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말고 다른 것이 떠올랐으면 했어요

by 송유성

그날은 새해였어요. 그 사람이랑은 살면서 처음으로 그렇게 울면서 사랑도 해보고 나도 뒤로하고 달려도 가보고 안 해본 짓만 잔뜩해서 새해에도 안 해본 짓을 하러 갔어요. 살면서 처음으로 일출을 본다고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났어요.


그가 새해 일출을 보러 간 적이 평생 한 번도 없다고 했거든요. 나는 그 사람이 안 해봤다는 말이 도파민이에요. 미쳐요. 다해주고 싶어서 심장이 막 뛰어요. 저도 일출을 보러 가본 적도 없고 매일 뜨는 해가 뭐 별건가 하는 사람이었지만 그와 함께하는 처음은 다 의미가 되니까 살면서 처음 일출이 보고 싶어졌지요.

저는 사람이 많은 곳도 이벤트도 축제도 싫어해요. 무슨 날이니까 다 같이 뭘 기념해야지 하는 것들은 청개구리처럼 더 안 하고 싶어요. 근데 그 사람을 만나면 자꾸 그런 것들을 다하고 싶었어요. 그가 저보다 더 청개구리처럼 안 하고 살아서 그 청개구리를 납작하게 만들고 싶었거든요. 저는 그 사람을 만나는 동안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된 것 같았어요. 다 같이 왼쪽으로 짝짝짝, 오른쪽으로 짝짝짝 같은 것을 외치면서 그 사람이랑 같이 즐겁고 싶었거든요. 사실 아주 활기차게 외쳤는데요, 저는 완벽하게 내성적인 사람이에요. 게다가 적극적이지 않은 참여자는 강사도 힘든 대상이에요. 그는 수업 시간 내내 저를 참 힘들게 하는 학생이었어요.

그렇지만 그 사람은 제가 옆에서 이거 해요, 저거 해요. 하면 내키지는 않아 했지만 다 해주긴 했어요. 툴툴거리면서 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해는 안 되는 데 제가 하자고 하면 대답 안 하고 있다가 나중에 방법을 찾아서 와요. 그 사이의 시간 동안 나는 자주 싫은 것을 하자고 했나 맘 졸이는 시간이 있었는데요, 그는 언제나 즉각 대답 안 하고 후에 방법을 가져와요. 바로 대답 좀 해주면 어디 돈 드나요. 진짜 청개구리의 후손이다 싶었어요.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랑 비슷했던 것 같아요. 제가 우리 사랑이나 할까요? 하고 물으면 가만히 있다가 후에 주머니에 사탕 같은 것을 넣어주곤 하는. 당연하게도 우리는 종종 필요 없는 오해로 많은 낭비를 하기도 했지요.

아무튼 새해에 일출을 보러 가요! 라는 제 말에 한동안 또 아무 말도 않더니 부산 근교에 있는 일출 명소들을 그가 검색해 왔어요. 그중 집에서 너무 멀지 않고 너무 오래 오르지 않는 바다가 보이는 작은 산을 선택했어요. 12월 31일, 우리는 해가 뜨는 시간을 검색하고 알람을 맞추고 잤어요. 일찍 자야 했지만 애써 나는 그와 자정까지 깨어 있었어요. 말해야만 하는 것이 있었거든요.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면 그의 눈을 보면서 꼭 인사 같은 소원을 말해야 했거든요. 올해도 잘 부탁해요. 꼭이요. 하고요.


전날 자정을 지나 자서 눈꺼풀이 아주 무거웠지만 보온병에 따뜻한 커피를 담아 우리는 아주 깜깜한 새벽에 산의 입구에 도착했어요. 그 산은 유명한 일출 명소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미 랜턴을 들고 출발 준비를 이미 하고들 있었어요. 저는 어두운 산은 무서워하지만, 그날은 무섭지 않았어요. 아마 아무도 없었어도 무섭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가 등산용 장갑을 제 손에 끼워주고 제 손을 잡고 올라가 줬으니까요.


