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적 영웅이 된 테미스토클레스(1)
세계사의 큰 흐름을 바꿔놓은 살라미스 해전의 주역 테미스토클레스는 대제국 페르시아를 상대로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대승을 거둠으로써 일약 전 그리스인들의 영웅이 되었다.
가는 곳보다 열화와 같은 환영과 지지를 받았고 그리스 전역에서 그를 초청해 융숭한 대접과 존경을 표하는 일이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리스인들의 가장 큰 축제인 올림픽 경기 중에도 그가 나타났다 하면 모든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바람에 경기 진행이 힘들 정도였다고 하니, 그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사랑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짐작가능하다.
그러던 그가 말년에는 도편추방제에 의해 아테네에서 추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반역죄로 기소되어 그리스 전역을 돌며 도피생활로 전전했다고 한다.
과연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테미스토클레스는 여러 가지 면에서 뛰어난 인물이었다.
현 정세를 정확히 꿰뚫어 보는 직관력과 통찰력은 말할 것도 없고, 미래를 예측하는 예지력까지 갖춘 보기 드문 위인이었다.
그의 이와 같은 능력은 여러 일화에서 빛을 발한다.
살라미스 해전이 벌어지기 2년 전, 아테네의 큰 광산에서 대규모의 은광이 발견된다.
여기서 나온 수익을 배분하는 문제를 놓고 그리스 전역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졌는데, 그 과정에서 테미스토클레스는 그 수익의 대부분을 함선 제조에 쓰자고 제안한다.
페르시아를 상대로 마라톤에서 대승을 거둔 후였지만 머지않아 상대국이 패배에 대한 설욕전을 걸어오리란 걸 확신하고 있던 그는, 앞으로 그리스가 나아가야 할 곳은 바다라고 생각했다.
그의 혜안으로 아테네는 200여 척에 달하는 갤리선을 제작하였고, 이는 곧이어 닥친 페르시아 군을 살라미스에서 대패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을 뿐만 아니라 향후 아테네가 해양강국으로 나가는 밑거름 역할을 톡톡히 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이를 상황에 맞게 적절히 이용하는 심리전에도 능통한 사람이었다.
테르모필레에서 승리한 페르시아 군이 아테네로 진군해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테미스토클레스는 급히 아테네로 가서 시민들에게 살라미스로 대피할 것을 요구했지만 자신의 고향을 차마 버릴 수 없었던 시민들은 요지부동이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이때 한 가지 기지를 발휘한다. 마침 시민들이 신성시했던 아테네 신전에서 늘 똬리를 틀고 있던 뱀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아테네를 떠나라는 신의 계시라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리고 무녀에게 받은 신탁의 내용 중에 나무로 만든 성채만이 희망이라는 메시지에서 그것은 함선을 가리킨다고 설득함으로써 대부분의 시민들을 겨우 아테네에서 탈출시킬 수 있었다.
나중에 텅 빈 아테네를 점령한 페르시아 군이 복수심과 분노로 아테네 전역을 불사르고 미처 떠나지 못한 시민들을 학살한 걸 보면 그의 예지력과 대처 방법이 얼마나 뛰어난 지 알 수 있다.
또한, 살라미스 해전에서 보여준 고도의 전략은 그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임을 다시 한번 확인케 한다.
해전을 목전에 두고 해전을 치를 장소에 대해 연합군 지휘관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자, 적진에 거짓 밀서를 보내 전쟁을 먼저 걸어오게 함으로써 아군들의 분란을 잠재우고 전투에 심기일전하도록 한 그의 심리전은 이미 앞 글에서 언급했듯이 유명한 일화다.
그의 치밀한 심리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그리스 군이 패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테미스토클래스는 급하게 아르테시미온 해협에서 살라미스로 이동하는 와중임에도 부하들에게 적들이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죄다 들러 다음과 같은 글을 새기게 했다.
이오니아의 병사들이여
우리는 모두 같은 그리스 민족이 아니던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페르시아 진영을 이탈해서 그리스 진영으로 오라. 우리는 두 팔 벌려 당신들을 맞을 것이다.
만약 상황이 여의치 않거든
굳이 열심히 싸우지는 말아라.
우리는 당신들의 공로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 글을 읽고 그리스로 투항해 온 이오니아 병사는 한 명도 없었지만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가 이들을 의심해서인지 이오니아 군대에게 한 번도 선봉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고 하니, 테미스토클레스의 전략이 제대로 먹힌 셈이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살라미스 해전을 승리로 이끈 후, 사후처리도 깔끔했다. 그리스진영에선 페르시아 군대가 그들의 함선을 묶어 만든 배다리를 불살라서 남은 잔당들을 섬멸하자는 의견도 많았지만, 자칫 코너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법, 적의 퇴로를 열어주자는 쪽으로 중지가 모아졌다. 이에 테미스토클레스는 페르시아 쪽에 사자를 보내 배다리가 끊어지기 전에 페르시아로 돌아가라고 밀서를 전달하는 시늉을 했고, 마음이 급해진 크세르크세스는 일부 군대만 남겨둔 채 서둘러 귀환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과도 자주 비교되곤 하는 테미스토클레스는, 이처럼 탁월한 전략과 뛰어난 능력으로 감히 누구도 넘볼 수 없었던 대제국을 상대로 값진 승리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위대한 영광도 무색하게, 그의 말년은 결코 평탄치 않았다. 한 인물을 국민적 영웅에서 민족 반역자로 전락시킨 사연은 과연 무엇이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