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살아오면서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울기도 웃기도 하며 내 소중한 기억들과 함께 했다.
한 지붕 세 가족부터 전원일기
이태원클라쓰, 시크릿 가든, 동이
현재의 눈물의 여왕에 이르기까지
좀 유행한다 싶은 드라마는 나의 즐거움이 되어 주었다.
내게 큰 감흥을 주는 문장이나 언어들은 책 속에만 존재하는 줄로 알고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내뱉는 말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으로만 여겨왔다. 한데
어느 날 갑자기 저 주인공이 조용히 읊조리는 저 대사.
그것이 뜬금없이 내 맘 깊숙한 곳을 파고드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들의 잘고 고운 언어들이 내 삶의 언어였고
우리 주변 이웃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것이.
빠른 속도로 지나버리는 언어의 유희를 캡처해서 수첩에 적고
녹화해서 반복적으로 받아 적어 두기도 했다.
울림이 있는 문장들이 어디서 숨 쉬고 있는지 지금은 흔적이 희미해져 가지만
지금도 드라마를 보다 보면 따라 적어두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내 마음을 쓰다듬어 주고 간 따뜻한 손길을 느꼈기 때문이다.
드라마 명대사를 적어가며
써놓은 대사를 보다 보면 내가 본 드라마 장면과 함께 주인공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 장면의 감동이 느껴져 추억에 잠기게 된다.
몇몇 대사와 함께 추억 속으로 떠나본다.
``어머님은 살면서 언제가 제일 행복하셨어요?``
``대단한 날은 아니고. 나는 그냥 그런 날이 행복했어요.
온 동네가 다 밥 짓는 냄새가 나면 나도 솥에 밥을 안쳐놓고 그때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던 우리 아들 손을 잡고 마당으로 나가요.
그럼 그때 저 멀리서부터 노을이 져요. 그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그때가,``
<눈이 부시게>
언제가 행복했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게 된다.
초등 6학년 때 한 학급 학생 수는 60여 명에 달했다.
수업을 마치고 나면 곧장 집으로 가는 아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지금처럼 학원수업이 많은 것도 아니어서 남자아이들은 축구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여자 아이들은 고무줄을 끌며 운동장 한 켠으로 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까지
먼지 나는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집으로 갈 때가 되면 20명 남짓 한 한 무리의 아이들이 함께 학교밖을 나섰다.
교문 밖에 즐비한 문방구를 10개나 더 지나 신호등도 두 개나 지나
여름이면 뻥튀기 사이에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넣은 간식으로
겨울이면 호빵을 나눠먹으며
줄지어 그렇게 집으로 향하곤 했다.
행복을 말하는 알츠하이머 엄마의 말이 왜 그 순간에 떠올랐는지......
순수했고 가슴속에 작은 하트 하나쯤 숨겨 두기도 했고
10명 넘는 아이들이 옹기종기 줄지어 집으로 향하는 모습은
꼬질꼬질해진 옷만큼이나 바래버렸지만 입가에 웃음 짓게 만드는 순간이다.
그러다 많이 늦은 어느 날
6시 국기 하강식 음악이 울려오면 멈춰 서서 다 같이 가슴에 손을 얹고 애국가를 따라 부르며
노래가 끝나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집까지 30분 이상을 걸어가야 하는 , 아이들 걸음으로 30분은 제법 먼 거리였지만
성인이 된 내가 다시 가 본 운동장도 그 길도
그리 크지도 멀지도 않았다.
내게 행복도 그러하다.
일상의 소소한 사진 한 장만큼의 추억이 떠오르는 순간.
지금껏 많은 일들을 겪고 지내왔지만
그 시간 속의 난 참 행복한 아이였다는 생각은 진심이다.
<눈이 부시게>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는 시계를 매개로 행복했던 시간 속에 기억이 멈춰버린
알츠하이머를 앓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머님은 언제가 제일 행복하셨어요?라고 묻는 아들의 질문에 일상 속 작은 행복을 말하는 주인공을 보며
우리들 행복이란 게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