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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요 Oct 24. 2024

나를 버려두고서 거울을 본 적이 있어요

질문하고 마는 마음이 좋지 않나?

들녘에 빛, 노을빛에, 만개. 만개. 하고 생각하다가.

금잔디, 하고 중얼거리다가. 그래, 봄이 오면 벚꽃이 피겠구나. 

아주 기대하고 마는 부푼 마음 끝에

우리 다시 적극적으로 헤어지자고

그러면 다시 만나는 것이 기대되어서 또 좋다고 손 맞잡고서.

약속되지 않은 의뭉스러운 연합을 품고서 말이야  


글을 쓰는 일은 마음에 지도를 그리는 것, 달리는 일과 수련은 몸에 지도를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마다 나는 달리고 수련하고 글을 씁니다. 

불편한 것들을 들여다보는 일은 얼마나 많은 품이 드는 일인지요. 요가 수련을 하다 보면 선생님께서 불편함에 머물러 보라고, 어디가 불편한지 느껴보는 것에 집중해 보라고 종종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불편함에 머무르는 것은 흔들리는 나의 나침반을 곧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오늘의 하늘은 만개. 구름이 만개했어요. 간수를 부은 콩물처럼 몽실해진 구름이 하늘에 펼쳐져 해를 따라 흐르는 동선을 만들어 냈지요. 나는 아침을 쉽게 맞이할 수 없었던 불면의 환자처럼 하늘을 한참 보았습니다. 고요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 나의 머리맡에 두고 다른 집 대문을 한참 두드린 일이 종종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아직 나의 어림이 채 태를 벗기도 전부터 죽음에 대한 생각에 골몰했습니다. 그러다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눈앞에서 본 일도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따뜻했던 손이 차가워졌을 때 죽음은 작은 상냥함조차 상실해 버리게 만드는 일이었지요. 사실은 살아가는 것은 죽음으로 향하는 일이라는 것을 모두 잘 알아서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 삶의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닐까요. 죽음에 대해서 아주 오랫동안 생각하다 보면 살아가는 의미도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도 같아요.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인가로 변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오랜 골몰의 생각 끝에 마침내 나는 자기 착취를 그만둘 용기를 내었습니다. 끊임없는 자기 착취를 원동력 삼아 더 나은 상황을 만들려 애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삶을 더 풍족하게, 더 행복하게 라는 어쩌면 신기루 같은 슬로건을 믿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오늘의 온전한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미래의 행복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도 생각이 듭니다.  


   

오래 걸린 일이었습니다. 사는 이유를 당신들에게 맡겨 두었다가 당신들이 사라지면 나 또한 소멸하는 듯한 기분이 들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러면 나는 자꾸 죽음충동을 느꼈습니다. 막연한 존재의 소멸이 발끝부터 서서히 타고 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는 여기에 있지만 목적을 상실한 나는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의미를 찾아 유랑했지요. 그렇게 여러 개의 길을 가다가 멈추고 돌아오고 또 넘어져서 한참을 누워있다가 이제야 조금,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아요. 그런 거창한 의미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요. 삶은 그저 내 발로 땅을 딛고 있는 이 장소와 시간에 잠시 머물렀다 또 다른 형태로 나아가고 있을 뿐이라는 걸요.  


   

나를 힘들게 했던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사랑해 내고 싶어 졌어요. 용서라는 말 또한 얼마나 무서운 집착인지 생각했지요. 용서에 집착하다가 용서하지 못하는 나를 또 미워해요. 미워하는 마음이 커지다가 또 그들을 더 용서할 수 없었어요. 나아지지 않는 것 같은 나를 그렇게 끌고 살아가는 것이 지칠 때쯤, 나는 풍덩, 부딪혀 내기로 합니다. 갑자기 발생한 사고처럼 다 부딪혀 보자. 이렇게 계속 누군가를 사랑했다 미워하고 실망하고 마는 일들과 삶에 배신당한다고 사는 마음이 이제는 지겹다고요. 그래서 매일 지도를 그려요. 낙원으로 향하는 보물 지도가 아니라 가는 길에 오솔길도 그려보고 금잔디, 작약, 억새 같은 것들도 좀 심고요. 심심할까 천둥도 가끔, 작은 웅덩이도 만들어요. 그렇게 올해는 내가 가는 길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기 위해 달리고 수련할 뿐이었어요. 그렇게 살아가다 보니 좋은 일이 조금씩 생겨요. 불편한 것들을 미워하지 않다 보니 마음이 풀어지는 것을 느끼는 한 해였지요.   


   

어제는 사는 것이 기대된다고 친구에게 말했어요. 올해는 잃은 것만 가득인 것 같았는데 지나고 나니 다 좋다고, 앞으로 힘들 일도 어떤 성장을 가져올지 기대되고 좋은 일은 또 어떤 모양으로 올까 기대된다고요. 이런 마음은 살면서 없던 마음이에요. 그리고 날 믿을 수 있게 되었죠. 문득 질문하는 마음들이 너무 좋아집니다. 당신을 궁금해하고 사랑을 알고 싶고 삶이 기대되는 그런 마음이 좋아요. 한때 나를 버려두고 나를 본 적이 있어요. 지금은 보지 못했던 나의 주름과 미운 부분과 흠도 잘 보고 살고 싶어요. 그러다 보니 잘 늙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가 생기죠. 앞으로도 나랑 잘 지내면서 어서 늙어보고 싶네요. 좋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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