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속에서 역사를 읽다(1)
상영된 지 20년도 더 된 영화 '글래디에이터'가 요즘 뭇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올 11월 '글래디에이터 2'가 개봉을 앞둔 까닭이다.
평소에 너무 폭력적이거나 잔인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그런 장면들의 집합체인 전쟁이나 전투를 다루는 영화는 애써 찾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영원히 변할 것 같지 않던 나의 편협된 기호도 역사에 관심을 가지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인간이 오늘날까지 생존해 오면서 자신들의 문화와 이질적인 타 집단과의 마찰은 결코 피할 수만은 없는 일이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분쟁 또한 역사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 필요불가결한 요소임을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통과의례처럼 수없이 반복되는 전쟁을 통해 습득된 전략과 전술, 무기 등의 비약적인 발전이 번번이 새로운 강자를 역사의 무대 위에 올려놓았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하여, 이번 기회를 통해, 로마제국이라는 매력적인 역사적 배경하에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상상력이 가미된 글래디에이터라는 영화를 1편부터 찬찬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이 영화의 배경은 로마제국시대 중 Pax Romana로 불릴 정도로 평화로웠던 5 현제 시대의 마지막 왕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왕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건국 이후 2명의 집정관과 원로원 중심의 공화정을 유지했던 로마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그의 양자인 아우구스투스가 제1대 황제로 등극하면서 제정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그 이후 빈번하게 교체된 여러 왕들로 부침을 겪다가 원로원 출신의 네르바가 왕으로 추대되는 것을 시작으로 연이은 5명의 어진 왕들이 저마다 현명한 통치로 로마를 다스리는, 이른바 태평성대인 Pax Romana 시대가 열린다. 그 당시 로마는 그 어느 때보다 넓은 영토를 차지했으며 그 평화는 100여 년간 이어졌다.
하지만 5 현제 중 가장 탁월한 왕이었고, 철학자였으며, 전쟁 중에 쓴 '명상록'의 저자로도 유명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왕의 아들 콤모두스가 정권을 이어받으면서 로마는 서서히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아들인 자신을 제치고 게르마니아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막시무스 장군(커트 러셀, 가상의 인물)에게 왕위를 물려줄 거라는 말을 선왕인 아버지에게 직접 들은 콤모두스(호아킨 피낙스)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왕에 오른다는 영화 속 설정은 사실 역사적 기록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기록에 따르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왕은 게르마니아 전쟁 중 병사했으며, 콤모두스는 지혜로운 아버지 밑에서 어릴 때부터 왕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아왔다고 한다. 왕위에 등극한 초기에는 그래도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나라를 잘 이끌어갔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정치 상황과 믿었던 누이와 측근이 감행한 자신에 대한 암살미수 사건으로 인한 충격 등으로 성격이 점점 변해갔고 급기야 희대의 폭군으로 악명을 떨치게 된다.
영화에선 왕이 된 코모두스가 자신에게 충성하지 않는 위협적인 라이벌을 그냥 놔둘 리 없었다. 그의 가족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것도 모자라 막시무스까지 처형하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관객이 흔히 예상하듯 주인공인 막시무스는 죽음직전에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하고 어느 식민도시의 노예로 팔려 검투사의 길을 걷게 된다.
뛰어난 실력으로 승승장구하며 검투사로서 로마시민들의 사랑을 한껏 받게 된 막스무스지만 그는 오직 원수인 콤모두스를 죽이고 선왕의 뜻인 공화정을 이루는 데에만 뜻을 두고 있었다.
막시무스는 옛 연인이자 동생 콤모두스를 혐오하는 공주 루실라와 뜻을 같이 하는 원로원등과 반란을 획책하지만 사전에 탄로 나 실패로 끝난다.
하지만 오만함과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콤모두스가 막시무스에게 직접 검투시합을 제안하게 되고 마침내 콤모두스를 처치한 막시무스는 그의 뜻을 이루며 장렬히 전사한다.
영화[글래디에이터]는 어떻게 보면 파란만장한 한 인물의 영웅담을 그대로 답습한 평범한 플롯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위에 거장의 손길이 더해져, 아주 흥미진진하고 스펙터클한 전개로 오랜 세월 세간에 회자되는 명작으로 남을 수 있었다.
공화정으로 시작한 로마는 전제 군주제로 바뀐 이후에도 옛 제도에 대한 향수를 끝내 놓지 못한 듯 늘 공화파와 왕당파의 대립으로 점철된 역사를 써 내려갔다.
고대에서 근대로 넘어오기 전까지는 다수의 의견을 취합하는 민주주의나 공화정보다 왕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제가 더 발전된 형태이고 보면, 어쩌면 전제군주제는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넘어 다른 대륙으로 그 세력을 확장하는 단계에서 필연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정치체계였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권력이 한곳에 집중되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왕과 원로원들의 상호 견제로 정치를 이끌어갔으며 이를 용납하지 않고 독재와 폭정을 일삼는 왕은 어떻게든 제거되는 수순을 밟았다.
영화 속에서처럼 폭군이었던 콤모두스는 실제 검투시합에 열광했으며 자신이 직접 시합에 나가 승리한 경우도 허다했다 한다.
사료에 의하면 그는 결국 자신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측근에 의해 암살되었고, 사후 로마는 수많은 왕위쟁탈전을 방불케 하며 급속도로 무너져 내렸다.
로마 역사상 가장 뛰어난 왕중 하나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왕은 그 명성에도 불구하고 본의 아니게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긴 셈이다.
그보다 앞선 왕들이 어릴 때부터 눈여겨보았던 이를 양자로 삼아 왕의 자리를 그에게 내어주는 양자상속의 관습을 깨고, 친자식에게 왕위를 세습하게 함으로써, 자격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왕이 결국 천년의 제국을 무너뜨리는 단초를 마련해주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실력이 검증되지 않는 장자 세습은 많은 폐단을 낳는 법,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식이 원수'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