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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한 달 살기가 좋은 7가지 이유

by 낭만육아

아이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에는 필리핀 세부, 2학년 겨울에는 호주 시드니, 3학년 겨울에는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한 달 살기를 했다. 해마다 한 달씩 떠났고, 해마다 같지만, 또 다르게 살아봤다. 그 과정을 통해 확신하게 된 것이 있다. 아이와 함께 떠나는 한 달 살기는 엄마와 아이 모두에게 특별한 시간이라는 것. 단순히 해외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험이 아니라, 부모와 자녀 모두의 삶을 깊게 들여다보게 만드는 특별한 기회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은 엄마들이 아이와 꼭 한 번은 한 달 살기를 해보았으면 좋겠다.

첫째, 아이에게 좀 더 다양한 인종과 문화, 언어를 비롯한 더 큰 세상을 보여줄 수 있다.

아이와 해외여행을 하거나 한 달 살기를 계획하는 엄마들이라면 우리 아이가 외국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신나게 떠들고 노는 모습을 상상할 것 같다. 나 역시 그러했다. 그러나 매우 안타깝지만 그런 기적은 우리 집 아이에게는 잘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가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적극적인 아이가 아니고 영어 수준이 높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더욱 한 달 살기를 고집한다. 여행지에서 처음 보는 아이들과 말 한마디 못할 것을 아니까 말이다. 한 달 살기 하면서 꼭 어학원에 다닌 이유는 영어공부뿐 아니라 또래 친구들을 사귀기 위함이다.

아이 초등 2학년 시드니에서 한 달 살기를 할 때, 시드니 시티 내 어학원에 다녔다. 어학원에 가는 첫 주는 힘들어했고, 2주 차는 좀 적응해서 다녔고, 3주 차는 어학원 친구들과 친해져서 하원 후에 플레이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4주 차는 헤어지기 싫다고 울기도 하고 함께 공부하는 중국인, 베트남인 친구들에게 그 나라 말을 배워 오기도 했다. 또 같은 반에 중국인과 대만인 친구들이 있었는데, 서로 말하는 게 다르다며 궁금증을 품은 아이는 중국 역사에 대해 책과 유튜브를 찾아보기도 했다.

뉴질랜드에서는 매일같이 무료 실내 수영장을 다녔는데, 그곳에서 만난 키위(뉴질랜드 현지인) 남자아이가 계속 다이빙하는 법, 물 잘 날리는 법, 잠수 오래하는 법을 아이에게 가르쳐줬다. 그 아이가 아니었으면 계속 놀아줘야 할 판이었는데 외동딸 어머니의 안타까운 운명을 구해준 키위 아이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초등 1학년 세부 한 달 살기에서 1:1 수업을 했던 필리핀 선생님과는 한국에 귀국한 이후에도 구글미트로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했고, 시드니에서 만난 아일랜드 출신 선생님이 너무 예쁘고 다정하셔서 아일랜드에 호감이 생겨 책과 유튜브를 찾아봤다. 또 놀이터에서 만난 아일랜드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시드니에서 살 때는 숙소에서 함께 생활한 일본인 언니 덕분에 일본어에 관심이 생긴 아이는 귀국 후 일본어를 배웠다.

이렇게 아이는 한 달 살기 하며 만난 친구들과 선생님, 외국인들로 인해 다양한 국적, 문화, 언어에 자연스럽게 노출되었고, 세계를 향한 호기심이 커졌다.


둘째, 디지털 디톡스, 감각을 깨우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한 달 살기를 떠나기 전, 아이는 집에서 시간을 보내면 자연스럽게 스크린 앞으로 향했다. 디지털 기기를 엄격히 제한하는 편인 엄마였지만, 아이의 ‘심심하다’ 공격에 무너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낯선 공간에 도착하자 흐름이 달라졌다. 새로운 골목과 거리, 하늘과 나무, 낯선 사람들의 언어와 행동이 아이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없이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들이 충분히 흥미로웠다. 우리가 머문 숙소엔 TV가 없었고, 와이파이도 느렸다. 그 덕분에 자연스럽게 디지털 기기에서 멀어졌다.

