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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un 13. 2024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

5월 어느 봄날 그는 숨어버렸다

한동안 연락이 안 되고 있다.

언제부터였는지,

그는 전화기  건너편으로 숨어버리고

그를 쫓아 이리저리 헤매던 나는  절망하고 만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런 기운을 느꼈을 때가.

그래도 가끔은 문자로 안부도 물어주고

이런저런 걱정을 함께 나누며

전화기 너머에서 그는

나와 함께 시간을 공유했었다.


눈이 부시게 날이 좋았던 5월의 봄날

너무 맑아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을 등지고 그는 숨어버렸다.


5월의 산들거리는 바람도

빨강 덩굴장미도

아이들의 청명한 웃음소리도  

그로 인해 더 이상 즐거움을 주는 봄의 전령이  아니었다.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이유도 , 변명도 없이 그는 숨어버렸고

답답함은 남은 나의 몫이었다.


수백 번도 더 걸었을 전화

수천번도 더 보냈을 문자

그럼에도 대답 없는 시간은 이어져가고

봄을 지나 여름,

떨어지는 낙엽에 가슴 철렁이는

가을이 익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어느새 그의 부재를 인정하게 될 때쯤

더 이상 전화도 문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기다려 주기만 바라며

묵묵부답인 그의 이기적인 마음에 서운함만 커져 갔다.


가을 하늘은 또 얼마나 높고 푸르던지.

산마다 흐드러진 단풍들은 내 맘과 다르게 등산객들의 웃음과 함께였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즐거워 보였다.

오직 나만,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숨어버린 그만이 아프고 외로웠을 뿐.


세상의 어떤 것도 아프지 않아 보이고

외롭지 않게 가을과 함께 익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겨울이 왔다.

방은 따스운지,

밥은 제 때 먹긴 하는 건지.

애써 외면하고 무시했지만

걱정 한 보따리는 마음 한편을 차지하고 있던 터였다.


외면한다고, 무시한다고

없어지는 그가 아니어서

그래서 겨울 찬바람에 그의 소식 한 자락이라도 들려오기를

얼마나 간절히 소망했는지 모른다.


눈이 오고 살을 에이는 칼바람에

겨울은 옷깃을 여미게 한다.

그는 더욱더 견고하게 꽁꽁 숨어버렸다.

패딩 잠바 옷깃 속으로.


``그가 연락은 하니?``


운 좋은 어느 날

그가 연락이 왔다.

게다가 그가 얼굴을 보여주기도 했다.

어쩌다 ,

어느 날,

그렇게

소리 없이 왔다.


주저주저하다가

망설이길 수백 번도 더 했을 그의 고민이 보이는 만남이었다.


그럼에도 다시 숨어버릴 궁리만 하는 그의 눈빛에 나는 절망하기도

작은 소망을 숨김없이 내보이기도 했다.


``안 숨을게. 연락할게.``


약속을 하더니,

일을 핑계로 그는 다시 사라졌다.

하지만  약속처럼 수화기 너머로 숨진 않았다.

전화를 걸면 받고

문자를 보내면 답을 해주고


며칠 동안,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그는 약속을 지켰다.


``그가 연락은 해주니?``

``아뇨. 연락 없어요.``


엄마의 걱정을 핑계로  거짓말로 버틸 시간도 너무 지나버렸다.

사실대로 , 엄마도 사실을 알아야 단념을 하실 듯해서였다.


``왜 그런대니? 정말 큰일이네.``

``그건 그렇고 허리 아픈 건  어때요?``


다른 말로 급 화제 전환을 시도했다.

대꾸는 하지만 엄마 마음은 그로 가득 차 있을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별도리가 없다.


별의미 없는 몇 마디를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자주 하진 않았지만 1주일에 2번은 통화를 했었다.

그렇지만 간격은 점점 더 벌어져  1주일에 1번 , 10일에  한 번..

그게 2주일이 지나고 있다.

요 근래 엄마와의 통화는 항상 걱정으로 끝나고 있었다.

숨 막히는 긴장이 느껴지는 통화를  지속해야 하는 이유를 댈 수가 없었다.


나이 드신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게 안부를 묻는

형식적인 효도를 점점 벗어나고 싶어 하는 나를 본다.

지긋지긋한 한숨도 듣기 싫고

어떤 해결책도 내놓지 못하는 나도 싫고

그래서,

나도 수화기 너머로 숨고 있었다.


처음엔 몰랐다.

인정하지 못했다. 내가 숨었다는 것을.


어느 날인가 엄마에게 통화 버튼을 누르기를 망설이는 나를 보며

`이거였구나.`

현타가 심하게 왔다.

나도 숨고 있었다는 자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상대방의 한숨을 감당 못해서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해서

그저 숨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겼던 걸까!


눈이 시리던 봄날 시작된 그의 숨바꼭질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계절이 돌아와도 그는 여전히 숨어있다.

그를 찾아내 숨바꼭질이 끝나는 날

엄마도 나도 긴 한숨을 멈출 수 있을까.




새로운 구상을 하며 머릿속에서 지어낸 스토리입니다.

걱정을 함께 해주실 것 같아 짧게  첨부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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