생각보다 산은 가팔랐어요. 1시간 반이 되지 않는 시간만 오르면 정상에 도착하는 낮은 산이었지만 그만큼 계속 돌계단을 올라야 하는 산이었어요. 게다가 그날은 해를 봐야 한다는 미션이 있었기 때문에 시간제한까지 있었죠. 쉬면 해를 못 봐요. 해를 못 보면 소원을 못 빌어요. 저는 그날 꼭 빌어야 하는 소원이 있었거든요. 당신과 올해뿐 아니라 오랫동안 손잡고 산을 오르게 해주세요. 하고요. 살면서 간절한 소원이 있어서 처음으로 새해에 등산을 하는데 해를 못 보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숨이 턱까지 차고 그 추운 겨울에 등이 땀으로 흠뻑 젖었는데 쉬지 않고 계속 올랐어요.


터질 것 같은 허벅지를 참고 겨우 정상에 도착했어요. 정상에 이미 좋은 자리는 사람들이 다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고 돗자리를 펴서 간단한 아침을 먹거나 새해의 들뜬 마음을 축하하기 위해 막걸리병을 여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낮은 산이지만 산은 산이라고 정상에는 강한 바람이 불었어요. 저는 사람들을 피해 적당한 자리에 쭈그리고 앉았는데 그는 제 옆에 그냥 서 있었어요. 옆에 나란히 앉자고 해도 서 있어요. 말 참 안 들어요. 근데 항상 그래서 그냥 내버려 뒀어요. 내가 일출을 보고 싶다고 하니 여기까지 와주고 어쨌든 내 옆에서 손잡고 있어 주니까요. 가지고 온 따뜻한 커피에 몸을 녹이며 그 사람 손을 꼭 잡고 해만 뜨기를 한참 기다렸어요.


하필이면 살면서 처음 일출 보러 산을 갔는데요, 구름이 많았어요. 저는 마음이 초조해졌어요. 초조해서 자꾸 그 사람에게 해가 안 뜨면 어떡하죠. 해를 못 볼 것 같아요. 하고 말했는데 정작 소원의 근원지는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어요. 내가 무엇을 빌려고 이렇게 초조한지도 모르고 그냥 가만히 서 있었어요. 일출 시간은 한참을 지났고 하늘은 밝아졌지만 내가 기대한 동그랗고 빨간 해는 볼 수 없었어요.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오늘 해 못 보겠네. 하면서 하나둘 포기하고 하산하기 시작했어요. 마음이 너무 섭섭했어요. 그런 것에 의미 부여하는 사람은 아닌데 그날은 의미를 커다랗게 부여하고 갔잖아요. 그렇지만 이런 것에 섭섭해하면 그가 나를 미숙하게 생각할까봐 아무렇지 않은 척 마음이 중요한 거지요, 마음이. 하면서 쿨한 척했어요. 그가 같이 새해에 산에 올라온 것이면 충분한 거지요. 라고 했어요. 그답지 않은 말들이 자꾸 저를 살려요.


우리는 결국 일출을 보지 못하고 다시 올라왔던 길을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등산을 좋아하는 그는 몸이 지친 건지 마음이 지친 건지 지쳐있는 저랑은 다르게 척척 잘도 내려가요. 속도에 맞춰 걸어주지는 않아도 기다려는 줘요. 한참 혼자 내려가다 한 번씩 서서 저를 쳐다봐요. 그러면 저는 쪼르륵 다가가고, 또 그가 혼자 척척 내려가다가 뒤돌아보면 저는 쪼르륵 다가갔죠. 그렇게 그날 하산도 우리 사이같이 했어요.


지상에 다다르니 해가 이미 중천이에요. 해가 머리 위로 쨍하게 떠서 잘만 보여요. 해가 얄밉기는 또 살면서 처음이에요. 그래도 그와 첫해를 봤던 그날을 생각하면 좋았던 것 같아요. 쪼그리고 앉아있는 내 옆에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그가 있었으니까요. 해를 보지 못해서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괜찮은 것 같아요. 그도 살면서 일출을 보러 처음 가본 날이고 무엇이든 처음은 잊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오랫동안 그와 손잡고 산은 못 오르게 되었지만, 그도 그날을 기억하기는 할 거니까. 그거면 ‘오랫동안’의 부분에서 소원이야 반쯤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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