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참한 현실속, 희망은 사람에게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은 전례 없는 호황기를 맞았다. 전쟁으로 아수라장이었던 유럽에 엄청난 양의 군수품과 식량등을 수출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뛰어들어 전승국으로서의 막대한 이익도 챙긴 덕분이었다.
두둑한 밑천으로 온 나라가 광란의 세월(1920년대)을 보냈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탐욕의 나날들은 10년 후, (1930년대) 온통 거품투성이었던 주식이 곤두박질치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빚더미에 깔린 회사와 은행들의 줄도산이 이어졌고 실업률은 치솟았으며 대다수의 국민들은 끼니도 제대로 때우기 어려울 정도로 어려운 날들을 보냈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는 이 시절 농촌을 배경으로 쓰였다. 상위 1%가 경제를 좌지우지하던 시절, 대다수 국민들의 삶도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상대적으로 열악한 농민들, 노동자들의 삶은 비참함 그 자체였다.
술자리에서 시비가 붙어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던 톰 조드가 7년의 형기를 마치고 집으로 귀환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도중에 자신에게 세례를 주었던 마을의 목사 케이시를 만나는데, 그 또한 종교와 현실과의 괴리감에 방황하느라 오랫동안 마을을 떠나 있었던 처지였다.
그들이 함께 찾은 마을은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1930년대에 미국 전역에 불어닥친 경제공황에다, 3여 년 동안 지속되었던 가뭄과 모래바람으로 땅은 이미 황폐화되었고, 땅을 담보로 은행에서 빌린 대출은 갚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조상 대대로 목화를 심으며 삶의 터전을 일구었던 조드 가족은 은행이 고용한 트랙터가 자신들의 땅을 갈아엎는 것을 보면서 묵묵히 짐을 쌀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비단 조드가족만의 일이 아니었다. 한때는 농부였던 수많은 사람들이 가재도구를 처분해서 마련한 중고 개조 트럭을 타고 서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일자리와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기 위한 중고차들의 처절한 행렬이 66번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가족의 해체
조드 가족 또한 어렵게 마련한 중고차를 트럭으로 개조해 가족과 최소한의 집기들을 싣고 머나먼 여정에 나선다.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농촌사회의 특성상 대가족이었던 조드가족은 조부모님과 부모님, 톰과 형 노아, 동생 엘, 임신한 여동생 로저산과 남편 코니, 아직 어린 두 동생과 목사 케이시까지 모두 12명이 폐차직전의 트럭을 타고 위태위태한 모험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수중에 남은 돈은 몇 푼 없었고, 잠자리 또한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천막을 치고 한데 잠을 잤으며, 먹는 것도 최소한으로 끼니를 때우는 정도에 그쳤다.
끝을 알 수 없는 열악한 여정 속에서 노쇠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형 노아도 홀연히 제 갈 길로 가버린다. 이뿐만 아니라 여동생 로저산의 남편 코니도 임신한 부인을 두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면서 톰의 어머니가 그토록 지키려 했던 대가족이라는 공동체는 서서히 해체되면서 무너져 내린다.
빈익빈 부익부 속 노동착취의 현장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캘리포니아는 그들이 꿈꾸었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다.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은 결코 그들의 몫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곳 사람들은 이민자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키'라 부르며 멸시하고 혐오하기까지 했다.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이런 노골적인 가학성은, 어쩌면 가난의 밑바닥까지 닿은 사람들의 절박함과 분노가 결국은 자신들의 입지를 위협할 것이란 걸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사탕발림 같은 광고 문구로 사람들을 계속 끌어모으며 무한 경쟁을 부추겼고, 결국엔 임금을 턱없이 낮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남은 이익으로, 그들은 계속 전단지를 뿌려 대고 노동자를 진압하는 데 사용할 무기를 사고, 사람들을 고용했다.
가족 개개인의 성장드라마
숱한 희망과 좌절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조드 가족들은 서서히 의식이 변해가기 시작하는데, 특히 어머니와 주인공 톰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온갖 허드레 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어머니는 어느새 심지굳은 가장으로서 남자들을 진두지휘하는 강인한 모습으로 변모해 간다. 그리고 모든 우선순위를 가족에 두며, 그 안에만 갇혀있던 어머니의 의식이 점차 이웃과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연대로 확대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한편, 오랜 세월, 열악한 교도소에서 지낸 톰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다소 냉소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지적 장애가 있는 듯한 형을 대신해 가족을 이끌어 가는 그의 모습에서 투철한 책임감을 엿볼 수 있었다.
톰은 노동자를 끝없이 착취하는 현실에서 절망을 느끼던 중 목사 케이시의 죽음에서 큰 깨달음을 얻는다.
종교가 현실에서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늘 그 괴리감에 괴로워하던 케이시는 그 답을 찾기 위해 세상을 방황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조드 가족의 여정에 합류한 인물이다. 그는 그 과정 속에서 단합의 중요성을 깨닫고,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투쟁을 주도하는 노동 운동가로 변신한다. 농장주들이 고용한 용역 깽패에 대항하던 중 비참한 죽음을 맞는 케이시를 목격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달은 톰은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가족곁을 떠난다.
언제나 희망은 인간에게 있다.
소설[분노의 포도] 속 현실은 인간의 기본 생존권을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기 그지없다. 조드가족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악화되어만 가는 비참한 현실에 몸서리가 쳐졌다. 중간에 책장을 덮고 싶은 감정을 억누르며 끝까지 책을 부여잡고 있었던 건, 아마 그들에게 일말의 희망이라도 주어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 때문이 아니었을까?
소설 속에서 맞닥뜨린 또 하나의 진실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전혀 다른 두 얼굴이었다.
소설의 배경은 20C 초이지만, 빈익빈 부익부가 극에 달한 그때의 모습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풍요의 상징인 미국의 화려한 겉모습 뒤에 숨겨진, 심지어 자국민에 대한 차별과 착취, 탄압등 미국의 추악한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다.
작가 존 스타인벡은 젊은 시절, 막노동과 선원, 산장지기 등, 노동 현장의 가장 밑바닥에서 일해봤기 때문인지, 소설 속에서 그 당시의 상황을 아주 리얼하고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작가는 또한, 현실에 대해 초지일관 냉철하고 냉소적이기까지 한 태도를 보이지만, 글 행간마다 묻어나는 나름의 신념 같은 것이 느껴졌는데, 그건 다름 아닌 농부들, 노동자들, 나아가 인간을 향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었다.
농부들과 노동자들이 인생을 보는 관점,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 세상에 대처하는 방식등은 그들이 살아온 삶이 그렇듯, 그 어떤 지식인들보다 더 현명하고 진정성 있었다.
반면 눈앞의 이익만 보고 물질에 눈이 먼, 근시안적인 유산자들은 오히려 비논리적이며 폭력적이었다.
작가는 소설 곳곳에서 불합리한 현실의 가학성을 폭로하며 인간은 서로 돕고 뭉치는 길만이 살 길이라고 선동하 듯 주장하지만 섣부른 해피엔딩식 결말을 짓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히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작가가 끝까지 놓지 않으려 한 가냘픈 희망의 메시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인간을 구원하는 건 그 어떤 것도 아닌, 어려운 상황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 인간 내면의 초월적 힘에 근거한, 인간의 인간에 대한 숭고한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