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과 6월, 산청에 갔어요. 살면서 산청이라는 동네는 처음 가봤지요. 지리산에 있는 산청은 순전히 에어비앤비에 있는 숙소 때문에 가게 되었어요. 그 사람과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숙소 담당이 저였거든요. 여름이 오기 전인 늦은 유월, 초록은 무성하고 더위는 덜했어요. 여행을 가기 적당한 날씨였지요. 그때도 저는 그 사람을 갖지 못해 안달이 나 있는 상태였어요. 그래서 시골집을 찾았어요. 아주 깊은 시골집에 가둬두고 아주 많이 그를 사랑하고 싶었거든요. 가둬두면 물리적 상황 때문에 내 것이 될 것만 같았거든요.
같은 값이면 편리하고 신식인 펜션을 선호하는 그에게 숙소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겠다고 고집부렸어요. 주변에 편의점도 없는 시골집을 찾느라 경북에 있는 에어비앤비는 다 본 것 같아요. 그러다 찾은 곳이 산청에 있는 방 두 개의 작은 마당이 있는 독채였답니다.
장마였고요. 비는 언제나 일기예보와 달랐어요. 산청 여행을 가기 직전에 비가 어마어마하게 왔어요. 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는 걱정을 했습니다. 여행 가다가 죽을 순 없지 않으냐고요. 전 당신이라면 가다가 죽어도 나쁘진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다음 주 일기예보엔 비가 그친다고 되어 있다며 그를 다독였죠. 다행히 비가 그쳤고 우린 부산에서 산청으로 출발했어요.
새로 입사한 그가 차량 지원을 받기 전 임시로 받은 커다란 스타렉스 차량을 둘이 함께 타고 산청을 갔어요. 뒷좌석에는 회사 비품이 실려있어서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비품들이 차량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 커다란 차량에 키도 작고 체구도 작은 우리가 타고서 첫 여행을 갔지요. 블루투스도 연결되지 않는 구형 스타렉스였던 탓에 언제나 음악을 듣는 나를 위해 그가 옥스선을 구매해 뒀어요. 말하지 않아도 나를 보고 있는 그가 있다는 것이 가끔 마음을 벅차게 하곤 했습니다. 산청에 다 와서는 다시 비가 많이 왔고 큰 강들은 범람해서 모든 강변을 잡아먹을 듯이 넘실거렸죠. 산에 걸려있는 운무들이 지리산의 웅장함을 더했습니다. 산청을 가면서 안개가 짙게 깔린 지리산의 오도재를 지나갔습니다. 구불구불 커브길로 구성된 드라이브 코스는 지리산의 절경을 그대로 느끼게 해 주었죠. 차 천장을 통해 도토리가 쏟아지듯 굉장했던 빗소리와 덜컹거리는 차의 소음과 작게 틀어 놓은 재즈와 그가 있었죠. 그때 저는 세상에 그와 나만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운전석과 보조석 사이도 꽤 멀었지만, 불편한 상태로도 맞잡은 두 손이 오히려 좋았습니다.
그때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산을 봤을까요. 제 마음을 봤을까요.
도착한 숙소는 대나무로 입구가 막아져 있었죠. 숙소로 들어가는 초입의 입구가 좁아서 차로 그 대나무를 조금 밟아 먹었던 기억도 납니다. 사흘간 묵었던 숙소는 작은 앞마당이 있었고 낡았지만 깨끗했어요. 화려하고 모던한 디자인은 아니었지만, 눈앞에 보이는 압도적인 산뷰가 우리를 너무 작게 만드는 것 같아서 손을 더욱 꼭 잡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잘 왔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곳에서 저는 그와 만나고 비로소 안정적이었습니다.
산청에 도착하자마자 그 어떤 아픔도 없어졌어요. 낯선 곳이었고요, 고즈넉한 산과 들을 좋아하는 노부부 같은 우리에게 멋진 장소였거든요. 낯선 곳은 사람을 결속시키고 결이 맞는 공간은 사랑을 꽃피우게 만들죠. 돌아보니 산청에서의 삼일, 어쩌면 그와 내가 유일하게 하나였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헤어지는 날 그도 그러더군요. 산청이 좋았지. 하고요.
숙소에는 길고양이가 참 많았어요. 무뚝뚝하고 매정한 소리를 잘하는 그 사람이었지만 지나가는 길고양이를 만나면 발걸음을 멈추지 않은 적이 없어요. 아마 저는 그 사람의 그런 틈들을 사랑했던가 싶어요. 싫어하는 직장 동료지만 배려를 갖추는 모습, 길고양이를 사랑하는 모습,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먹을 때까지 당신의 체크리스트에서 빼지 않는 모습 같은 것들요. 그 사람은요, 또 좀 보고 있으면 웃겨요. 고양이 말이야, 좀 저렴한 돼지고기를 사서 구워 줄까. 라고 물으니 안된대요. 버릇 나빠진다고요. 그러면서 진중하게 대용량 핑크햄과 맛살 중 어느 것이 더 가성비 있는지 진지하게 보고 있어요. 고양이는 염도 있는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내 말에 길고양이는 어차피 단명하니 많이 먹는 게 나을지도 모른대요. 그걸 두 개를 들고 다 큰 어른이 진지하게 비교하고 있는 걸 보자면 웃음이 나요. 그럼 저는 다가가 뽀뽀 세례를 퍼부었죠.
그와 고립되어 행복했던 산청이 지금은 제 마음에 고립된 채로 아파요. 하염없이 흐르는 날 주워 담아 그의 옆에 담겨 있었던 유일한 시간이었나 싶어요.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마셨던 와인, 당신이 나를 바라보는 시간과 고양이들이 서성이고 있던 장소들이 생각이 납니다. 그가 없는 지금, 저는 그날의 일기를 펼쳐봅니다.
‘당신과 보낸 이틀이 조용하고 온화해서 좋았습니다.
당신 곁에서 무탈하게 함께 있고 싶습니다.’
산청에서, 유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