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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Jul 08. 2022

나만의 집 인테리어

비우기와 버리기, 그리고 대청소


 남편이 퇴사하고 나서 계획했던 일 중 하나로 15년 이상 방치했던 집을 어떻게든 손보는 것이었다.

지금 상황으로선 인테리어는 감히 엄두도 못 내고 우리의 촌스런 감각을 고려해 최대한 버리고 청소하는 걸로 큰 줄기를 잡았다.

오늘은 그  하나로 거의 10년 이상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화분 중 큰 놈 세 개를 골라 단장을 기로 했다.

거실에 있던 오래된 소파를 예전 나의 공부방으로 옮기고

난 후 휑해진 공간을 메우기 위한 용도이기도 했다.


 처음엔 풍성했을 그 자리의 주인들은 이미 시들어 아예 자취는 찾아볼 수도 없고, 물기마저 사라져 퍼석해진 흙만 머금은 화분들...

사는 게 뭐가 그리 바빴는지 식물은 시간만 좀먹는 귀찮은 존재들로 치부해 입주할 때 잠시 인테리어용으로 사놨다가 세월과 함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였다.

매일 보다시피 사정거리 안에 머물렀지만 투명 물건 취급하던 화분에 다시 관심을 가진 건 온전히 시간이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시간적 여유는 차치하더라도 '나이'라는 달갑지 않은 세월의 나이테가 초록을 다시 찾을 줄이야...



 일단 화분에 꽂히자 난 슬픈 일에도 억지로 눈물을 삼키며 크리스마스를 애타게 기다리는 꼬마처럼 한동안 아파트 뒤 도로변에 각양각색의 꽃판을 펼쳐놓으며 지나가는 사람들 마음을 훔치곤 하던, 식물을 한가득 실은 트럭을 기다리기 작했다.

봄에는 그렇게 자주 보이던 트럭인데 요 며칠 감감무소식이었다.

날이 더워져서 그런가... 요즈음 장마는 왜 이리 빠른지...

내년 3월까지 기다려야 하나... 마음이 조급해진 나는 별별 생각을 다 하며 하루에 한 번 꼴로 집 밖을 나와 혹시 놓칠세라 저만치 목을 쭉 빼고 바라보거나 때론 직접 몇 걸음 걸어가 트럭의 존재 유무를 확인하곤 했다.

너무 일찍 산타클로스를 기다린 꼬마는 만지작거리느라 목이 늘어난 양말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하염없이 굴뚝만 쳐다보았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가족여행을 마치고 자취집으로 돌아가는 아들 편에 딸려 보내려고 간단한 장을 보고 오는 길이었다.

저만치서 빨간 코 루돌프 대신 낡은 트럭을 대동한 산타할아버지가 한 도로를 점령한 채 한가득 선물을 펼쳐놓고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나는 본능적으로 달려가 내가 받을 선물을 요곳조곳 고르느라 한동안 여념이 없었다.

식물은 처음이라 될 수 있으면 비싸지 않은 가격에 관리가 쉬운 걸로 골라달라고 부탁했다.

식물 값 이외에 가지고 있던 화분의 흙을 제거하고 새 흙으로 심어주는 데에 개당 2000원의 수고비를 더 달라고 산타처럼 인자하게 생긴 할아버지가 말했다.

화분 3개에 수고비 5000원으로 합의하고 난 서둘러 집으로 올라갔다.


 마침 떠날 채비를 끝낸 큰아들과 남편을 대동해서 제법 무거운 화분 세 개를 엘리베이터에 싣고 마치 세 딸을 신부 화장시키러 가는 엄마처럼 고이 모시고 앞장서 갔다.

할아버지가  골라준 세 가지 선물은 고무나무, 홍콩야자, 행운목이었다.

예쁘장하게 자리 잡은 새 주인 위로 우리가 가지고 온 화분의 흙 일부와 새 섞어 채우고 작은 돌멩이들로 갈무리했다.

남편은 마무리되는 대로 하나씩 집으로 옮겼고 아들은 화분의 환골탈태를 지켜보며 연신 감탄을 자아내는 엄마를 신기한 듯 쳐다봤다.


 세 개의 화분이 완성되자 식물의 이름과 물 주는 주기를 확인한 후 값을 치렀다.

현금이 없어 휴대폰으로 계좌 이체를 하면서 난 깎은 1000원을 보태 수고비 6000원을 고스란히 식물 값에 얹어 지불했다.

이 더운 날씨에 남을 기쁘게 해 주신 수고비로는 턱없이 모자란 가격을 깎으려 한 것이 못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화분 세 개를 앞 베란다에 나란히 두고 첫 물 주기의 기쁨은 수고한 남편에게 돌리며 가만히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이제는 더 이상 자리만 차지하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아닌 녀석들, 아들들이 비운 자리를 대신해주려나?

좋다 싫다 보채지도, 그렇다고 말을 안 들어 속을 썩이지도 않는다는 면에선 오히려 더 효자일지도 모를 일이다.

올여름 푸르름이 뚝뚝 떨어지는 녀석들과 함께 지낼 생각에

더위가 전혀 두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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