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만나면서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산 시집이 있어요.
윤병무 시인의 『당신은 나의 옛날을 살고 나는 당신의 훗날을 살고』가 그 책이죠. 언젠가 그의 생일에 편지를 써준 적이 있어요. 편지라기보다 책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6개월 동안 그를 생각하고 그를 사랑하고 그를 아파하며 집필한 노트 한 권 분량의 편지였거든요. 그 편지에 저 시를 옮겨 적어줬던 기억이 나요.
그 사람을 만날 때 옮겨 적었던 단락은 여기예요.
빛은 열에서 태어나지만
빛 없는 열은 당신이고
열 없는 빛은 나이니까
당신은 나의 옛날을 살고
나는 당신의 훗날을 살고
그 사람과 헤어지고 제 일기장에 옮겨 적었던 단락은 여기고요.
훗날은 사는 내가 멀리서 찾아갔지
옛날을 사는 당신이 찾아오지 않아
내가 당신을 찾아갔지
훗날이 옛날을 즐거워했지만
내가 당신을 즐거워할 뿐이었지
그를 보내고 그와의 추억과 그를 향한 마음을 쓰는 일은 늘 하고 있지만 깨닫지 못하는 호흡처럼 제게는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생일에 노트를 건네줄 때 제 심정을 알까요. 그를 만나는 날부터 알았던 언젠가의 이별을 저의 언어로 치환해 적어 간 글을 건네며 전 다시 한번 이별을 예감했지요. 언젠가 당신은 나의 옛날을 살고 나는 당신의 훗날을 살 것이라고요. 우리는 당신이 태어난 그날, 나란히 앉아 함께 그 노트를 읽었어요. 노트를 다 읽은 우리가 잠시 숙연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당신이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를 느끼며 멋쩍게 “오늘 헤어지나요.” 하고 물었던 기억도 나네요. 그 숙연한 기운이 묵념이 되는 것 같아 나는 애써 케이크를 꺼내왔지요. 그날 당신은 태어났고 우리의 사랑은 점점 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주 오랫동안 누군가를 생각하며 글을 쓴다는 일은 그 사람을 더 사랑하지 않고는 못 하는 일인 것 같아요. 글을 쓰려면 자세히 들여다봐야 가능하고 누군가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사랑스러운 것과, 사랑스럽지 않은 일도 그 사람이 누워왔던 자리를 생각하며 사랑으로 만들어 적는 것은 그 사람을 더 사랑하게 하니까요. 마음을 토로하려다가 오히려 커가는 마음에 저는 그 노트를 쓰면서 더 다치기만 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만나면서 당부를 그렇게 많이 했어요. 마치 한 인간을 독립시키기 위해 양육을 하는 엄마처럼, 전 당부가 많았어요. 잔소리가 너무 많아서 당신이 떠나갔나 싶기도 합니다.
당신, 부디 힘이 들면 손을 내밀고 사세요. 도움을 청하는 일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랍니다.
당신, 부디 무용한 것들을 사랑하고 사세요. 삶을 온화하게 만들어 주는 일이랍니다.
당신, 부디 홀로 사는 것처럼 살지 마세요. 사람은 같이 사는 동물이지요.
당신, 부디 살면서 제 사랑을 잊지 마세요. 누군가가 당신의 행복을 이렇게나 빌었다는 일이, 때론 사람을 시련에서 벗어나게도 합니다.
그는 저의 당부보다 당신의 현재를 살러 갔지만 저는 아주 실패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 사람 세상에 없던 것들을 많이 주었으니까요. 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딱딱했던 그는 자주 느슨해지고 자주 사랑스러워졌거든요. 그가, 저에게 수백 번을 사랑을 고백했었던 기억과 그가, 수많은 밤을 제 손을 찾던 기억이 그래요. 그가 오래된 고무줄처럼 느슨해지다가도 다시금 차가워지곤 했던 것은 아마도 그런 삶이 자신을 망가트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착각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사람은 말랑말랑해야 잘 안길 수 있고 잘 안기는 방법을 알아야 자주 구원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가 없는 지금 나는 그와의 기억을 안고 살고 있는 것이 좋아요.
사랑으로 나를 탈탈 털어서 빈털터리가 된 나도 좋아요.
그는 내가 준 사랑으로 주머니가 무거워서 조금, 느리게 걸으며 살아가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