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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Jan 01. 2024

비극의 역사 뒤에 감춰진 강대국의 민낯(1)

팔레스타인 비극의 역사(4)


 1948년 5월 14일,

유대인들에겐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그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꿈이 이루어진 날이기 때문이다.


 2000여 년을 발붙일 곳 하나 없이 세계 각 처로 뿔뿔이 흩어져 살며 온갖 핍박을 받던 유대인들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몇 년 후, 그들의 유일신 야훼로부터 약속받은 땅인 가나안(현, 팔레스타인지역)에  마침내 그들의 조국, 이스라엘을 건설하고 세계 강대국들의 승인까지 받게 된다. 그 누구도, 심지어 그들 자신조차도 감히 실현되리라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그야말로 신만이 가능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건 그 어떤 고난에꺾이거나 포기하지 않고 그들의 문화와 민족성, 종교를 끝까지 지키며 버텨온 유대인들의 위대한 정신적 승리란 걸 결코 부인할  없다.


 차별과 박해가 심할수록 더욱 뭉치고 단단해졌던 그들의 염원이 시오니즘으로 응집되면서 급물살을 탔고, 그동안 세계 각지에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유대인들의  높아진 위상 또한 큰 몫을 했으리란 걸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국의 이익 앞에선 그 어떠한 명분이나 대의, 정의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참히 내던져버리는 강대국들의 추악한 민낯이 도사리고 있었다.


벨푸어 선언 (1917년, 5월)


영국 정부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들의 민족적 고향을 건설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기존 비유대인 주민들의 민권과 종교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행위가 행해지지 않을 것으로 명확히 이해한다...

                                         <벨푸어 선언>의 일부


 유대인들이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영국 외무장관 벨푸어가 영국 내 유대계 재벌 로스차일드경에게 보낸 짤막한 서신이었다.

 

 흔히 벨푸어 선언이라고 일컫는 이 서신에서 영국 정부는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민족적 고향을 건설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내용을 적극적으로 밝히고 있다.

 

1917년에 쓰인  문서는 1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서 재정적인 도움이 절실했던 영국이 거대 유대 재벌에게 펼친 적극적인 구애였고, 시오니즘으로 조국건설의 열망이 극에 달했던 유대인들은 그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며 향후 자신들의 조국건설에 대한 명분과 정당성의 근거로 삼았다.

 

 심지어 몇 백 년을  땅에서  살아온 팔레스타인들의 의견은 전혀 고려치 않은 채 암암리에 이루어진 거래는 지금 이 시간에도 여전히 진행 중인 팔레스타인 지역의 비극을 초래한 최초의 씨앗이며 또한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철저하게 계산된 강대국 영국의 검은 속내가 숨겨져 있었다.

 영국은 이미 아랍과도 비슷한 술수로 탐욕의 마수를 뻗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맥마흔 선언 (1915년, 10월)


 맥마흔 선언은 제1차 세계 대전이 진행 중이던 1915년 10월, 상대국 오스만 제국의 기세가 만만치 않자 이집트 주재 영국 고등 판무관 맥마흔이 메카의 아랍 지도자 셰리프마호메트의 자손인 후세인과 10차례에 걸친 왕복서신을 주고받으면서, 아랍인이 봉기하여 오스만과 맞서 싸워준다면 전후 아랍 인의 독립 국가 건설을 지지한다고 약속한 선언이다.

 이에 아랍인들은 단결하여 싸웠고 결국 오스만을 패배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영국은 자신이 이미 아랍인들과 한 약속은 개의치 않고, 유대인들과 또다시  맥마흔 선언과 모순되는 내용의 벨푸어 선언을  것이다.


 당시, 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승리만을 목표로 삼았던 영국은 앞뒤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여기저기에 거짓 약속을 남발하는데, 사실 영국의 속셈은  따로 있었다. 중동지역울 집어삼키려는 그 검은 속내가 드러난 건 후 볼셰비키 혁명으로 러시아가 공개한 영국과 프랑스의 비밀협정 문서를 통해서였다.


사이크스 피코 협정 (1916년, 5월)


사이크스 피코 협정의 지도

 위와 같이 모순된 내용의 선언을 마구잡이남발한 것으로 보아, 영국은 애초에 자신이 약속한 것을 지킬 마음이 없었다는 사실  프랑스와 맺은 사이크스 피코 협정에서 정확히 드러난다.


1916년 5월, 영국은 러시아 제국의 동의하에, 당시 식민지 쟁탈전에 있어서 라이벌이었던 프랑스와  비밀리에 협정을 맺게 된다.


 영국 대표 마크 사이크스와 프랑스 대표 조르주 피코가 오스만이 지배하던 아랍 민족 지역의 분할을 결정한 비밀협정으로, 프랑스는 시리아·레바논을, 영국은 이라크·요르단을 세력범위로 하고, 러시아에게도 오스만의 동부지방을 주며, 팔레스타인은 공동 관리한다는 내용이었다.


 영국은 아랍지역의 풍부한 자원(석유)과 지리적 위치의 중요성을 이미 간파하고  그 지역을 차지할 흑심을 이전부터 품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



다음 편
비극의 역사뒤에 감춰진 강대국의 민낯(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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