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드로낙
고양이는 정말 요물이다. 푹신한 젤리, 망고스틴 같은 발 안에 숨겨놓은 발톱, 짧은 인중,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표정. 집을 비우면 두 발로 걸어 다니며 ‘아 집사놈 이거 또 창문 안 열어놓고 갔네. 더운데.’ 라던지 ‘어제는 비둘기들이 정신없이 날아다니던데 오늘은 왜 잠잠하나.’라며 구시렁 댈 것 같달까.
9살 먹은 턱시도냥 보검이는 풍만한 풍채만큼이나 너른 마음으로 나를 받아들였다. 보검이를 들이기 전에 내가 반려동물을 들일 수 있나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나는 털 날리는 그 녀석에 금방 적응했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집 일원이 된 녀석은 루틴을 완벽히 지킨다. 그 녀석의 타임테이블을 소개하자면.
AM 6:00 아침 식사 후 발로 밟아 집사 깨우기
AM 10:00 간식 달라 미양미양
PM 12:00 점심 식사, 쾌변, 시에스타
PM 4:00 무릎 위로 올려달라 고롱고롱
PM 8:00 꼭 내 저녁 식사 도중 응가 푸욱푸욱(괘씸한 것)
PM 12:00 아파트 복도 산책
모든 옷에 녀석 털이 범벅이고, 집 곳곳에 내 방석보다 지 방석이 더 많지만, 마음이 울적할 때 그 녀석이 궁딩이를 내게 붙이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우울감이 엄습하는 겨울밤, 글렌드로냑 한잔과 고양이라면 우울은 동트기 전 힘을 잃어버린다.
흔히 3대 셰리 위스키를 꼽으라고 하면 꼭 들어가는 싱글몰트 위스키이다. 나 역시 이것으로 싱글몰트를 즐기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올로로소 캐스크를 가장 좋아하는데 PX캐스크보단 덜 달고 뭔가 ‘솔의 눈’ 같은 시원함이 느껴진다. 물론 2024년에 바틀 바뀌고 나선 영 예전 느낌이 나지 않는다. 그치만 한때 내 이름 석자 앞에 ‘드로낙’이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즐겼던 위스키이다.
*셰리 캐스트 위스키: 셰리 와인을 담아두었던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위스키. 주로 올로로소, 페드로 히메네즈, 모스카텔, 피노 등 다양한 셰리 와인 숙성 통이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