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꿈에 그리던 10년의 헌신이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제가 축구를 사랑하는 이유는 '낭만' 때문입니다.
물론 삶의 모든 영역 구석구석에 낭만이 자리 잡고 있지만, 축구에서는 그 낭만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특히 화폐로 모든 것이 환원 되어 가는 현대 사회에서, 물질가치로 취급되지 않는, 오히려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는 순간들이 축구팬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더 크게 다가옵니다.
첫 번째로 소개할 '낭만'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아니 이제 전세계에서 축구를 사랑한다면 모를 수 없는, 그리고 결코 싫어할 수 없는 사람. 토트넘 홋스퍼에서 10년간 헌신했던 손흥민 선수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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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10년 전, 분데스리가에서 유망주로 손 꼽히던 한 소년의 토트넘으로의 이적이었습니다.
그 당시 토트넘의 지휘봉을 잡고 있던 포체티노 감독의 부름이 있었습니다. 물론 첫 시즌은 타국 리그로 이적한 모든 선수들이 으레 그렇듯 적응의 시간이 필요해보였습니다. 레버쿠젠에서는 리그 30경기 11골 2어시를 기록했었지만, 토트넘에서의 첫시즌은 리그 28경기 4골 1어시에 그쳤습니다. 첫 시즌만에 다시 독일로 돌아가려던 소년을 포체티노 감독은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소년은 결국 잔류하기로 결정합니다. 이 선택은 이 선수의 인생을 완전히 달라지게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음 시즌부터 꾸준한 상승세가 이어졌고, 팀의 빠질 수 없는 주축 멤버가 되었습니다. 토트넘 팬이라면 잊을 수 없는 18/19시즌 챔피언스 리그 모든 경기마다 큰 역할을 해낸 선수기도 하죠. 맨체스터 시티, 그리고 아약스와 만났던 그 경기는 정말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You know what? we're gonna win!)
21/22시즌에는 리그에서 23골을 넣으며 골든 부츠를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득점왕을 확정짓는 골 또한 '흥민존'에서 나왔죠. 이뿐만 아니라 개인 커리어는 선수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정상급 커리어를 달렸습니다. 번리전 80m 골로 푸스카스 수상, 발롱도르 11위... 그러나 트로피가 없었다는 점이 공격듀오였던 해리 케인과 마찬가지로 손흥민 선수를 항상 따라다니는 꼬리표였습니다.
하지만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건 결코 쉽지 않아보였습니다. 팀은 챔스 결승에서 허무하게 진 이후, 여러 번 우승의 문턱 앞에서 좌절했고 팀의 암흑기가 이어졌습니다. 감독은 끊임 없이 바뀌고, 제대로 된 리빌딩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토트넘의 가장 전성기라 할 수 있었던 18/19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 멤버들은 하나둘씩 팀을 떠났습니다. DESK 라인 멤버들도, 벨기에 센터백 듀오도. 23/24 시즌 직전에는 결국 해리 케인 마저도 트로피를 들기 위해 다른 팀을 선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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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팀의 주축 멤버들이 모두 떠나가고, 감독은 또 바뀌었지만, 당신은 이 팀에 홀로 남아 결국엔 캡틴이 되어 팀을 하나로 만들고, 유로파리그 트로피를 들어올렸습니다. 정말 당신이 꿈에 그리던 10년의 헌신이 완성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당신은 팀을 위해, 선수들은 당신을 위해 끝까지 싸웠고 마침내 우승했습니다.
토트넘이 간절히 기다려온 마지막 퍼즐 조각은 아마 당신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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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은 당신의 10년을 생각하여 이적에 관해 유연하게 도움을 주려고 했지만, FA로 떠나면 팀에 이적료를 남겨줄 수 없기에 이는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는 말은 정말 마지막까지 우리가 알던, 팀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응원하는 손흥민 선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당신이 바라던 대로 정말 아름다운 이별이었습니다. 토트넘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당신의 조국인 대한민국에서 하게 되었다는 것까지. 골을 넣고 당신의 찰칵 셀레브레이션을 한 브레넌 존슨, 그리고 토트넘 동료였던 트리피어와도 피치에서 만날 수 있었다는 점도.
마무리가 너무 완벽해서, 이토록 그립고 아쉬울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순간을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당신처럼 분데스리가에서 넘어온 사비 시몬스가 벌써 당신의 등번호를 이어 받았고, 앞으로도 수많은 7번이 이 팀을 거쳐가겠지만 토트넘 팬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No.7
당신을 한 단어로 표현하는 건 너무나 어렵지만, 'LEGEND'만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미국에서 행복 축구하면서 당신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길 바랍니다.
고생 많았어요 SONNY, 그리고 캡틴.
We're rating him for his time at Spurs rather than this hour or so goodbye. A point for every year of great memories. 10
- Alasdair Go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