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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한 달 살기 가면 얼마 들어요?

경비 만들기

by 낭만육아

쉽게 휙휙 떠나면 좋으련만. 전셋집 사는 마당에 가당키나 하겠나?

아이와 한 달 살기. 준비 과정에서 가장 많이 검색한 키워드는 아마도 이것일 것이다. “한 달 살기, 도대체 얼마 드나요?”


아이 초등 1학년 겨울방학, 한 달 살기를 처음 준비할 때 나는 휴직 중인 워킹맘이었다.

그땐 한 달의 시간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관건이었다. 하지만 다음 해 겨울, 아이가 2학년이 되었을 땐, 전업맘과 워킹맘의 중간 어딘가쯤. 이번엔 ‘경비를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가 가장 큰 숙제였다.

물론 남편 월급이 존재하지만, 함께 가지도 못하는데 경비만 내놓으라 하긴 마음이 불편했다. 어떻게든 내가 벌고 모은 돈으로 경비를 마련하고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생활비에서 떼어 조금씩 모아둔 비상금, 아주 오래전부터 야금야금 사둔 주식을 팔아 경비에 보탰다. 그리고 그다음 해부터는 아이와의 한 달 살기를 위해 결혼 10년 동안 써보지 않은 가계부를 꺼내 들었다. 식비와 학원비를 줄여가며, 한 달 100만 원씩 모으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엄마 1인, 아이 1인 총 2인 기준 약 1,000만 원 정도면 한 달 살기가 가능하다.

화면 캡처 2025-05-28 195214.png


한 달 살기는 ‘특별한 여행’이 아니라 낯선 곳에서 살아보는 경험이다. 그러니 한국에서 지출되는 생활비에 항공료와 숙박료 정도를 더하면 총 경비가 된다. 왜냐하면 한 달 살기를 떠나 있는 동안엔 한국에서의 생활비, 학원비, 교통비 등은 대부분 세이브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지면, 생각보다 부담이 덜하다.

핵심은 이것이다. ‘한국에서 쓰던 생활비 수준에서 얼마나 덜 쓰고, 그 돈으로 새로운 곳에서 살아낼 수 있는가?’ 물론 한 달 살기에서 어떻게 지내느냐에 따라 경비가 달라지겠지만 필수 경비는 대부분 비슷하다. 항공권, 숙소비, 어학원비, 식비 등 생활비가 주요한데, 저가항공과 장기숙박할인 활용, 식재료를 준비해서 직접 식사를 해 먹는다면 비용은 생각보다 훨씬 줄어든다.


우리나라 물가, 정말 살벌하다. 주부라면 안다. 10만 원 들고 마트 가면 손에 드는 게 없다. 그만큼 한국 물가는 전 세계에서도 높은 편이다. 그러니 한국에서의 생활 수준이면 외국에서 부족하지 않게 지낼 수 있다.

내가 다녀온 필리핀 세부의 물가는 우리나라 1/3 정도의 수준, 호주 시드니의 물가는 사람의 손이 한번 거치면 그러니까 가공된 물건이면 그 값이 비싸지만 식재료만큼은 우리나라의 반 가격이다. 특히 소고기와 채소, 과일이 저렴한데, 내가 지내던 시드니 시티 내 차이나타운 패디스마켓을 이용한다면 더욱 저렴하게 식재료를 구할 수 있었다. 또한 시드니에서 한 달 살기를 할 때는 숙소비를 절약하기 위해서 셰어하우스 마스터룸에서 머물렀는데, 숙소비 500만 원가량을 절약할 수 있었다. 게다가 무료로 즐길 수 있는 박물관, 수영장, 도서관 등 체험거리 역시 가득하다. 이런 정보들을 미리 익히고 준비한다면 아이와 외국에서 한 달 살아보는 일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1년 내내 준비하는 한 달 살기

아이 초1 겨울, 세부 한 달 살기는 충동처럼 시작됐지만 나에게 큰 에너지와 긍정의 힘을 안겨주었다. 그 시간을 계기로 나의 삶도, 생각도 조금씩 방향을 바꿔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음 해는 시드니, 그다음 해는 오클랜드로 향했다. 두 번째, 세 번째 한 달 살기는 이전보다 훨씬 의식적이고 계획적인 선택이었다. 목표는 천만 원. 매달 100만 원씩 적금을 모았다. 100만 원을 어떻게 모을까? 방법은 간단했다. 생활비 다이어트.

아이가 다니던 사설 수영학원을 시에서 운영하는 시립수영장으로 바꿨다. 미술학원도 학교 방과 후 수업으로 대체했다. 나는 요가학원 대신에 홈요가와 공원 산책을 시작했고, 외식을 줄이고 집밥을 해 먹었다.

예전을 돌아보면 ‘나만 몽클레어 패딩 없어.’, ‘이제 40대인데 피부 관리에 돈 좀 써야 되지 않을까?’ 친구는 골프 배운다는데, 나도 해야 하나?‘, ’ 아이 영어학원 외 영어도서관도 보내야 할까?‘라는 고민을 심심치 않게 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여유 넘치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았다. 나만, 우리 집만 왜 그리 부족해 보이던지. 그럴 때는 ’한두 푼 아끼는 것이 뭐 그리 중한가. 티끌 모아 티끌인 인생 아닌가?‘ 하는 마음에서 비싸지도 않지만 가치도 없는 물건들을 사들였다.

하지만 한 달 살기를 하기 위해 절약하는 과정은 궁핍함으로 서글픈 마음이 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넉넉함에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한 달 살기에 점점 다가가는 길인 것만 같아서.

요가학원 대신 대공원을 걸으며, 외식 대신 계란말이를 하며, 서점 대신 도서관에 가며, 당근 할 책을 정리하며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오클랜드 가서 쇼비뇽블랑 사 먹어야지. 피식

오클랜드 가서 옥시덴탈 가야지. 피식

아이랑 오클랜드 대학교 가봐야지. 피식

자꾸만 싱거운 웃음이 났다. 다른 무언가를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가진 것에 관심이 없어졌다.


나는 이미, 한 달 살기로 가고 있었다. 한 달 살기를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충분히 행복했다.

무언가를 더 가지기 위한 절약이 아니었다. 누구를 따라가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이와 내가 함께 살아볼 새로운 시간을 향해 조금씩 걸어가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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