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아야 하는 올, 알아차리기

by 송유성

한 달 전쯤인가 책상 밑에 깔린 천연 섬유로 직조된 카페트에 조그맣게 올이 나갔다. 작은 흠이었기에 나는 아무 조처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 없는 날들을 보내다가 어느 날 의자를 당겨 앉으려는데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의자를 고쳐 앉고 당겨 앉고 하면서 점점 그 흠을 건드리다가 이내 구멍이 된 것이었다. 조그맣던 울은 의자 다리가 숙 들어갈 만큼 큰 구멍이 나 있었다.

생각보다 모르는 척한 죄는 컸다. 카페트는 내 책상 전체와 거울, 책장까지 깔고 있는지라 빼내어 방향을 돌리자니 일이 너무 크고 그대로 있자니 자꾸만 움직일 때마다 걸려서 점점 더 너덜너덜해 져갔다. 나는 다이소에 들러 궁여지책으로 의자에 의자 양말을 신겨 발을 동그랗고 둔하게 만들어 더 이상의 흠집은 내지 않게끔 뒤늦은 처리를 했지만 충분치 않았다. 모든 것은 시간에 지남에 따라 조금씩 유동하고 유동하는 끝에 낡지 않는 것은 없으니까. 결국 꽤 불편한 정도의 구멍이 너덜거리게 되어 이제는 앉을 때마다 조심해야 한다.

며칠 전부터 호르몬의 탓도 있지만 수면의 질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오늘은 몸이 좋지 않음을 느끼며 일어났다. 나는 매일 새벽 러닝을 하고 조금 쉬었다가 오전에 요가 수련도 가는, 생활체육인인 이지만 오늘은 새벽 러닝을 패스하고 요가복을 입고서 책상 앞에 계속 앉아 있었다. 그렇게 글을 쓰다가 수련 시간이 다 되어서 나가려는데, 몸의 으슬거림이 예사롭지 않았고 잠시 고민하다가 ‘오늘의 생활체육인, 쉬어갑니다.’ 하고 몸에게 연차 통보를 때렸다. 다시 책이나 읽고 쉬려 책상에 앉는데 무신경하게 당겨 앉은 의자 끝에 또 카펫의 구멍이 커져 버렸다. 조금, 아연실색하다가 문득 몸과 마음의 일도 그런가, 싶어졌다. 조그만 흠일 때 모르는 척하면 정말 애써도 돌이키기 쉽지 않은, 그런 일.


어느 가을날 아침의 일이 생각난다. 그때 만나던 애인이 자신의 이직한 회사의 대표가 자신에게 종이를 얼굴에 들이대며 삿대질을 하면서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한다고 담담히 고백킬래, 그 사람이 혹여나 몰랐던 비인간적 대우를 자신이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까 애써 놀란 가슴을 누르며 “사람의 마음이란 게 한번 다치면 생각보다 회복이 더뎌요. 존엄을 상실하면서까지 버텨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 사람과는 서로 더 이상 슬퍼 말자고 이별한 뒤 세 번의 계절이 바뀌고 다시 만났었는데, 다시 만난 애인은 늘 담담하고 담대한 그 사람답지 않게 조금 위축되고 자신감이 많이 꺾인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애인은 그때 톡하고 부러져 남은 수분이 다하면 시들 운명을 받아들인 민들레 같기도 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손을 잡고 따사로운 아침 햇살에 가만히 빵을 굽고 있는 노란 얼룩의 길고양이를 보고 있었는데. 나는 따뜻한 장면을 보고 있으면서도 무척 마음이 시렸다. 사랑하는 사람의 희미해져 가는 자기애를 보는 일은 참 가슴이 아프면서도 알은 채를 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자신이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잘 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눈앞에 처리해야 하는 일들로 자신의 부상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고 지나갈 때가 많다. 작은 거스러미로 시작했다가 자꾸 타인의 말에, 상황에, 일에 스치고 스치면서 어느새 조그맣게 핏방울이 맺히고 그러다 탁, 터졌을 때는 조그만 밴드로는 막을 수도 없다. 그렇게 다친 마음은 사실 무슨 연고도 잘 들지를 않아서 도망치듯 떠난 여행지나 친구와 마시는 몇 잔의 술로는 전혀 회복될 가능성도 없고 나는 또 아파하면서 내 터지고 곪은 상처를 끌어안고 눈물로 밤잠 새우게 된다.

나를 망가트리고 상처 주면서까지 가야 할 목적지나 성장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피로하고 힘들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한 ‘여정’에 서 있기 때문에 상처가 되거나 녹초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체력적으로 지친다면 휴식도 필요하긴 한 법. 나는 사람들이 자꾸 자신이 어느 정도까지의 ‘올’이 구멍이 되지 않고 견뎌지는지 자신의 발밑을 애써 들여다보고 또 초기에 꿰맬 수 있다면 수습하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구멍이 너무 커져 늘 신경 쓰며 예민하게 살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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