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었던 영화인 ‘브루탈리스트’가 개봉했다. 이런 류의 영화는 K언니도 좋아할 것 같아서 이른 아침에 문자를 보냈다. 이번 주 일요일에 쉬냐고, 영화 보러 가자고. 새벽부터 도배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언니는 점심시간이 되어서 답장이 왔는데, ‘영화는 너무 좋지만 형남이가 아파서 당분간은 쉬는 날에는 같이 있으려고 해. 아무래도 갈 날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아.’라고 했다. 형남이는 언니가 15년 동안 키우고 있는 작고 하얀 말티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구나. 싶었다. 언니를 알고 지낸 지도 벌써 십 년이 넘었으니, 우리가 늙어가는데 강아지의 시간이라고 안 그렇겠는가. 사람은 평소에는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잊고 살다가 가까이 있는 소중한 무엇의 죽음을 느낄 때 한없이 바스러지는 것도 같다. 키우는 몬스테라든, 강아지든, 고양이든 하물며 사람은 더하겠지.
K언니와 나는 형남이가 아프고는 형남이도 함께 갈 수 있는 곳으로 종종 등산을 가고는 했다. 언니와 나는 궁합이 잘 맞는 등산메이트로 체력적으로도 비슷하고 하산을 하고 술 한잔 마시는 콩고물에 더 기대가 높다는 마음도 비슷하다. 형남이와도 무리 없이 탈 수 있는 돌이 많지 않은 얕은 산을 셋이서 함께 타고, 형남이가 힘들어하면 언니가 안고 가다가 또 천천히 산을 탔었던 날들을 기억한다. 하산을 하고는 형남이를 데리고 식당에 가기가 곤란해서 우리 집에 와서 맛있는 것을 배달시켜 맥주를 한잔하고는 했다. 형남이와 언니와 내가 셋이서 산에서 찍은 사진들을 나는 휴대폰 앨범에 많이 보관하고 있다.
형남이가 떠난다면 언니는 많이 슬퍼하겠지. 평소에는 조금 돌하르방같이 맹한 모습이 있는 언니가 웃을 때면 흩어지는 벚꽃처럼 해맑게 퍼지는데 형남이가 떠난다면 당분간 언니의 꽃이 조금 저물어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 마음의 계절도 조금 거꾸로 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십여 년 전에 소중한 사람을 눈앞에서 잃어본 경험이 있고, 그때부터 계속해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골몰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람은 돈만으로는 살 수가 없는 거구나. 내가 소속된, 신체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적으로 소속된 곳을 정말 원하는 존재구나. 그리고 그 소속된 마음이란 것은 누군가가 나를 챙겨주는 것으로는 만족하는 것은 아니구나. 하고서. 이토록 가까운 이의 죽음이란 것은 사람에게 꽤 급진적인 철학적 의미를 던지고는 한다는 것을,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왔던 것도 같다.
K언니가 형남이의 상황을 보고 연락을 준다고 답장을 보내와서, 무리하지 말고 많이 사랑해 줘. 하고 답장을 보냈다.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은 어쩌면 슬픈 일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알고 살아간다면 소중한 이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은 소중한 시간에 대해서 정말 진심을 다할 수 있게 하기도 하니까. 나도 언젠가는 죽겠지. 죽겠지만 내가 죽더라도 아 정말, 나 최선을 다해서 사랑을 노래하고 다 가져가라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펑펑 주면서 살았구나. 하고 그렇게 저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