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무기 Sep 19. 2022

영화 <미망인> (1955)

나는 ‘모던 걸’ 과 ‘모던 보이’를 개화된 당시 사람들의 복장이라고 생각했다. 개화의 상징, 군인이 군복을 먼저 받아들 듯,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하나의 의식적 형상이라고 생각했다. 모던 보이와 모던 걸에 대한 분리가 어디서 시발되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남성의 서구적인 복장은, 변화에 발맞춘 성공을 의미하며, 긍정의 이미지로서 작용했고, 모던 걸 역시 그러한 결로서 이해되는 언어였다.


영화를 보면서, 처음 든 의문점은 주인공의 한복이었다. 같이 살고 있는 여성(미스 리)과 달리 주인공은 늘 한복을 입고 등장한다. 그러나 거리에서 보이는 남성들은 모두 모던한, 혹은 서양의 복식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왜 주인공인 미망인은 한복을 고수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이러한 의문은 주인공이 양장점을 차린 이후에 해결된다. 양장점을 차리고, 서양의 복식으로 바뀌는 여성의 캐릭터 이전의 내러티브가 이를 해결한다. 새로운 남성인 ‘택’을 만난 이후, 그녀는 딸인 ‘주’를 같이 사는 또 다른 남성 조연 (홀아비 송 서방)에게 맡기려 한다. 동시에 자신을 좋아하는 부자 사장을 이용하여, 양장점을 여는 밑천을 얻자고 한다. 이러한 어머니로서의 주인공의 급작스러운 변화는 어머니에서 타산적이고 물질주의적인 여성으로의 변모를 보여준다. 


이러한 복장이 가진 시각적 상징성은 사장의 부인에게서도 드러난다. 남편인 사장을 만나러 온 사장 부인은 한복을 입고 있는 반면, 여성 주인공에게 정조 관념을 탓하러 온 부인과, 바람피우며 밤섬으로 수영을 가는 사장의 부인은 신여성의 서구적 복장, 수영복을 입고 있다. 수영복이 없어 아이와 같이 하지 못하는 주인공과는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각은 주인공과 미스 리가 같이 있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미스 리에게 동행을 건네는 남자는 미쓰 리의 복장을 통해 그녀가 개방적인 여성임을 추론해 낸다. 이렇듯 영화 <미망인>에서는 당시의 여성 복장이 신여성이라는 사회참여적 여성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물질적이고, 정조 관념이 없는 ‘아프레 걸’의 낙인이 되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은 이제 서구적인 복장을 갖춘다. 사장에게 자본금을 받아 양장점을 차린, 주인공은 신여성으로 등극한다. 이러한 복장이 규정하는 시각은 당시의, 전쟁 이후의 국가가 여성을 호명하는 방식이다. 서구화되는 국가에 필요한 노동력, 외화를 벌기 위해 방기한 여성의 신체를 국가의 무능력은 신여성, 아프레 걸이라는 양가적인 언어로 표현한다. 사회는 서구적 지식의 대응, 노동력에 필요는 신여성이라 호명하면서, 그것을 통해 얻은 여성의 자유, 혹은 매매되는 여성의 육체에 대한 방기는 아프레 걸이라는 이름으로 그 책임을 회피하며 그들을 호명한다. 


이는 홀아비 송 서방, 주인공에게 돈을 받으며, 아이를 맡아주는. 변변찮은 일을 하지만, 순수성을 지키고 있는 그에게 하얀 한복을 입혀주는 것에서 단순히, 서구의 복장이 아프레 걸 만을 뜻하는 것이 아닌, 조금이나마 노동력으로서의 상징성을 함유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장면이 ‘최초의 여성 감독으로서의 박남옥 감독이 보는 사회에서의 희망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작가의 이전글 <Picre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