시드니에서는 현지 마트의 진열대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어했다. 이름 모를 과일을 들었다 놓고, 처음 보는 과자와 초콜릿을 신기해하며 관찰했다. 뉴질랜드에서는 노을이 지는 시간에 매일 산책을 했다. 분홍빛으로 물든 하늘이 땅과 맞닿아 있는 모습이 그림 같았다. 그런 모습을 우린 넋을 놓고 바라봤다.

디지털 화면 속 정보는 쉽게 소비되지만, 오감으로 경험한 순간은 오래 남는다. 매일 다니던 골목에서 맡았던 냄새, 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진 벤치, 현지 도서관의 공기, 모래사장 위를 맨발로 걷던 촉감 같은 것들. 이런 경험은 단순한 여행의 기억을 넘어, 감각을 깨우고 삶의 풍부함을 더해주는 자산이 된다.

무엇보다, 스마트폰 대신 서로의 얼굴을 더 자주 마주 볼 수 있었다. 눈 맞추고 대화하고, 아무 말 없이도 함께 걷고, 바람을 느끼는 시간. 디지털 디톡스는 결국, ‘서로를 더 깊이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셋째, 일상의 체력으로 여행이 가능하다.

40대 엄마와 10대 아이 체력의 승자는 늘 10대 아이다. 주 5회 줄넘기, 수영을 하는 아이를 어떻게 이기겠는가. 늘 아이를 따라다니다 보면 기진 맥진하게 되는데, 여행지에서의 피로는 더욱 진하다. 특히 짧은 일정으로 유명 관광지를 돌며 발도장 찍고, 인생 사진 남기고 10대 맛집, 3대 맛집 등을 찾아다니는 여행을 하기에는 40대 체력에 무리가 오곤 한다. 또 다음 일정에 쫓겨 발바닥 불이 나게 다니는 짧은 여행이 더욱 아쉬운 것은 새로운 세상을 보는 아이의 표정과 감정을 세심하게 관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이와의 한 달 살기는 그런 점에서 좋다. 하루에 한 일정 정도만 소화하면 되고, 그것도 피곤하면 내일로 미룰 수 있다. 그렇게 아이와 한 도시, 한 장소에서 아이가 여행지에서 느끼는 감정과 호기심을 자세히 관찰하고 대화 나누며 여유롭고 충만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시드니 본다이 비치에 간 날, 오후엔 시드니 타워에 올라가 보려고 했다. 그러나 본다이 비치에서 실컷 놀고 돌아오는 길 계획한 페리를 놓쳤다. 사실 페리 시간에 맞추기 위해 버스에서 내려 선착장까지 내달렸어야 했는데, 숨이 가쁜 40대 엄마는 그냥 페리를 놓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선착장까지 전속력으로 내달렸다간 심장이 터져 나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페리를 눈앞에서 놓치자 아이의 따가운 눈총이 따가웠다. 마음속으론 ’ 너도 애 낳아봐라. 내 무릎이 왜 이렇게 되었는데? 네가 유모차 안 탄다고 울어 제껴 매일 아기띠로 안고 업고 다녀 그런 것 아니냐. 흥‘이라는 마음의 소리가 올라왔지만 삼켰다. 그날 우리는 계획했던 시드니 타워 대신, 생각지도 못한 인생 일몰과 가장 맛있었던 피시앤칩스를 만났다. 왓슨스베이의 일몰은 낭만적이었고, 다음 페리를 기다리는 동안 들른 가게의 피시앤칩스는 제대로였다. 뜻하지 않게 생긴 여유였고, 덕분에 아이와 나는 ‘놓친 것’보다 ‘얻은 것’을 더 오래 기억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 우린 하루에 한 일정만 정해 다니게 되었다. 천천히 느긋하게 서로를 또 세상을 바라보기로 했다.


넷째, 비용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한 달 살기라고 하면 큰 비용을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로는 생각보다 경제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한 달 살기는 ‘여행’이 아니라 ‘살아보는’ 것이기 때문에, 항공료와 숙소비 외에는 평소 한국에서 쓰는 생활비, 교육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 대한민국 물가는 정말 살벌하다. 마트에서 장 보면 10~20만 원은 우습고 외식 한 끼에도 몇만 원이 훌쩍 넘는다. 반면 한 달 살기를 많이 가는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는 물가가 훨씬 낮고, 호주나 뉴질랜드도 공산품은 비싸지만 신선 식재료는 한국보다 저렴한 편이다.

