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식이에서 삼식이가 된 남편

집밥 힐링

by 낭만육아

8년 연애 후 결혼

아이가 없을 땐 각자 일 다녔기에

저녁먹고 주말에 같이 밥 먹고가 전부


아이가 태어나고

남편이 수험생활을 시작하여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던 생활이라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본격적인 수험생활 시기엔

일도 그만두고 시골 고시원에서 공부를 했기에

더욱 얼굴보기도 힘들었지.


합격 이후엔

입이 돌아갈 정도로

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 주말에도 나가

일하는 남편으로

주말 저녁 한끼 정도나 같이 밥을 먹었다.


내 남편 최고의 장점은 늘 영식이라 말하고 다녔지만

마음 한켠엔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세가족이지만 언제나 아침 저녁은 딸과 단둘이 먹었다. 세가족이지만 두식구인 셈.


냉장고엔 항상 시댁과 친정에서 온 반찬들로 가득했다. 덕분에 나물을 무쳐보거나 특별한 요리를 해본 적이 없다. 감사한 일이었지만 그만큼 결혼 10년차에도 할 수 있는 음식이 없다.


그러다 도쿄에 왔다.

남편이 도통 나가질 않는다. 연구소는 4월부터 시작이고 그것도 매일 나가는게 아니다. 아이는 국제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일주일간 또 방학이란다. 쉬는 날이 참 많은 학교라 등록 전에 망설이기도 했다.


그렇게 세 가족이 24시간 내내 붙어 있다. 영식이던 남편은 삼식이가 되었고 학교 급식으로 해결되던 아이의 점심은 도시락이 되었다. 그마저도 브레이크데이가 많아 매일 매일 세식구가 마주보며 밥을 먹는다.


도쿄에 도착한 첫주엔 외식을 많이 했다. 외식을 하면 할 수록 짜고 달고 느끼한 일본 음식이 입에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왠만하면 다 맛있다는 내 입맛이 변했나. 해외여행에 가면 친정 엄마가 물이 제일 맛있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집밥을 해먹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일본은 식재료가 저렴한 편이다. 한국음식을 할 수 있는 식재료도 구하기 쉽다. 더욱이 소포장되어 있어 작은 냉장고를 가득채우지 않을 수 있어 좋다.


그렇게 시작된 삼식이 세명의 집밥프로젝트. 아이에게 가장 먹고 싶은게 무엇인지 물으니 김치제육볶음이란다. 집앞에 있는 도큐푸드에서 병김치를 하나 사고 전지도 500g 샀다. 파기름을 내서 돼지고기를 볶다가 김치를 넣고 볶았다. 설탕과 고추장 반스푼씩 넣으니 달달하고 매콤한 김치제육볶음이 완성되었다. 접시도 없어 냄비째 놓고 먹은 김치제육에 셋다 맛있다를 연발하며, 바닥에 있는 양념까지 모으고 모아 야무지게 밥을 비볐다. 중고로 산 2인용 작은 식탁에 옹기종기 모여 않은 우리 세가족은 배를 두드리며 일본에 와서 먹은 식사 중에 오늘이 제일 맛있었다며 기쁨의 웃음을 보였다.

매일 5천엔 안에서 장을 본다. 메인 메뉴 하나와 야채 가득, 식사와 곁들일 작은 사케나 맥주도 사면 더욱 기대되는 밥상이 된다. 집에 와서 고시히까리 쌀을 깨끗히 씻어 밥을 짓고 밥이 되는 53분동안 샐러드도 만들고 가라야게도 튀긴다. 돈키호테에서 산 가라야게 반죽은 10분도 안되서 바삭바삭하고 짭조름한 가라야게를 만들어준다. 가라야게를 큐피 마요네즈에 찍어 한입 베어물면 말해뭐하나. 이렇게 장을 보고 음식을 하고 세식구가 모여 밥을 먹다보니 리틀포레스트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지친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주인공이 식재료를 키워 요리를 해먹는 내용이다. 그 영화를 보며 마음이 편안해졌던 이유를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우리 가족에게도 이 도쿄 생활이

바쁘게 달려온 삶 사이에 생긴 잠깐의 쉼표일지 모른다.


그래서 이 시간을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소중히 보내고 싶다.


(아, 그런데 매일 세명이 지지고 볶으니

볶음밥이 되겠네.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