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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역사의 중심을 바꾸다!

제2차 페르시아 전쟁(2)/ 살라미스 해전

by 정현미


[폭풍전야]


상처뿐인 영광이었지만, 테르모필레에서 그리스 군을 물리친 페르시아 군은 곧바로 아테네로 진군했다.


아르테미시온에서 퇴각하는 그리스함대

한편, 아르테미시온 해협에서 페르시아와 교전을 벌이던 그리스 연합함대는 그리스 육군의 패전 소식을 접하고는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본국 아테네를 버리고 살라미스섬으로 시민들을 대피시킨 아테네의 명장 테미스토클레스와 최고 지휘관을 맡은 스파르타의 에우리비아데스의 이견으로 전쟁의 양상은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었다.

당시 페르시아와 본격적인 해전을 앞둔 그리스연합군의 가장 큰 쟁점은 그리스 함대의 배치장소였다.


펠로폰네소스 입구의 코린토스 해협

펠로폰네소스 출신의 지휘관들은 그리스 함대를 코린토스 지협 쪽으로 움직여 그곳에 주둔하고 있는 아군과 공동 전선을 펼치자고 주장했지만 테미스토클레스의 생각은 달랐다.

함대가 일단 펠로폰네소스 가까이에 들어서면 각국의 함대는 전쟁을 포기하고, 자국으로 돌아가려고 할 것이고, 결국 연합전선은 와해될 상황에 놓일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지휘관 에우리비아스를 찾아가 함대가 살라미스에서 해전을 치러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한다.

지협에서 싸울 경우, 해전은 넓은 바다에서 치르게 될 텐데 그러면 배의 수가 적고 크기도 작은 그리스 측이 훨씬 불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우는 대동한 페르시아 육군을 자연스럽게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끌어들이는 우를 범하게 될 거라며 설득한다.


아울러 좁은 해협의 살라미스는 숫적으로 열세한 그리스 측에 유리한 지형이며, 그곳에 대피하고 있는 아테네 시민들도 방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도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테네는 연합에서 빠져 이탈리아로 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스 함선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아테네가 이탈하면 곤욕을 치르게 될 개 뻔한 일, 그리스 지휘관들의 고민이 깊어졌다.


여전히 여러 지휘관들의 의견이 분분하자, 이를 지켜보다 못한 테미스토클레스는 한 가지 꾀를 낸다.

페르시아에 사람을 보내 그리스 군이 내분으로 곧 철수할 예정이니 그 퇴로를 막으면 승리할 수 있으리라 거짓정보를 흘린 것이다.

자신은 내부에서 돕겠다는 테미스토클레스의 심리전에 넘어간 크세르크세스가 적들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페르시아 함대를 살라미스 입구 양쪽으로 보낸다.

적들이 들이닥쳤다는 소식에 그리스 군은 비로소 의기투합하여 교전상태에 돌입했다.


살라미스의 입구와 퇴로를 막은 패르시아 함대

[살라미스 해전]


정확한 수를 알 수 없지만 함선의 수가 3배 이상 많았던 걸로 추정되는 페르시아 함대(약 1200척)를 상대로 그리스(약 380척)가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 테미스토클레스 역할이 컸다.


마라톤 전투의 승리 후 페르시아의 재침략 가능성을 예견한 테미스토클레스는 먼저 해전에 용이한 삼단 갤리선 제작에 공을 들였다. 크기는 작지만 무게중심이 낮고 바닥이 평평한 갤리선은 거센 물살과 바람에 강했으며 특히 속도가 일반 함선의 3배 정도로 빨랐다.

그는 또한 입구가 좁은 살라미스의 지형적 조건이 페르시아의 큰 함선에 불리하다는 것을 미리 간파해 교전의 최적지임을 확신했다.

그는 살라미스 주변의 날씨 변화에도 정통한 것으로 보인다. 거센 물살과 바람으로 적군의 함대들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것을 틈타 함선의 측면을 들이받거나, 적진에 뛰어들어 육탄전을 벌였다.

자칭 해양 민족임을 자부해 온 그리스인들과 달리 수영을 잘하지 못했던 페르시아 군인들의 인명피해가 훨씬 더 컸음은 능히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살라미스 해전의 의미]

대제국 페르시아를 상대로 약소국 그리스가 대승을 거둔 살라미스 해전은 여러 가지로 큰 의미를 가진다.


페르시아 제국과 그리스

당시 페르시아는 인도와 아프리카 일부를 차지하며 파죽지세로 영토를 넓혀나가고 있던 제국중 제국이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상대가 승리하면서 그리스는 본의 아니게 동양 문화의 서양진출을 가로막는 역할을 한 셈이 되었다. 이는 곧 문화의 중심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옮겨지는 시발점이 된다.

적에게 무릎 꿇고 사느니 차라리 서서 싸우다 죽겠다.


승리의 저변에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그리스인들의 강한 자부심과 강인함이 깔려있었다. 속주에서 차출된 용병들로 구성된 페르시아 군에 비해 어떠한 저항에도 굴하지 않는 정신력으로 무장된 그리스인들이었기에 이러한 기적이 가능했는지 모른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영토보다 1000배나 넘는 대제국을 연이어 패배시킴으로써 그리스인들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고, 굴복과 죽음의 상황을 극복한 이들의 자유에 대한 소중함과 열망이 이후 이어지는 그리스 문화의 부흥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는 곧 로마와 서유럽으로 이어지는 서양 문화의 뿌리가 되어 30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적지 않는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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