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역사에서 진정한 영웅이란?

영웅에서 반역자가 된 테미스토클레스(2)

by 정현미

대제국 페르시아를 상대로 누구도 예상치 못한 대역전극을 이루어냈던 살라미스 해전의 영웅 테미스토클레스, 하지만 그 찬란했던 영광이 빛을 바래는 데는 채 10년이 걸리지 않았다.

그가 도편추방을 당하고, 거기다 페르시아와 내통했다는 혐의가 덧씌워져 그리스 전역을 전전하다 결국 자신이 무너뜨린 적국 페르시아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은 기막힌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의 이런 드라마틱한 인생에 대해선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했으리라 추정된다.

우선 그는 순수한 그리스 혈통이 아니었다.

그리스인 아버지와 이민자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혈통을 중요시하는 그리스에서 결코 우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없었다.

그리스 정통 귀족들이 좌지우지했던 그리스 정치판에서 그나마 명함이라도 내밀려면 개인적인 역량을 넘어선 그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는 동질감을 느낀 평민계급 속에서 그것을 찾은 듯하다.


당시 중장보병 중심의 육군 육성에 주안점을 두었던 귀족세력에 반해 일찌감치 바다에서 미래를 본 그는 전함으로 무장한 해양세력만이 그리스가 나아갈 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쟁에서 함선 하나를 동원하려면 막대한 자금과 함께 적군과 직접 싸우는 해군뿐만 아니라 배의 동력역할을 하는 수많은 노잡이들이 필요했다.

당시 그리스에서는 전쟁에 참가해 공을 세우면, 어느 정도의 부와 지위 상승이 보장되는 사회였지만 참전을 위한 모든 준비는 개인의 몫이었다. 그나마 갑옷과 무기를 직접 구입해야 했던 중장보병은 그래도 어느 정도 먹고살만한 평민이상의 계급이었던 반면, 가진 것이라곤 자기 몸뚱이 하나밖에 없었던 그 이하의 사람들에겐 함선의 노잡이가 그나마 입에 풀칠하고, 지위 상승까지 노릴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을 것이다.

테미스토클레스의 계획대로 함선을 이용한 해전에서,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적국을 상대로 대승을 거둠으로써 전쟁에 참여했던 하층민들의 지위와 발언권은 점 점 더 세졌고, 그들을 지지 기반으로 했던 그의 위상은 날로 높아져 갔다.

뿐만 아니라 그가 닦아놓은 바다중심의 세계관은 그리스를 해상무역의 강국으로 발돋움시켰고, 이를 이용해 많은 돈을 벌어들인 해양무역 상인들 또한 그의 지지기반을 이룬 세력의 한 축을 담당했으리라 능히 짐작 가능하다.




치솟는 인기만큼, 대내외적으로 그를 노리는 적들도 늘어났다.

살라미스 해전 이후 파괴된 아테네의 재건과 성곽 건설을 강행해 스파르타의 미움을 샀으며, 날로 높아지는 그의 위상에 위기의식을 느낀 건 귀족세력들 또한 그를 눈에 가시로 여겼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의 두터운 지지를 등에 업고 있는 동안은 그를 감히 어쩔 수 없었다. 다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칼을 갈며 때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고, 그것을 앞당긴 건 어쩌면 테미스토클레스 자신이었다.


인기에 취했는지, 권력욕에 사로잡혔는지, 그토록 영민하고 뛰어났던 그도 점점 오만과 독선에 빠진 것이다.

자신의 위대한 업적을 찬양하는 연극이나 작품의 활성화를 독려하는 것까진 봐줄 만했지만, 그리스인들이 신성시하는 아테나 여신의 신전을 집 근처에 짓는 것도 모자라, 그곳에 자신의 동상까지 세운 건 그리스인들의 불편한 심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자신들을 지탱해 온 민주주의를 조금이라도 저해하는 독재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고 생각한 순간, 그가 누구든 6000개 이상의 도자기 파편을 무기 삼아 국외로 쫓아버림으로써 아예 그 싹을 잘라버리는데 익숙한 그리스인들은, 한 때 구국의 영웅이었던 테미스토클레스 마저 그렇게 국외로 추방해 버렸다. 어떠한 변명도 허용되지 않았기에, 그의 입장에선 억울할 만도 하겠지만, 그 또한 도편추방제의 맹점을 이용해 정적을 여러 차례 축출한 사례가 있었으니 자신만이 피해자라고 주장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스에서 쫓겨나 인근 여러 나라를 전전하던 그에게 엎친데 덮친 격으로 좋지 않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살라미스 해전 직후, 그리스에 남아있던 페르시아의 잔당과 치른 플라타이야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던 스파르타의 장군 파우사니우스가 페르시아와 내통했다는 혐의로 죽임을 당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불똥이 테미스토클레스에게 튄 것이다.

몇 년을 국외에서 머물다가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던 그는, 이제 천인공노할 역적이 되어 그리스뿐만 아니라 그동안 앙금이 깊어진 스파르타의 끈질긴 추격 속에서 더 이상 그리스에 발을 붙일 곳이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마지막 선택지는 적국 페르시아였다.

자신이 직접 패전시킨 나라를 두 발로 직접 찾아가 왕에게 읍소했고, 페르시아의 왕은 선왕 크세르크세스의 원수인 그를 받아들여 극진히 대접했다고 하니, 다른 건 몰라도 뛰어난 언변술은 나이가 들었어도 녹슬지 않았나 보다.


테미스토클레스의 죽음에 대해선 이견이 분분하다.

페르시아 왕으로부터 하사 받은 한 지방을 다스리며 여유롭게 살다가 자연사했다는 설과 그리스를 다시 침략하는데 앞장서라는 페르시아의 명령에, 차마 조국을 칠 수는 없어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 주요 기록이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숱한 인생사들을 접한다. 어쩌면 역사란 기록된 인생사들의 모음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수많은 새옹지마와 호사다마의 실례들이 녹아있다. 한 때 좋다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며, 당시 심한 고초를 겪는다고 해서 그 인물의 인생이 영원히 고난의 연속일 거라고 비관할 수도 없다. 그리고 개인의 뛰어난 역량을 떠나 주도권을 잡은 세력의 시각에 따라 악인이 영웅이 되기도 하고, 위인이 처세술에 능한 모사가로 평가절하되는 것도 부지기수이다.


진정 영웅으로 남는 경우는 업적을 이룸과 동시에 그 현장에서 장렬히 사망하거나 이후 역사의 중심에서 멀어져 호사가의 관심 범위에서 아예 사라지는 것이라는 생각에 괜한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정한 아이러니 때문 에라도 오늘날의 역사 공부가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온갖 이념들이 점점 더 난무하는 이 시대에, 과연 나는 어떤 시각으로 각각의 사건들을 바라보아야 할까?

고도로 발전하는 과학 기술과 달리, 하루하루 퇴행하는 듯한 억측과 극단의 이념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난 어떤 생각을 견지하며 살아야 할까? 나의 고민 또한 깊어진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