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다른 지점에 있던 친구가 일손이 부족해 우리 가게로 파견을 나왔다.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친구가 가고 있다는 전화를 해 와서 알게 되었는데, 친구가 전화로 “나, 너희 지점으로 출근 중인데, 뭐 달달한 음료 같은 거 사가?”하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고는 마음이 조금 찡했다. 나, 조금 외로운가. 했다. 친구의 ‘달달한 거 사가?’라고 묻는 말이 ‘달달한 마음 사가?’처럼 들렸다. 어떤 다정함은 가끔 사람을 쉽게 무너트린다.
잠시 뒤 친구가 와서 우리 가게의 앞치마를 착용하다 손에 익지가 않은지 도움을 청해서 친구의 뒤를 돈 등의 매무새를 만져줬다. 그때 약간, ‘아. 나 진짜 조금 온기가 그리운 것 같기는 하네.’ 하는 생각이 두 번째로 들었는데, 친구에게 가까이 가자 익숙한 섬유유연제 냄새가 났기 때문이었다. 전에 만났던 애인 생각이났다.
그러고는 웃겨서 풉, 하고 웃었다. 친구가 왜 웃냐는 듯 의아하게 쳐다봐서,
“야, 나 막 매일 같은 하루를 반복하잖아. ‘혼자서도 잘 지내요!’ 하면서 읽고 쓰고 달리고 요가하고, 뭐 혼자 산에 가고 저녁에는 일하고. 그런 생활을 잘 지내잖아. 근데, 어쩔 수 없는 사람인가 보다. 나 네가 아까 뭐 사가? 하고 전화를 끊는데, 뭔가 마음이 찡하더니, 네 옷에서 나는 섬유유연제 냄새에 예전에 사귀었던 애인이 생각나면서 다정하고 따뜻한 품이 그리운가. 싶더라.”라고 웃었다. 친구는 야, 그럼 사람인데 다 어쩔 수 없지. 하고 답했다. 그래서 내가 “나는 그래도 읽고 쓰고 달리고 요가하는, 나를 지켜주는 것들이 많은데, 아무것도 없는 혼자 사는 사람들은 어떨까.” 하고 말하니 친구는, “그러면 진짜 벌써 술 먹고 어디 뭐, 약속 잡을 곳 없는지 기웃거리는 삶을 살고 있을 수도 있어.” 하고 말했다. 너에게 그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네가 그렇게 잘 지낼 수 있는 거라며.
나는 어릴 때부터 단체로 하는 모든 행사가 싫었다. 체육대회, 합창대회, 소풍 뭐, 그런 모든 것들을 좋아하지 않았고 보통 ‘~대회’는 학교의 정규 생활이 끝나면 반장의 주도하에 다 같이 모여 연습을 하거나 했는데, 그때마다 어떻게 도망칠지 궁리만 했던 것 같다. 그때의 어린 마음으로는 내가 특별한 것처럼 나는 그런 ‘애’들이랑 무언가를 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 것 마냥 행동했었는데, 돌아보면 참여하지 않는 나를 ‘잡아 주’는 손길을 원했던 것 같기도 하다. 빠지려는 나를 붙잡고 “네가 있어야 해.” 따위를 듣고 싶은, 그런 유약한 마음이 분명 거기에 있었다.
나는 평생 외로움과 자기 증명이라는 두 개와 싸웠다. 늘 외로웠다. 엄마는 나를 사랑했지만, 태어나기를 약하고 예민하게 태어난 언니를 돌보느라 나는 조금 뒷전이었다. 어릴 때 아빠는 폭군이었고 자주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가끔 집에 들어오면 어김없이 엄마와 다투고 물건을 집어 던지고 그릇을 깨고 다시 나갔다. 그런 장면들은 어린 우리에게는 심각한 폭력인 장면이었고 마음이 크게 다쳤다. 아이들의 다친 마음은 어른들의 어루만짐이 필요하다. 내가 엄마에게 쭈뼛쭈뼛 다가가서 엄마의 손길을 원하면 엄마는 부들부들 떨고 있는 언니의 등을 쓸어내리며 “유성아, 너까지 그러지 마. 엄마 힘들어.”라고 했다. 착한 아이였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조용히 내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고 소리가 새어 나갈세라 베개에 얼굴을 묻고 숨죽여 울었다. 나는 그렇게 빨리 ‘시근’이 들었다. 난 요즘도 일찍 철든 아이를 보면 마음이 시리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외로움이 채워지지 못한 채로 나이를 먹었고, 유년 시절의 어떤 결핍은 평생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외로우면서도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인지 끊임없이 스스로 의심했다. 그런 마음의 구김은 어떤 관계에서도 문제가 되곤 했다. 연애를 할 때면 그 사람이 나의 못난 부분을 보고 떠나갈까 두려웠다. 그런 불안은 주머니 속 송곳처럼 숨길 수가 없었다. 운이 좋게도 대부분의 애인은 나를 아주 사랑해 줘서 그런 내 모습조차 더 안아주곤 했었다.
