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 여행 왔는데 공부도 해?”
한 달 살기 첫 주, 아이는 수학 문제집을 펼쳐놓은 나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나도 그 물음에 잠시 멈칫했다. 어쩌면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쉬기만 해도 되지 않을까? 낯선 도시, 새로운 친구, 하루 종일 영어로 듣는 수업만으로도 아이는 충분히 고생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사실은 수학공부를 하기 싫은 건 오히려 내 쪽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지지고 볶을 일이냐’ 이런 마음.
하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이건 여행이 아니라, 한 달을 ‘살아보는’ 거니까.
아이와 함께 한 달 살기를 하며 매일을 우리답게 살아가고 싶었다. 거기에는 자연스레 공부도 포함됐다. 하루 단 1시간 남짓. 꼭 책상에 앉지 않아도 괜찮았다. 수영 수업 끝난 날에는 카페에서 망고 주스를 마시며, 미술관 다녀온 날에는 숙소 테이블에 앉아 조용히. 그렇게 매일 한두 장씩 수학 문제집을 풀었다.
수학 문제집은 한국에서 늘 하던 문제집이었다. 정답률을 점검하고 높이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리듬’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비슷한 시간, 익숙한 문제집, 그리고 ‘오늘도 공부를 해 내었다’는 안도와 작은 성취. 이 세 가지가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매일 저녁, 하루의 끝엔 한글 책 읽기로 마무리했다. 하루 종일 영어에 노출된 아이에게 한글 책은 편안한 안식처이자, 마음의 언어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시드니 커스텀즈 도서관이나 오클랜드 호윅 도서관에서도 한국 책을 발견할 수 있었고, 한국에서 챙겨 간 책과 전자책으로도 읽었다.
침대에 나란히 누워 아이의 손등을 부비며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엄마는 저런 상황이면 어떻게 할 것 같아?” “이 주인공은 겁이 많네.” 그런 대화에서 아이는 이야기 속 인물을 통해 자기 마음을 표현하고, 나는 아이의 속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영어로 하루를 살아낸 아이에게 한글 책은 심리적 재충전이었다.
수학공부와 책 읽기. 이 두 가지는 우리가 떠나기 전부터 함께 해온 일상이었다. 한 달 살기라는 새로운 경험 속에서도, 이 일상을 이어가고 싶었다. 아이에게는 그것이 낯선 환경 속에서 ‘내가 아는 세계’를 유지하는 방법이 되었고, 나에게는 아이와 하루를 마무리하는 가장 다정한 루틴이었다.
이렇게 아이와 함께 쌓은 성실한 하루가 한국으로 돌아와 ‘잘했다’는 뿌듯함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학습 공백 없이 그 시간을 잘 채워 냈기 때문이다. 한 달 살기로, 겨울방학으로 느슨해진 상태에서 개학을 맞이 했다면 새 학기 적응이 힘들었을 테지만, 다행히 그 어느 때보다 리듬이 잘 잡힌 모습이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수학 실력보다 더 값졌던 건, 매일을 ‘성실히’ 살아내는 자기만의 태도를 지닐 수 있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