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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생각을 닮는다.

부모의 해석이 아이의 내면 언어가 된다.

by 낭만육아

“얘는 왜 이렇게 예민해요?”

부모상담을 하다보면 부모들이 가장 자주 하는 말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눠보면, 아이의 예민함보다 먼저 드러나는 건 부모의 해석 습관이에요. 같은 상황을 두고도 어떤 부모는 “얘는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지 모르겠어요. 큰 일도 아닌데 매번 울어대서 달래느라 힘들어 죽겠어요”라고 말하고, 또 다른 부모는 “우리 아이는 마음이 여린 만큼 다른 사람의 감정도 잘 알아채요. 나중에 선생님처럼 상담선생님하면 좋을 것 같아요” 라고 말합니다. 한쪽은 ‘판단’으로, 한쪽은 ‘이해’로 해석하는 거죠. 아이의 행동은 같지만, 그 행동을 바라보는 해석이 다르면 아이에게 건네는 말도 달라집니다. 아이가 숙제를 미뤘을 때 “또 게으름 피웠네”라고 말하면 아이는 ‘나는 게으른 아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합니다. 하지만 “하기 싫은 걸 하려니 힘들지? 그래도 조금씩 해보자”라고 말하면, 아이는 ‘나는 어려워도 해낼 수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 작은 차이가 아이의 자기 해석(Self-interpretation) 을 바꾸고, 그 해석이 아이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갑니다.


제 딸 아이는 현재 초등학교 4학년입니다. 예민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입니다. 어렸을 때는 내복에 있는 상표는 무조건 떼어줘야 했고, 바지 끝, 시보리가 있는 옷은 입지 않아서 매번 쫄바지나 통바지를 입혔습니다. 아이 옷을 입히다가 회사에 지각할 뻔 한 적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특히 날이 추워지는 가을, 겨울에는 아침 옷논쟁으로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양말이 답답하다고 벗고, 내복은 불편하다고 벗고,결국 “그만 좀 해!”라는 말이 터져나왔죠. 그렇게 아이를 어린이집에 들여보내고 나서야 늘 후회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아이가 예민한 게 아니라, 그저 자신의 감각에 솔직했던 것이라는 걸요. 아이는 여전히 감각이 섬세하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합니다. 그래서인지 타인의 불편한 감정을 잘 살피고 도움을 주는 역할을 자처합니다. 자신을 불편하게 했던 것들이 친구들에게 불편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요새는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되는 친구가 없도록 친구를 챙기기도 하고, 아픈 친구가 있으면 함께 보건실에 가주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같은 상황에서 예전처럼 ‘예민하다’는 말을 떠올리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아이는 세상의 작은 결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아이를 대하는 제 말이 달라졌습니다. 아이가 옷이 간질거린다고 짜증을 낼 때면 “그럴 수 있지. 네 몸이 불편하다고 알려주는 거잖아.”라고 말했습니다. 친구 문제로 속상해하며 울 때면 “뭘 그만한 걸로 울어? 뚝그쳐” 대신에 “그만큼 네가 친구에게 마음을 많이 썼다는 뜻이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내 아이의 표정이 바뀌었습니다. 울음을 그치고, 금세 “엄마, 나 그 친구랑 내일 다시 얘기해볼래요.”라고 말하곤 했죠. 그때 알았습니다. 아이는 내가 던진 ‘말’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다시 해석하고 있다는 걸요. 저는 상황을 바꾼 게 아니라, 상황을 바라보는 내 해석을 바꿨을 뿐인데, 그 한 문장이 아이의 마음을 바꾸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감정대로 행동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생각이 감정을 이끕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 CBT) 의 핵심 원리로 설명합니다. “감정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즉, 같은 사건이라도 ‘나는 실패했어’라고 생각하면 우울해지고, ‘이번엔 어려웠지만 배웠어’라고 생각하면 다시 시도할 힘이 생깁니다. 이처럼 우리의 사고–감정–행동은 연결되어 있고, 생각이 바뀌면 감정도, 행동도 달라집니다. 시험을 망친 사건 자체가 아이를 무너뜨리는 게 아닙니다. ‘이건 끝이야’, ‘나는 공부를 못 해’라는 생각이 감정을 무너뜨립니다. 반대로 ‘이번엔 어려웠지만 다음엔 더 잘할 수 있겠다’라고 해석하면, 같은 실패 속에서도 아이는 회복의 방향을 찾습니다. 즉, 감정은 사건이 아니라 생각의 결과입니다. 마음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생각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여기에서 부모의 역할은 아이의 감정을 대신 조절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생각을 점검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아이가 속상해할 때 “괜찮아, 잊어버려” 대신 “그때 어떤 생각이 들었어?”라고 물어보세요. 이 질문 하나가 아이를 감정에서 사고로 옮겨줍니다. 생각을 언어로 꺼내는 순간, 감정의 방향이 바뀝니다. 부모의 언어는 아이의 사고 틀을 만듭니다. “괜찮아”라는 말보다 “그래도 해봤잖아”라는 말이 아이의 내면 대화 속에서 훨씬 오래 남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통해 ‘세상을 해석하는 법’을 배웁니다. 즉, 아이의 마음은 결국 부모의 생각을 닮습니다. 아이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드는 건 거창한 훈육이나 완벽한 교육이 아닙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떤 말로 해석하는지의 차이입니다. 아이가 늦잠을 자도, 숙제를 까먹어도, 친구와 다퉈도 그 순간마다 부모의 시선이 아이의 내면에 저장됩니다. “이건 네가 배워가는 과정이야.” “다음엔 다르게 해볼 수도 있겠네.” 이 짧은 문장들이 아이 마음의 구조를 바꿔놓습니다. 그 말 속에는 부모가 세상을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죠. 이런 말들은 작지만, 아이의 마음속에서는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단단한 믿음으로 남습니다. 세상은 아이에게 매일 새로운 문제를 던집니다. 그 문제를 피할 수는 없지만, 해석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완벽한 하루가 아니라, 하루를 다시 해석할 수 있는 힘입니다.


* 부모에게 남기는 문장

아이의 마음을 바꾸고 싶다면 그 아이의 ‘생각’을 먼저 물어보세요. 감정보다 중요한 건, 그 감정을 만든 해석입니다.


#생각을훈련하라 #아이의마음을단단하게만드는사고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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