그러나 타인의 보살핌은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았다. 나는 내가 괜찮은 사람인지 끊임없이 의심했고 찾아내야 했다. 내가 그대로도 좋은 사람이라는 증거 따위를. 그 증거를 위안 삼아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치히로에게 사랑받고 싶어 가짜 금을 만들어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미약한 “아, 아.” 소리 따위를 내면서 금을 원하지 않는 치히로에게 금을 권하는 가오나시처럼 나는 내 좋은 부분을 손에 올려두고 그것으로 사랑받으려고 했다. 타인에게도, 또 나에게도.
하지만 나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보여주는 그런 증명은 ‘가오나시의 금’이 마법이 풀리면 진흙으로 변하는 것처럼 쉽게 흩어졌다. 마법을 부리는 것은 마력이 필요한 일이고 마력은 채워져야 했다. 끊임없이 그런 증명에 애쓰면서 살 수는 없었다.
마지막 연애가 끝나고 몹시 마음이 무참했다. 애썼는데,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하려고 애썼는데 또 그렇게 갔다. 갔는데, 나는 어땠나. 나는 나를 사랑했던가. 싶었다. 지겨웠다. 너무 지겨워서 정말 이제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20살에 처음 연애를 시작하고 거의 쉬지 않고 연애를 했는데, 그렇게 살면서 처음으로 연애 중단 선언을 했다. 주변에서 좋은 사람을 소개해 준다는 말도, 어딘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전부 마다했다. 난 이 지긋한 굴레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기 위한 기초공사부터 다시 하기 시작했다. 책을 더 많이 읽고 나에 대해서 골몰하며 글을 미친 듯이 썼다. 정말 ‘미친 듯이’ 썼다. 생활과 생각을 정리하고 어디서 내 생각의 오류가 있는지 점검했다. 비약하지 않아야 했다. 다른 사람의 호의를 다른 뜻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했고, 상처받은 일이 만약 2만큼이면 2 만큼에서 끝내는 연습을 했다. 자기 확신이 없는 사람은 비약을 잘한다. 호의를 다른 의도가 있지 않은지 의심하고 2만큼의 상처를 3, 4로 생각하곤 하는 비약을.
그짓을 그만하기 위해서 힘을 길러야 했다. 그렇게 계속 읽고 썼다. 그리고 생각의 힘을 뒷받침해 줄 체력을 같이 키웠다. 나는 산에 가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체력을 올리고 요가를 하며 근육을 키웠다. 그 네 개의 기둥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다져 올렸다.
그런 생활을 반복하면서 몇 개의 계절이 지났다. 산에 벚꽃이 피는 것을 보았다가 초록이 무성해졌고 단풍이 물들고 추위에 가지만 남아 앙상해진 풍경을 보았다. 그 시간을 지나고 견디며 나는 조금씩 몸과 마음이 단단해졌다.
그런 시간을 보내던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가 너무 좋다고. 나는 정말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누구의 사랑한다는 말도, 칭찬도 필요 없이 난 나를 사랑하고 칭찬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평생 따라다녔던 외로움과 자기 증명에서 나는 비로소 조금 벗어난 기분이 들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나로부터의 해방감이 느껴졌다.
어제 친구에게 그랬다. “근데, 나 살면서 지금이 가장 안정적이야. 너무 행복하고 외롭지 않아. 다른 사람의 따뜻한 품이 가끔 그리운 건, 사람이어서 당연히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 지금이 제일 만족스럽다.” 하면서. 친구는 네가 행복했으면 됐지. 하고 웃었다. 삶은 그런 것이었다. 내가 무엇은 가지든, 누가 곁에 있든 ‘내가 행복했으면 된’ 거였다.
여전히 나는 가끔 내가 싫고 또 넘어질 때도 있지만, 나를 지켜주는 기둥이 있다. 모든 것이 하기 싫은 날도 분명히 있다. 읽는 것도 쓰는 것도 또 요가하고 달리는 것도. 그러나 그럴 때도 그냥 조금이라도 한다. 지난 시간이 그것만이 나를 붙들어 주는 것이란 것을 알게 했으니까. 오늘도 나는 읽고 쓰고 달리고 요가하는 사람일 테지. 나는 그런 내가 이제는 참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