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면 바람이 분다고 바람을 세어요

by 송유성

이제는 그를 생각하며 마음 아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달님도 부처님도 하나님도 찾지 않고요. 나는 나를 안쓰러워하고 나를 안쓰러워해 주는 사람들을 보며 사는데 당신은 제가 없어진 삶에서 무엇을 보며 살고 있을지 궁금은 합니다.


밤에는 왜 그리움이 커지는지 곰곰 생각해 보다가 밤은 어둡고 잠에 들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라서 그리움이 커지나 싶었어요. 나를 잃어버리는 틈만큼 잃어버린 마음을 더 넣고 싶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지요.


요즘의 저는 자연스러워졌어요.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분다고 바람을 세고요,

당신이 생각나면 당신이 생각난다고 당신을 생각하지요.

밤이 되면 잠이 오고 아침이 되면 잠에서 깨어요. 다행히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고 실연을 겪은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죠. 당신이 나를 떠난 후 다음 날이 또 오는 것에 안심했는데 요즘은 다음 날이 오는 것이 조금, 당연해졌어요.


언젠가 당신에게 주었던 편지의 첫 문장이 생각납니다.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이인칭 대명사라고 국어사전에는 정의되어 있네요.’


어쩌면 당신을 이인칭으로만 줄곧 생각해야 했나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당신을 조금 덜 좋아해야 했나 하고요. 나는 당신을 들판에 풀어놓은 염소처럼 대하고 그저 당신이 오물오물 풀이나 뜯어 먹는 것을 지켜보는 거죠. 당신이 풀을 어디로 어떻게 씹나 표정은 어떻게 하고 있나 맛은 있나 저는 지켜만 보고요. 근데 저는 당신이 너무 좋아서 먹지도 않는 진달래꽃 같은 것을 들고 너무 가까이 갔었던 것도 같아요. 꽃도 풀도 주지 말아야 했던 것도 같고요.


하지만요, 당신을 사랑해서 언제나 부족한 내가 있었지만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었거든요. 당신을 위해 살고 싶었지만 전 제 사랑이 어디서 온전한지 너무 잘 아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사랑은 그 사람을 이인칭으로 둘 수도 있겠지만 나를 이인칭으로 대하지는 않아야 하는 일이니까요. 당신이 제 곁에 있는 동안은 어쩌면 이인칭이어도 상관없었지만, 늘 알았어요. 언젠가 저도 다시 저를 사랑하기 위해 당신을 떠나는 날이 올 것이라고요.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당신은 언제나 나에게 일인칭이에요.’라고 속삭여 주는 것이 사랑이기도 하다는 것을요.


당신이 나를 떠나는 날에 제가 당신에게 부탁했던 일들이 그런 일들이었습니다. 다음에, 다시 사랑을 하게 된다면 부디 나약하고 어려지길 바란다고 했던 말이 그래요.

아마 평생 모를 거예요. 제가 아니면 아무도 가르쳐 주지 못할 마음이기도 할 테니까요.

나는 여전히 때로 나약하고 어리게 살아요. 하지만 언제나, 늘 사랑 앞에선 바보같이 헤실히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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