초등 1학년 겨울, 세부에서 한 달 살기를 할 땐 아이가 다닌 어학원에서 삼시 세끼 식사와 세탁, 청소까지 모두 제공되었다. 생활비가 거의 들지 않았다. 초등 2학년 시드니에서는 하루 두 끼는 집에서 만들어 먹고, 한 끼만 외식했기에 식비가 크게 부담되지 않았다. 뉴질랜드에서도 고기와 과일이 저렴하고 품질도 좋아, 오히려 한국보다 식탁이 더 풍성할 때도 있다.

숙소비는 가장 큰 지출이지만,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조정 가능하다. 시드니에서는 셰어하우스 마스터룸에 머물며 약 500만 원을 절약했고, 뉴질랜드에서는 에어비앤비를 잘 찾아 비교적 저렴하게 생활하고 있다.

또한 현지에는 무료 혹은 저렴한 체험활동이 많다. 시드니에서의 한 달 동안은 매일 놀이터, 도서관, 미술관, 시립 수영장을 오갔다. 대부분 시민을 위한 시설로, 무료이거나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 가능했다. 이런 시설들을 활용하면 아이와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비용 걱정 없이도 충분히 알차고 풍성하다.


다섯째, 아이와의 관계가 단단해진다.

외국에 나가면 결국 엄마와 아이, 단둘뿐이다. 낯선 환경에서 길을 묻고, 낯선 음식을 먹고, 예측 못 한 상황에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한 팀이 되어 문제를 해결하고, 예상 밖의 일에 함께 당황하며 웃고, 계획이 틀어져도 서로를 탓하지 않으며 배워간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엄마와 아이 사이의 거리가 좁아진다.

세부에서는 길거리에 목줄 없이 돌아다니는 개들이 많았다. 나도 무섭고, 아이도 무서워했다. 우리는 개를 피해 손을 꼭 잡고 골목을 돌아가기도 하고, 개가 지나갈 때까지 가만히 서서 기다리기도 했다. 별일 아니지만, 손을 꼭 잡고 도망가던 순간만큼은 우리가 서로를 지키는 존재라는 걸 실감했다. 그때마다 아이가 나를 의지했고, 나도 아이 덕분에 조금 덜 무서웠다.

시드니에서는 6층 숙소의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일주일간 오르내려야 했다. 짜증 낼 줄 알았던 아이가 “엄마, 우리 집에서 나올 때 짐 다 챙기자. 왔다 갔다 하지 말자”라고 말했다. 매일 어학원 끝나면 집에 가서 수건을 챙겨 물놀이터에 갔었는데, 그날부터는 아침에 수건을 미리 챙겼다. 또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 숙소에 누워 있을 땐 슬쩍 다가와 물을 건네며 “엄마 많이 아파? 편하게 누워서 쉬어요”라고 말해주었다. 그때 우리 딸 다 컸네 하며 많이 감동했다. 아마도 아이는 외국에서 혼자 남겨질 것 같은 두려움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이유든, 그 배려의 말 한마디가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익숙한 환경 속에서 익숙한 방식으로 아이를 대했다. “밥 먹어”, “숙제 다 했니?”, “잘 시간이야” 같은 말들은 늘 정해진 틀처럼 반복됐다. 아이의 상태나 감정보다도 ‘해야 할 일’을 먼저 떠올렸고, 나는 자연스럽게 지시하고 채근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한 달 살기를 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낯선 도시, 낯선 언어, 낯선 시스템 속에서 나도 처음이 되고, 나도 서툴다. 그렇게 엄마도 아이도 ‘어리숙한 둘’이 되어 함께 길을 잃고, 함께 길을 찾는다. 누가 가르치고 따르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헤매고 함께 알아가는 동료가 된다.

그런 순간들이 쌓이자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깊은 유대감과 신뢰가 생겼다. 같은 하늘 아래, 낯선 도시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낸 그 시간들은 아이와 엄마가 ‘진짜 단단해지는 시간’이었다.


여섯째, 육아 일상에 지친 엄마에게 쉼과 에너지를 주기에 아이를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된다.

