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것 따위가 대체 무엇인가.
김금희 작가의 ‘오직 한 사람의 차지’에 나오는 문장이다. 아침에 일어나 영화 ‘500일의 섬머’를 다시 보고 집어 든 책에서 마음에 콕 박히고만 문장. 그리고 운명을, 관계를, 사랑을 믿지 않던 섬머가 우연히 도서관에서 만난 남자와 자신이 읽고 있던 책에 대해 물어보며 시작한 사건으로 결혼하고 마는 일. 사랑, 그것 따위가 대체 진짜 무엇인가.
돌이켜 보면 좋았던 기억보다 석연찮은 시간이 더 길었던 연애였다. 마음이 사랑이어서 온통 사랑만 가득해서 보이면서도 못 본 척했던 일들. 그런 것들은 사소한 문제라 여기고 온통 마음이 사랑만 해야 한다고 되뇌어서 무언가에 홀린 듯 울고 웃었던 추억들. 내가 문학과 영화, 드라마에 대한 온 마음과 사랑을 열변할 때면 그는 내 생각을 듣는 척 입에서 나가는 소리만 자꾸 들었고, 나의 취향과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는 교묘히 ‘틀렸음’을 시사하는 어휘를 구사하는 일들. 자신은 맞고 타인은 틀렸기에 표현하지 않아도 묘하게 경계를 긋고 살아가는 폐쇄적인 라이프 스타일들. 스스로를 지키는 일에 열중한 나머지 그 어떤 모험도 감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행하고 사는 시간들. 그런 것들이, 정말로 나는 그런 것들까지 사랑했을까. 알면서도 못 본 척했기 때문에 나는 조금 당당하지 못한 걸까 싶기도 하다.
연애는 두 사람이 하는 건데 남은 감정은 무 썰 듯 쑹덩하고 썰려서 너 하나 나 하나 알아서 처리해야 하는 일이고, 그 무의 무게와 크기는 각자 다른 일이기에 어떤 사람은 한입에 꿀꺽 먹어 치워서 없앨 시간이, 또 다른 사람에게는 커다랗고 무거운 무를, 어떤 부가적인 재료나 오래 걸리는 조리법이 아니면 먹어 치우기도 힘든 무를, 아주 오랫동안 들고서 조리 방법에 대해 고심하고 애써야 할 시간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무는 잘린 순간 누가 얼마나 가져갔는지도 전혀 알 길이 없다.
그와 헤어지고 두 번의 템플스테이를 가고, 수없이 많은 등산을 하고, 친한 언니들과 이별 여행을 울산 앞바다로 가서 토닥임을 받고, 운동에 매진하여 체지방률 꽤 감량하고, 계단에서 크게 굴러 머리에 커다란 땜방을 영광스러운 상처로 남겨봤으며 원인 미상의 복통으로 대학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받은 끝에 ‘이상 무, 신경성 상복부 통증일 가능성이 높음. 여기로 봐도 저기로 봐도 이상 무이니까 마음이나 다스리는 것이 좋음’ 같은 진단을 받았다. 몇 개월간 수십 권의 책을 읽고 수백 개의 자잘한 생각을 글로 작성했지만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작성해 둔 일기가, 글들이 도움이 되었다. 과거의 일기를 보면 내가 이렇게 까기 힘들어했단 말인가. 싶은 글들이 증거로 빽빽이 기술되어 있다. 지금 보면 아주 절절하구나. 싶은 그런 글들이 말이다. 그러면 지금 커피를 마시고 웃고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잠드는 밤을 생각해 보면 나아졌구나. 하고 생각이 된다.
마음을, 마음의 곳간이 넘쳐나는 아주 부유한 상황에서 준 것이 아니기에 걸레를 쥐어짜듯이, 아주 까탈스러운 사모님 밑에서 일하는 가사도우미처럼 한 방울의 물기도 남김없이 걸레를 바짝 쥐어짜듯 준 마음이어서 끝나고 주름이 잡힐 만큼 잡힌 구깃한 마음과 바싹 말라버린 감정을 다시 원상 복귀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래서 많은 것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따스하고 다정한 사람들의 위로와 횟집을 하시는 아버지 가게의 손수 만든 정성 어린 밥상과 잘 먹지도 않던 디저트의 세계로의 입문과 자연과 산과 요가 같은 것들이 아주 많이 필요했다. 그래도 문득 그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생각해 보다 야단법석이고 아픈 일도 많은 나의 삶이, 나는 어쩔 수 없이 더 좋고 또 생겨 먹은 것이 이렇다면 받아들여야 할 일이라고도 생각한다. 아파서, 안 하고 싶어. 가 아니라. 그렇게 아팠던 사랑을, 온 마음을 다 준 일을 해서 참 좋았다고 생각하니까. 타인에게 나를 이해시키려고 노력하고 또 타인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일은 사람을 바꾸기도 한다는 것을 경험했으니까.
책에서 읽었는데 사람은 50살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성품이 변한다고 한다. 성격은 변하지 않을지라도 성품은 변한다고, 또 그러한 일들은 자신이 주변에 누구를 두었는지에 따라 4년 주기로 변하는 양상을 띤다고. 나도 누군가의 주변 사람일 것이다. 나도 누군가의 성품을 변하게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좋은 사람이 되어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비관적인 태도로 살아가는 일은 결국 자신의 세계를 더욱 좁게 만드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면서 나는 변하지 않을 것만 같던 그 우뚝 선, 오래되고 단단한 고목나무가 조금씩 사랑으로 물들어 가는 것 또한 봤다. 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사랑은 사람을 바꿀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그 사람의 생각은 혼자 남은 지금,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온전히 주기만 하려 했던 사랑을 한 그 시절들이 나에겐 너무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은 무의 크기가 크면 큰 대로 맛있게 오랫동안 조리해서 잘 나눠 먹으면 될, 그런 일이라고도 생각하니까. 많이 힘들었지만 좋았던 마음도 잘 남아 있어서 다음엔 또 어떤 사랑이 얼마큼의 아픔과 행복으로 다가올지도 기대된다. 그러면 나는 다음번에도 절절 사랑에 빠져야지. 다짐을 또 하게 된다. 암만 힘들어도 암만 괴로워도 나는야 못 먹어도 ‘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