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영위를 위한 돈벌이를 하면서 대차게 내리는 소나기를 맞듯 우리는 언제나 말의 모진 매를 맞아냅니다. 그렇게 아리게 맞아내다 어디가 어떻게 다친 줄도 모르고 그저 견뎌야 한다는 세상의 중론을 따르기로 합니다. 아픈 나를 들여다보고 상처를 진단받는 일은 더 견딜 수 없는 일이라는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에 택하는 차선입니다. 곪은 상처는 결국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을 보며 터지고 마는, 그런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나는 매일 아침 몇 장이라도 꼭 독서하는 습관을 들입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세상을 보는 시력을 높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나를 날렵하게 만들기 위해 매일 시간을 들이고 있습니다. 몇 권의 책들을 번갈아 읽어내립니다. 아침에 읽는 몇 장의 책들은 집을 나설 때 티가 납니다. 마음의 결을 다르게 만드는 것, 그것이 독서가 주는 큰 힘이기도 합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파도에 휩쓸리지 않을 바다를 내 안에 넓혀갑니다.
삶의 ‘종국에 가서’라는 말이 죽음을 향한 한 길이라면 이런 노력이 의미가 없는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종국에 가서 삶을 끝까지 자신의 힘으로 움켜쥐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어가고 주름이 얼굴에 쌓이고 아픈 곳은 늘어가는 몸을 가지게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공평하게 돌아오는 일일 것입니다. 다만, 아주 조금씩 모래가 쌓이는 것처럼 오늘을, 지금을, 이 순간을 감정과 생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고 나에 대해서 조금 더 파헤쳐 보는 것은 마지막 숨이 들어오고 멈출 때까지 나답게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언젠가 거대한 산이 되어 나의 등 뒤를 받치고 있겠습니다.
아마도 잘 와닿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써 이런 것에 힘쓰는 일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나는 무언가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처럼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보통의 것을 욕망하고 추구하고 느끼고 살아가고 싶다는 사람을 사랑했던 적이 있습니다. 가져야 하는 연봉과 신축 아파트와 직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가을입니다. 계절은 어느새 긴팔과 긴바지를 찾게 합니다. 날씨가 추워졌다는 건 마음이 따뜻해지는 일 또한 찾게 만든다는 의미겠지요. 계절이 추워진 까닭일까요. 그 사람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온 이유가 말입니다.
나는 한번 사랑했던 것들을 사랑하지 않게 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색이 바래고 향이 연해지고 모양이 달라지겠지만 사랑은 내 안에 남아 사소한 계기로 떠올랐다 가라앉다가를 반복했습니다. 오랜만에 들은 그 사람의 목소리는 조금 풀이 죽은 듯했고 가져야 했던 것들을 위해 살던 그 사람은 지쳐 보였습니다. 이직한 직장이 생각과는 달랐던 모양이었습니다. 그의 곁에 있는 일은 아주 많은 당부와 걱정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누구의 도움도 원치 않고 사는 사람 곁에 있는 일은 시리고, 외로웠지만 그럭저럭 견딜 만했습니다. 사랑은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기도 하니까요. 그의 전화를 받고 여전히 걱정하고 마는 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저 당신의 삶이 힘겨워지면 내가 했던 말들로 이겨냈으면 했다고. 사랑과 낭만 같은 것으로 말이에요.라는 몇 마디의 말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답지 않은 대답을 들었지요.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라고요. 나는 그의 대답에 하루를 꼬박 머물렀습니다.
숙숙한 몇 마디의 안부를 주고받은 뒤 나는 전화를 먼저 끊었습니다. 나는 이미 내 삶을 살아가느라 멀리 달려와 있었으니까요. 그 사람과 나는 이미 다른 길을 가고 있었거든요. 삶은 시기별로 처리해야 하는 것이 있고 누군가는 그런 과정을 겪느라 소중한 것들을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나도 그 사람도 한 때 열렬히 누군가를 마음에 품었고 그러다가 마음을 다치고 또 잃어버렸던 자신을 찾기 위해 애쓰기도 하는 긴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이별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 단춧구멍을 어디에 다느냐의 차이 같은 것으로 벌어지는 일이겠지요.
오늘 새벽에는 날이 추워져서 올해 처음으로 겉옷을 챙겨 입고 산으로 향했습니다. 날이 추워지면 달리는 것이 수월해질 것이라 믿으며 견뎌냈던 여름이었는데 벌써 여름이 그리워집니다. 사람의 마음이 이리도 변덕스럽습니다. 오래간만에 찾은 산은 또 어느새 낯선 모습으로 나를 반겨줍니다. 낙엽을 밟는 일이 잦았습니다. 나무들의 잎새가 져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산을 달리고 마음을 다시 추스릅니다. 당신의 삶이 부디 너무 춥지 않기를 바랐던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으니까요. 뒷산을 한참 달려 도착한 작은 절에서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 앞의 불전함에 각각 천 원씩 넣어봅니다. 아마 그 사람의 어떤 맹목이 그를 더 힘들게 할 것 같지만 부디 건강했으면 하고 절을 해봅니다.
나는 미래의 불확실한 행복을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눈에는 내가 너무 철이 없어 보이기도 또 너무 낭만적이라고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나는 믿거든요.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라는 것을요. 가는 길의 갓길에 피어있는 수선화와 들꽃들을 볼 수 있다면 내내 행복한 마음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믿어요. 그것은 왜 저렇게까지 온 마음을 다해 살까.라고 반문했던 사람들은 모르는 일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때때로 살면서 느끼게 되는 소외감이 커질 때면 나는 낭만을 모르던 사람의 입에서 ‘이런 것이 낭만이지.’라는 말이 나왔던 장면을 떠올려 봅니다. 그러면 언제나 나는 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됩니다. 다시금 산을 달리는 나로, 언제나 온 마음을 줘버리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 바보 같은 나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