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파리소다
세상엔 하기 싫은 일 투성이다. 그 중에서도 한58번째쯤 싫은 게 청소다. 특히 더운 여름날 대청소. 뭐든지 잘 못하는 일, 싫어하는 일에는 도우미가 필요한 법. 그래서 푹푹 찌는 여름날이면 늘 시원하게 캄파리 소다를 말아놓고 청소를 시작한다.
캄파리는 향신료, 식물의 뿌리, 과일 껍질 등60가지의 재료를 혼합하여 만든 리큐르로 선명한 붉은 빛을 띤다. 마트에서도 그리 비싸지 않게 쉽게 구할 수 있다. 여러 칵테일에 들어가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간단한 것이 캄파리 소다이다. 쨍하게 시원한 유리잔에 얼음을 채우고, 캄파리1 1/2oz, 탄산수 조금. 계량이 어렵다면 그냥 소주잔 한 잔에 간 봐 가며 탄산수 부으면 끝. 조금 호사를 부린다면 어린지 껍질이나 즙까지 곁들이는 것도 좋다. 상큼 달달 쌉사름한 캄파리 소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좋겠다. 이런 걸 식전주로 시작하는 식문화라니. 뭘 먹어도 맛있겠잖아.
나는 다 쓴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더러운 집에서 쉬는 건 또 질색이다. 이 무슨 이상하고 모순된 성격이람. 그래서 청소 때마다 그 짜증을 캄파리 소다로 달래곤 한다. 원래 하기 싫은 일을 할 땐 술기운을 살짝 빌리면 어느새 끝나 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가. 아니, 독일에선 중딩들도 농구 한 판 때리고 맥주 한 모금 마신다는 데 이 정도는 애교지. 캄파리 소다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선 청소기 한 번 돌리고 한 모금. 세탁기 한 번 돌리고 한 모금. 듀스 노래 좀 흥얼거리며 설거지 한바탕 하고 또 한 모금.
꼭 캄파리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기만의 ‘캄파리 소다’ 하나쯤은 있으면 좋겠다. 하기 싫은 걸 좀 덜 싫게 하는 행위, 짜증 나는 날을 기분 좋게 털어낼 수 있는 가벼운 의식. 누군가는 로또일 수도 있고, 좋아하는 음악에 맞춰 까닥거리는 것일 수도 있고, 나처럼 빨간 술 한 잔일 수도 있겠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의 찌꺼기를 털어내는 산뜻한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