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내가 보는 그들과의 거리가 최대한 떨어져 있기를 바랐다. 그것이 1센티의 차이였다 해도.


그리고 이틀 뒤, 양성이 아니라 음성이라는 회괴한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F1이라 격리를 해야 하니 내 돈을 내고 차량을 빌려 격리장소로 이동하라는 무책임한 말과 함께.


어이가 없었다.

이런 의료 시스템이라니..

수송 차량도 내 돈으로 지불하라니..


양성에서 음성으로 ,

하지만 불안한 음성결과를 누가 책임져줄까!

답답하고 화가 올라왔다. 벌어진 모든 상황을 다 지워버리고 싶었다.

지난 며칠 동안의 일들이 스쳐갔다.

갑갑한 마음에 내려버린 마스크도 내 옆에서 마스크도 없이 기침을 해대던 그 여자도.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 모든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짐을 챙겨 일어섰다.

1초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해 잰걸음으로 복도를 나와 바깥에 서서

마스크에 방호복을 꼭꼭 여미며 차량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단 내에선 그래도 터줏대감에 , CEO라는 직함 덕분에 격리 장소를 회사 인근 호텔로 배정받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 음성이 3번 이상 연속해서 나와야 격리가 해제되었다.


차량을 타고 호텔로 이동했다.

병원을 나와 호텔로 이동 중

얼마 만에 느껴보는 시원하고 안락한 침구였는지......


직원들을 시켜  사무실에 있는 캐리어에 당장에 필요한 옷이며 업무 서류, 생필품 등을 싸서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확진자들과의 동거가 끝난 사실만으로도 일단은 한숨 돌리고 쉬고 싶었다.

마스크를 내려 그들과 한 공간에 있었지만

애써 외면하며 호텔로 이동한 그날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 호텔에서 준비해 준 식사를 맛있게 먹었다.



호텔은 베란다도 있어 바깥 바람을 쐴 수도 있었다.한결 기분이 좋아지는 바깥 공기다.호텔 식사는 베트남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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