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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아니면 못 가요?_ 초등, 한 달 살기 골든타임

by 낭만육아

딸아이가 4살 때 아이만 데리고 단둘이 일본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무슨 용기로 그런 도전을 했는지. 유모차 하나, 배낭 하나를 둘러메고 후쿠오카 공항에 내리자마자, 아이는 유모차에 탈 생각도 않고 인형 매장으로 내달렸다. 호빵맨 캐릭터가 가득한 그곳에서 하마터면 아이를 놓칠 뻔했다. 4살 아이에게 “유모차를 타지도 않을 거면 왜 가지고 왔느냐”며, 타지 않겠다는 아이를 잡아 태우곤 눈물을 흘리며 공항을 빠져나왔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아이를 잃어버렸으면 어쩔 뻔했나! 무섭고 떨리는 마음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아이를 위해 수영장, 온천, 캐릭터 샵에도 들렀지만 아이는 줄곧 “엄마, 안아줘”만 외쳤다. 늘 아이를 안고 다니느라, 그 여행은 ‘휴가’가 아닌 ‘육아’였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아이와 단둘이 떠난 여행을 더 이상 시도하지 못했다.

사실 어린아이와 함께하는 해외여행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와의 장기여행은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는 오랜 꿈이었다. 아이 어릴 적엔 ‘좀 더 크면’이라 했고, 아이가 크고 나선 ‘시간 되면’, ‘여유 생기면’, ‘언젠가는’으로 말이 바뀌었다.

한 달 살기를 꿈꾸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정작 떠나기로 마음먹고 나서도 한참을 망설였다. ‘지금이 과연 아이에게 좋은 시기일까?’ ‘한 달이나 다녀와도 괜찮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초등 시기만큼 한 달 살기에 적합한 시기는 없다. 중학생이 되면 내신을 챙겨야 하고, 고등학생이 되면 생활기록부와 입시 일정이 인생의 전부가 된다. 방학이 있다고 해도 ‘이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는 압박감은 끊임없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초등학생일 때는 다르다. 학교 수업의 공백이 비교적 적고, 기초 학습만 이어가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시기의 아이는 아직도 엄마가 세상의 전부다. “엄마랑 같이 자고 싶어.” “엄마랑 놀고 싶어.”라고 말해주는 마지막 시기. 이제 곧 친구가 더 좋아지고, 엄마는 슬슬 뒷자리에 앉게 될 시기를 앞두고 있다.

이 시기를 ‘함께’ 보낼 수 있다는 건, 엄마에게도 마지막 선물 같은 시간이다.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매일 붙어 지낸 기억은 아이 마음 어딘가에 평생 남는다. 그리고 엄마 역시 그 시간을 통해, 육아가 아니라 ‘동행’이라는 말의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된다. 한 달 살기를 함께한 그 시간 동안, 아이는 낯선 도시의 햇살을 기억하고, 처음으로 인사한 외국 친구의 이름을 기억하며, 엄마의 손을 더 오래 붙잡는다. 그리고 나도, “이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매일 깨닫는다. 이건 일상의 반복 속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경험이다.

또한,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는 ‘세계를 받아들이는 감수성’이 가장 활짝 열린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여행은 단지 관광을 넘어 ‘세계관’을 형성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낯선 언어, 다양한 인종, 색다른 문화 속에서 아이는 “세상은 넓고, 나는 그 안에 있는 존재”라는 감각을 처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하나. 엄마에게도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아이의 초등 시기엔, 엄마 역시 마흔이라는 분기점을 지나고 있다. 나의 경우, 20대에는 하지 않았던 진로 고민을 40대에 가장 깊이 했다. 사회에서 밀려나는 삶에서의 적응, 나와 가족 안에서의 균형, 진짜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인지 고민하던 시기. 그 갈림길에서 한 달 살기는 내게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주었다. 지금이 아니면 어떤 다른 이유로 미루게 될지 모른다. 나중엔 일이 생기고, 건강이 걱정되고, 경제적 사정이 달라지고, 아이가 ‘이제 안 가고 싶다’고 말할 수도 있다. 기회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아이의 시간도, 엄마의 시간도 그렇다. 우리는 자주 ‘지금 말고 나중’을 이야기하지만, 아이의 성장에는 ‘다음에’라는 유예가 없다. 그때는 또 다른 이유로 더 못 갈 수도 있다. 시간은 아이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혹시 지금,

한 달 살기를 꿈꾸고 있다면, 지금이 바로 골든타임인지도 모른다.

아이가 엄마 손을 기꺼이 잡아주는 이 마지막 시간.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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