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랑켄슈타인 >
출간된 지 200년도 더 된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연극과 영화, 뮤지컬등으로 각색되어 오랜 기간 대중들로부터 사랑받아 온 작품이다.
하지만 하나의 원형처럼, 저마다 머릿속에 고정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그 친숙한 이름과는 달리, 정작 그 작품의 내용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 또한, 그저 한동안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좀비영화의 원조쯤으로, 그렇고 그런 호러물 정도로만 치부하고 있었다.
호러영화, 특히 서로를 물고 뜯는 과정을 오롯이 감내해야 하는 좀비물을 딱히 좋아하지 않던 내가 이번엔 그 원조격이라고 생각했던 <프랑켄슈타인> 영화를 몹시 기다렸다. 그것도 마치 길일을 택하듯 적당한 날짜를 잡아 집중해서 보리라 벼르기까지 한 건, 영화에 대한 호의적인 평론 일색의 분위기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였다.
세간에선 <피노키오>, <세이프 오브 워터>, <헬보이> 시리즈로 유명한 감독이라지만 사실 난 그의 작품 중 하나인 <판의 미로>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에, 그의 손에서 재해석된 괴물이 어떻게 그려졌을까 몹시 궁금했다.
특수 분장을 전공한 감독의 영화답게 <프랑켄슈타인 > 또한 그의 여타 영화와 마찬가지로 뛰어난 색감과 영상미를 보여주었다, 특히 괴물을 창조히는 과정에선 적재적소에 필요한 디테일 하나하나까지 신경 쓴 장면들에 압도되어 정말 저렇게 하면 생명체가 만들어질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 어쩌면 감독의 논리에 완전히 설득당한 꼴이다.
그리고 너무나 잔혹한 내용을 마치 한 편의 동화처럼 매혹적으로 그려냄으로써 그 처연한 아름다움에 오랫동안 여운이 가시지 않았던 <판의 미로>와 결은 다르지만, <프랑켄슈타인> 또한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제껏 주워들은 어설픈 지식으로 지레짐작만 했던 작품에 대한 편견이 깨지면서, 새삼 원작에 대한 강한 호기심이 인 건 영화를 통해 얻은 또 다른 이득이다.
영화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를 잠시 당혹게 한 사실이 있었는데, '프랑켄슈타인'이 내가 익히 알고 있던 괴물의 이름이 아닌, 그 괴물을 만든 창조자, 즉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이름이었다는 사실이다.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가졌던 고정관념에 어어 없어하면서 나의 무식함에 절로 실소가 나왔다.
영화는 창조자인 빅터와 그의 피조물인 괴물의 시점으로 나누어 이야기를 전개한다.
냉철한 의사인 아빠밑에서 혹독한 교육을 받으며 자란 빅터는 정서적으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나마 사랑하던 어머니마저 여의고 뒤늦게 태어난 동생 때문에 소외받으며 자란 빅터는 성인이 되어 자신이 관심을 가진 의학분야에선 남다른 두각을 나타낸다. 하지만 그의 과도한 열정은 죽은 생명을 되살림으로써 신과 맞먹는 창조자가 되려는 무모한 광기에 휩싸이게 된다.
그의 광기에 불을 지피 듯, 든든한 후원자까지 얻은 빅터는 기어이 시체의 조각조각을 모아 붙인 후 강력한 전기충격을 가해 영원불멸의 괴물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의 흉측한 외모와 아이 같은 지적 지능에 실망한 빅터는 그를 없애려고 실험실로 쓰던 건물까지 폭파시키지만 괴물은 천신만고 끝에 탈출한다.
반면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괴물은 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하나씩 배워나간다. 하지만 세상에 홀로 남겨진 그에겐 의지할 친구가 필요했다. 호감을 가진 이들에게 몰래 숨어서 숱한 선행을 베풀었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건 흉측한 겉모습에 대한 편견과 혐오감뿐이었다.
마침내 괴물은 자신을 이토록 흉측한 모습으로 만들어놓고 가차 없이 버리고 떠난 창조자 빅터를 찾아 나서게 되고, 애증과 원한을 품은 채, 서로 쫓고 쫓기는 과정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한다.
과연 괴물은 누구인가?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속에서 맴도는 질문이었다. 어쩌면 감독이 우리에게 계속해서 던지는 질문인지도 모른다. 영화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일명 금수저 출신의 인물이 주체할 수 없는 내적 욕망에 사로잡혀 표출하는 광기가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준다.
인류를 위한 폭넓은 철학이나 올바른 가치관이 수반되지 않은 천재성이 얼마나 무모한지, 그리고 그 위험성에 대한 경고는 시대를 불문하고 세상에 경종을 울린다는 사실은 어쩌면 너무나 식상한 교훈이 된 지 오래다.
이번 영화를 보면서 난 자꾸 피조물에게 마음이 갔다.
이름조차 얻지 못한 채, 그저 괴물로 칭할 수밖에 없는 그의 순수한 마음과 외로움 속에서 오히려 인간 본연의 모습이 느껴졌다.
과학과 의학, 경제의 발전이 인류에게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혜택을 주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에 만족할 수 없는 인간들은 더 큰 욕망을 꿈꾸게 되고, 점점 더 탐닉하게 되면서 순수했던 인간은 서서히 괴물로 변해간다.
인류의 평화와 발전을 위함이라는 애초의 목표는 절제할 줄 모르는 인간의 욕망과 탐닉에 오염되면서 주객이 전도되고,
오직 물질과 경제적 결과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또한 경제적 부를 획득하기 위해선 그 어떤 비도덕적 방법도 흔쾌히 허용되고, 거기서 소외된 사람들은 실패자라는 미명하에 가차 없이 버려지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전엔 '정의'라는 잣대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견주어 볼 수 있는 기준이라도 있었는데, 과학이 고도로 발전했다는 요즈음은 오히려 자신만이 옳고,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모두 배척하는 풍토가 확산되고 있고, 이는 상대편에 대한 심한 혐오로 이어져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도 한다.
감독은 계속 묻고 있는 것 같다. 과연 누가 괴물일까?
상대방이 괴물로 보이는가? 그럼 자신부터 돌아보라. 어쩌면 상대방은 단지 자신 속에서 꿈틀대는 괴물을 반영하는 거울일 뿐일지도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