한국에서의 일상은 늘 숨 쉴 틈 없이 돌아간다. 아이 키우고, 살림하고, 시댁과 친정 대소사 챙기고, 일하는 정신없는 삶의 연속이다. 하이클래스, 이 알리미를 통해 제출해야 되는 동의서는 왜 이렇게 많으며, 아이 학원 일정은 요일마다 바뀌고 학교와 학원 숙제, 준비물을 체크하고 학교 상담 학원 상담까지 정신없는 하루가 지나간다. 남편 와이셔츠 세탁완료 안내 문자까지 내 핸드폰으로 오는 일상을 지내다 보면 하루의 끝은 너덜너덜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오만가지가 모여 나의 하루를 뒤덮는다. 그래서 결혼 후 늘 요구하는 생일선물은 '혼자 있는 시간'이다.

그렇게 숨 막히던 일상에서 벗어나 외국에서 한 달을 살아보면, 비로소 ‘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아이의 어학원은 사실 아이만을 위한 시간은 아니었다. 고백하건대, 그 시간은 엄마에게 주어진 가장 온전한 ‘자기 시간’이기도 했다. 어학원에 간 아이를 보내고 나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산책을 했다. 하고 싶었던 것을 아무 방해 없이 해보는 시간. 그렇게 쌓인 에너지는 저절로 아이에게 향했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아이를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더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고, 더 열심히 놀아주고 싶어진다. 내 삶에 여백이 생기니, 아이가 더 사랑스럽게 보인다. 쉼은 엄마를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엄마’로 만들어준다.

일곱째, 엄마가 아닌 나 ‘자신’에게 다시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엄마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름이 바뀐다. ‘누구 엄마’, ‘누구 아내’, ‘누구 딸’. 그 이름들은 소중하지만, 동시에 조금씩 나를 지워나가기도 한다. 내가 원했던 삶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어떤 걸 좋아했는지 생각할 틈도 없이 하루가 지나간다. 한 달 살기는 그런 익숙한 일상에서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거리를 둘 수 있는 시간이다. 아이가 어학원에 가 있는 시간, 나는 도시의 작은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그 누구도 나를 엄마라 부르지 않고, 누구의 와이프인지도 모르는 그곳에서. 나는 그저 한 명의 ‘나’로 존재한다.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산책을 한다. 걷다 멈춰 선 벤치 위에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도 낯설게 느껴진다. 그동안 얼마나 나 자신에게 시간을 내주지 않았는지, 그제야 깨닫게 된다. 카페에서 다이어리를 꺼내 올해의 목표를 적기도 하고,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꿈을 다시 적어보기도 한다. 하고 싶은 일, 해보고 싶은 공부, 배우고 싶은 것들. 하루하루 ‘해야 할 일’에 파묻혀 미뤄두었던 나의 삶이 다시 천천히, 그리고 분명하게 떠오른다. 나는 지금도 그 시간에 적었던 메모를 가끔 꺼내 읽는다. 그중 일부는 실행으로 이어졌고, 어떤 것들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지만 분명한 건, 그 모든 것이 ‘나의 것’이라는 점이다.

한 달 살기는 단순히 아이와 함께 보내는 여행이 아니다. 엄마로만 살아오던 내가 다시 ‘나’에게로 돌아가는 시간. 이 시간은 아이에게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나를 위한 가장 단단한 선물이 된다.


’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했던가?

물론 내 집이 아니니 고생스럽고 불편한 점이 있기 마련이다. 누가 사용했을지 모르는 베개, 안감과 겉감이 따로 노는 이불, 얇은 수건, 비데 없는 화장실, 적정 온도를 맞추지 못하는 에어컨, 자유롭지 못한 의사소통 나열하자면 끝도 없는 불편에도 불구하고 아이와 한 달 살기를 하며 맛보게 되는 달콤함이 있다. 아이가 외국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 “Hi”라고 인사했던 용기, 분홍빛 노을 아래 걸었던 산책길, “엄마! 오늘은 뭘 하면서 하루를 보낼까?”라고 물으며 기대하던 눈빛. 한 달 살기를 마친 후, 늘 마음속에 남는 건 불편함이 아니라 함께 보낸 따뜻한 순간들이다.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진짜 나와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한 달 살기는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에너지와 용기, 시간과 노력이 든다. 하지만 그만큼 돌아오는 건 명확하다. 엄마로서도, 한 사람으로서도 단단해진 나. 그리고 또 다른 세상에 한 발짝 다가간 아이. 그 모든 게 모여 하나의 확실한 문장이 된다. “아이와 꼭 한 번은 한 달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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