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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Sep 16. 2022

'나의 해방일지'를 정주행하다.

종영 드라마 정주행기

 

 오늘, 이미 종영한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를 그만... 정주행하고 말았다.

어디에 한 번 빠지면 좀처럼 끝날 때까지 헤어 나오지 못하는 성격을 알기에, 화려한 전적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좀 극복해보려고 나름 마음을 단단히 먹었건만...

5회까지는 괜찮았다. 하루에 1회, 혹은 2회씩 보며 제법 자중한다고 자신을 대견스럽게 여기기까지 했는데, 오늘 아침 한 회만 보고 하루를 시작하자생각으로 무심코 집어 든 리모컨에 하루를 몽땅 드라마에 반납하는 사태를 낳고 말았다.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급물살을 타는 6회가 끝나자마 한 회 만 더, 그다음 회까지만...  부르짖던 나는 급기야 남편과 저녁을 시켜먹으면서까지 마지막 회를 보고 나서야 드라마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나의 해방 일지'는 경기도 산포 시에 사는 염씨 부부와 세 남매, 그리고 그들의 일상에 조용히 스며들어온 미스터리 한 남자, 구 씨를 둘러싼  잔잔하면서도 결코 밋밋하지는 않은, 그리고 군데군데 코믹스러운 요소가 적절히 배치된 휴먼 드라마라고 할  수 있겠다.


 서울에서 소외된 듯한 경기도, 그것도 출퇴근이 만만찮은, 거의 농촌에 가까운 산포 시에 사는 삼 남매는 그들의 삶 또한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에서 소외된 듯 각자의 아킬레스건을 하나씩 품고 산다.

첫째 염기정은 늘 열렬히 갈구하지만 다가오지 않는 사랑을, 둘째 염창희매번 어긋나기만 하는 인생대박의 기회를, 그리고 막내 염미정은 꼬여만 가는 인간관계에서 자꾸 바닥으로만 치닫는 자신의 자존감을...

그것들이 자신들에게서 멀어질수록, 손에 잡히지 않을수록 그들은 더욱더 갈망하고 좌절하고 힘겨워한다.


 삼 남매는 그들을 옥죄어 오는  상황의 근원을 그들이 사는 공간, 번화한 서울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마치 시간을 역행한  과거 속에 살고 있는 외딴섬 같은 도시,  산포 시에서 찾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아버지가 고모에게 해준 대출에 발목이 잡혀  이곳에서 살 수밖에 없다는 원죄의식 또한 품고 있는 듯했다.


 그들에게 아버지가 그토록 고수하고자 했던 기성세대의 가족관계는 이미 구태의연해져 가족해체를 가속화시킬 빌미만을 제공할 뿐이었다.

그렇게 염 씨 가족은 기존의 가치를 고수하는 아버지와  이미 변화된 가치를 추구하는 자식들 사이에 소통이란 없는, 이미 오래전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가족관계를  애써 유지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너무나 다른 생각으로 하루하루 힘겹게 관계를 이어가던 염 씨 가족에게 변화가 찾아건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 이후였다.

가족이지만 원수 같던, 남보다 더 타인 같던 그 관계를 그래도 위태위태하게 이어주던 어머니의 존재가 사라지자 상실감에 힘겨워하던 삼 남매는 그토록 애증 하던 산포 시를 떠나 서울로 터전을 옮긴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삶의 공간을 이동함으로써 과거로부터, 그리고 부모로부터 물리적, 정신적 독립을 하게 되면서 비로소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그리 자신들을 괴롭히던 딜레마로부터도 하나씩 벗어나거나 자신의 방식으로 소화하면서 한층 성장해나간다.

미정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으며 비슷한 아픔을 지닌 구 씨와 소통하면서 자존감을 찾아가고, 기정은 자기 방식의 랑에 눈떠가면서, 창희는 자신을 옭아맨다고 생각한 상황 또한 자신이 선택한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면서 그들은 한 걸음씩 각자의 해방구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혹자는  드라마에서 진정한 해방은 없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인생의 한 고비에서 이미 해방의 문턱에 진입했음을 직감했다.

어쩌면 삶이 는 한 해방의 끝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저 하고 많은 인생의 난관 중 겨우 하나의 고지를 넘어서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상처뿐인 영광일지라도 과정을 겪으며 경험했을 많은 시련들이 앞으로 남은 인생 동안  맞닥뜨리게 될  또 다른 수많은 난관들을 좀 더 쉽게 넘어가게 하는 면역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그들이 간과하지 않았으면 한다.

구시대의 유물로 상징되는, 그들이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산포 시에서의 삶이 부지불식간에 그들의 성장에 자양분이 되었다는 것을...

낡고 구태의연한 세대라도  다음 세대무언가 하나쯤은 겨주고 간다는 것을...

그렇게 새로운 세대에게 길을 비켜주고 그렇게 한 시대가 마감한다는 것을...

그리하여 비록 고통스러운 과거지만 그것을 발판으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나간다는 사실 우리 또한  잊지 말았으면 한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상황 전개상 조금은 억지스러운 설정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삶의 애환과 고민들이 비교적 잘 버무려졌기에, 다양한 연령대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들의 입에 회자되는 감동의 드라마로 남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마지막으로 드라마를 본 애청자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자문해봤음직한 질문, 


나는 지금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기를 꿈꾸는가?


 드라마는 끝났지만 우리 삶은 여전히 계속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민하며 써 내려가야 할 나만의  해방 일지는 진정 지금부터가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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