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내가 사랑하는 찰랑이들

by 반야심경

나는 기억력이 아주 나쁘다. 몇 달 전 소개팅 한 남자의 얼굴은 커녕,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즐겁고 인상적이었던 내 삶의 조각들이 . 더이상 잊히거나 왜곡되기 전에 기록해두고 싶었다. 그렇다면 내 삶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무엇일까? 바로 ‘향기’다.

향에 대한 내 첫 기억은 네 살 무렵, 동네에 잔뜩 심겨 있던 플라타너스 나무에서 시작된다. 잎이 유난히 크고 얼룩덜룩한 줄기를 가진 이 나무는‘버즘나무’라고도 불렸다. 누군가는 그 냄새를 오줌 냄새라 하고, 또 누군가는 쓰레기통 같다고도 했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알 수 없는 지릿한 향이 더 짙어졌다. 하지만 노는 게 전부였던 그 시절, 나에게 그 냄새는 오히려 아름다운 기억으로 변주되었다. 신기하게도 그 향을 다시 맡기만 하면 골목대장이던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간다.

후각이 예민한 내가 향기 나는 것들에 집착하게 된 건,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특히 나는 향기나는 찰랑거리는 것들에 유독 마음이 갔다. 스무 살 무렵부터 지금까지 내 곁에 함께한 찰랑이들은 향수, 차, 커피, 전통주, 와인, 위스키, 진, 브랜디, 데킬라, 메스칼까지 계속해서 늘어났다. 그냥 즐기는 걸로는 성에 차지 않아 조향사 자격증, 와인WSET 2급, 커피조리사, 조주기능사, 전통주 인터미디엇 소믈리에, 중국 평차사 등등 사부작 사부작 궁금증을 해소해왔다. 비업계인으로서는 다소 마니악한 수준의 취미 생활이라 할 수도 있겠다. 대체 그 향기 나는 찰랑거리는 것들이 뭐라고 그렇게 시간과 돈을 쏟으면서도 나는 즐거웠을까.

이제 그 찰랑이들이 내 일상에 어떻게 녹아 들었는지 그 향기에 얽힌 나의 취향과 순간들을 하나씩 꺼내 적어보려 한다. 글을 써본다는 행위 자체가 처음이라 부끄럽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 책이 Vol. 1이 되길 바래 본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