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수수께끼

원인불명 발열

by 이지선

불타는 수수께끼

2024년 5월. 초여름의 더위가 시작되던 날.

"열이 3주째 떨어지지 않아요."

32세 남성이 진료실에 들어왔다. 얼굴은 붉게 달아있었고, 이마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체온이 얼마나 되죠?"
"39도에서 40도 사이예요. 저녁마다."

닥터는 차트에 'FUO - Fever of Unknown Origin'이라고 적었다. 원인불명 발열. 의학계의 가장 오래된 미스터리 중 하나.


타병원의 수사 기록

환자가 두꺼운 서류뭉치를 내밀었다.

"대학병원 두 군데를 다녀왔어요. 감염내과, 혈액종양내과... 별의별 검사를 다 했죠."

닥터는 검사 결과를 하나씩 넘겼다.

혈액배양 검사 3세트. 모두 음성.
결핵검사, 말라리아검사, 각종 바이러스 항체검사. 음성.
CT, PET-CT. 특이소견 없음.
종양표지자 검사. 정상.
골수검사까지 했다. 정상.

"림프절 조직검사도 했어요. 여기 목 옆에 흉터 보이시죠?"

감염도 암도 아니었다. 두 개의 대학병원이 두 달간 찾지 못한 범인.

"그래서 류마티스내과로 가라고 하더군요."


류마티스내과의 영역

닥터는 이제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 수사를 시작했다.

"관절은 아프신가요?"
"그러고 보니... 손목이랑 무릎이 좀..."

ANA, RF, 항CCP, ANCA... 자가항체 검사의 향연.
모두 음성.

전형적인 자가면역질환도 아니었다.


열과 동반된 발진 - 실마리

2주뒤. 환자가 다시 왔다. 처음보다 열을 떨어졌다.

"혹시 피부에 뭐가 생기진 않나요?."

"어 맞아요, 두드러기처럼요"

닥터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어디에 생기죠?"
"몸통이랑 팔에... 열이 오르면 나타났다가 열이 내리면 사라져요."

환자가 사진을 내밀었다. 희미한 연어빛 발진의 흔적이 보였다.

열과 함께 나타났다 사라지는 연어빛 발진.

첫 번째 중요한 단서였다.


숨겨진 증거

"목이 아프신 적은?"
"네, 자주 아파요. 감기인가 했는데..."

신체검진에서 간과 비장이 약간 커져 있었다.
혈액검사를 다시 봤다.

백혈구 15,000. 호중구 우세.
ESR 100mm/hr, CRP 15mg/dL.
그런데 프로칼시토닌은 정상.

감염이 아닌데 염증반응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었다.


페리틴의 비밀

"한 가지 검사를 더 해보죠."

닥터가 페리틴 검사를 지시했다.

일주일 후.
페리틴 26,000 ng/mL

정상의 100배이상. 닥터의 눈이 빛났다.


야마구치의 기준 / 단서 리스트

닥터는 노트에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 39도 이상 발열 (1주 이상)
✓ 관절통 (2주 이상)
✓ 전형적인 발진 (연어빛, 일시적)
✓ 백혈구증가 (10,000 이상, 호중구 우세)

배제 기준:
✓ 감염 없음
✓ 악성종양 없음
✓ 다른 류마티스 질환 없음

야마구치 기준 4개 모두 충족.


진단

"성인형 스틸병입니다."

환자가 멍한 표정으로 닥터를 바라봤다.

"스틸병이요? 처음 들어보는데..."

"19세기 영국 의사 조지 스틸이 처음 발견한 병입니다. 원래 소아에서 발견됐는데, 성인에서도 나타날 수 있어요. 원인불명 발열의 가장 까다로운 원인 중 하나죠."


불꽃의 정체

닥터는 차트에 기록했다.

증상부터 진단까지 2달하고 2주. 배제 진단: 감염, 악성종양, 다른 질환

최종 진단: 성인형 스틸씨 병 특징적 소견: Quotidian fever, Evanescent salmon-pink rash, Hyperferritinemia [재미 없는 소리]


"치료가 가능한가요?"

"스테로이드로 시작합니다. 대부분 잘 반응해요."

환자의 눈에 안도가 스쳤다. 2달하고 2주간의 불타는 미스터리가 끝났다.


Epilogue. 보이지 않는 불꽃

스틸병은 의학의 수수께끼다. 왜 일부 사람들의 몸은 이유 없이 불타오르는가?

일반적인 자가면역질환이 아닌 자동면역질환으로 부르는 것이 좀더 맞을수 있다.

닥터는 창밖을 바라봤다. 저녁 노을이 하늘을 연어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마치 환자의 발진처럼.

때로는 병의 원인을 모르더라도, 이름을 붙이고 치료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현대의학의 역설이자 희망이었다.

다음 환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닥터는 새로운 차트를 폈다.

또 다른 미스터리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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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진단과정은 단계적이기고 하지만 어떤경우 모든 가능성을 함께 확인하기도 합니다.

소설로 만들기 위해 진단과정을 단계적으로 쓴점을 살짝 고려해주시고.

그리고 낯설고 진단이 일반적이지 않은 질환을 쓰고 있으니 재미는 없지만 가벼이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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