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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맵다 쓰다 Mar 01. 2024

no.3  프로세스에 알레르기가 있어서요

"지난주에 의미 있었던 일, 한 가지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코칭의 문을 열면서 고객과의 라포형성을 위한 질문 중 한 가지이다. 

버디코칭을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이다.(버디코칭은 예비 코치 2명이 서로에게 고객이 되어 짝을 이뤄 실습하는 것을 말한다

코칭 대화는 대화모델도 PMA, GROW, ABLE 등등 다양하고 거기에 들어가는 예시 질문들이 수십 가지씩 존재한다. 모든 질문을 대화모델에 속하는 것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코칭 초기에는 프로세스를 익히는 연습이 필요하다.(실제 시험도 대화모델을 잘 시연했는가로 점수가 메겨진다) 


처음 받은 3일의 코칭과정은 말 그대로 교육이었고 진짜가 이제 시작되었다. 실전 코칭 약속으로 달력이 가득 찼다. 다행인 건 같은 동기 코치와 짝을 이룬 실전이었기에 일반 고객보다는 안정감이 있는 관계라는 점이다. 그래도 처음 뵙는 그들과 삶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인사를 나누고 개인정보 보호 안내를 하고 라포를 형성할 짧은 대화를 나눈다. 오늘 대화 나눌 주제에 대해서 고객에게 묻고 고객과 함께 문제를 좁혀나간다. 영 입에 안 붙는 질문 때문이었을까. 고객의 눈을 보다가 프로세스가 적힌 책을 흘깃거리는 내가 싫어서였을까?  연기봇도 아니고 적힌 대로 질문하는 내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아.. 3분 정도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텐데... 경청보다 시계를 더 보고 있는 이 상황이 맞는 거야? 고심해서 질문했더니 질문 의도를 모르겠다는 답에 손은 땀이 배어난다. 


한정된 시간 안에  고객이 만족할  코칭이 되려면 효과적인 방법, 모델, 기준이 있어야 하는 건 안다.

의사도 변호사도 로봇에 대체된다는데 적절한 질문과 대답에 따라 미리 학습된  다음 단계를 안내하는 것을 인간이 잘하는 영역 맞을까? 시키는 대로 하는 건 싫어하는 성격때문인지 앵무새가 된 것 같은 이 상황이 좀처럼 적응이 안 된다.


몇 번의 실전 코칭 이후 일주일 후  상위 코치에게서 다시 코칭을 받았다. 어려운 게 없냐는 말에 아무래도 프로세스 대화가 불편하다는 작은 투정을 했다. 

일상에서 쓰지 않는 용어라 어색할 수 있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낯선 프로세스를 의식하니 더 긴장되고 질문도 생각이 안 날 수 도 있고 자연스럽게 리드할 수 있게 되면 극복이 된다. 익숙해지려면  무엇보다 자신만의 언어로 프로세스를 바꾸는 중요하다고 했다. 모든 대화 모델 속 질문을 녹음해서 수시로 들었다는 선배코치님, 내가 자주 사용하고 편안한 말투를 적용해서 질문을 다시 수정해서 대본을 만들고 치면 자연스레 나오도록 연습을 했더니 익숙해지더라는 말도 덧붙였다

걱적스런 내 얼굴때문이었을까? 선배코치의 따스한 응원 선물이었을까? 그럴 의무가 없었음에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만든 귀한 자료를 보내왔다. 웃는 모습이 해바라기같았던  코치님의 가지런히 정리된 파일을 열어보며 나는 문제가 어려워서 못 풀겠다고 투정하는 학생이 같았다. 무엇인가 제대로 익히려면 이 정도 노력은 해야 한다고 파일말해주고 있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며 '너 여전히 코치에 빠져들지 않았구나' 하고 누군가 말할 것 같았다. 원래 자격 과정이 다 그런 거 아니었어? 이론 조금 공부하고 실습 시간 적당히 채우면 되는 그런 거 말이지. 나만 불성실한 게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었다. 프로세스 그런 거 달달 외우지 않아도 임기응변, 유연성 있게 나는 잘할 수 있지. 오만이 내 안 어딘가에 있었나 보다. 나는 가끔 하지 않을 이유를 영리하게 포장하거나 합리화한다. 왜 이렇게 이 질문을 나열하는 시간이 의미 없이 느껴질까는 오만한 합리화였다. 


중학교 때 가정과목을  좋아했다. 시험기간에도 제일 먼저 공부할 정도였다.(국영수를 먼저 했어야 했는데..) 매 학년마다 실제 수예실습을 하는 게 가장 좋아했다. 몇 달간 만들고 제출한 과제물은 점수로도 연결되고 우수작품은 학예회에 전시가 되었다.  

실습 시즌이 되면 학교 앞 문방구에는 천이며 필요한 도구를 팔았다. 1학년때는 신발주머니, 2학년때는 한복 저고리, 3학년때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바지..였나 그랬다. 


문방구에서 파는 몇 종류 원단에서 마음에 드는 걸 골라가는 친구들과는 다르게 나는 매 학년 지역의 가장 큰 시장에 가서 원단을 끊어왔다. 물론 열정만 있는 건 아니고 나는 제법 야무진 손끝을 가지고 있긴 했다. 손으로 박음질을 촘촘하게 해서 완성품을 만드는 숙제가  하기 싫어서 혹은 못하겠어서 친구나 엄마가 해줬다는 이야기를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반에 몇 명 뽑히는 작품이었지만 매해 내 작품이 선정되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손잡이가 없는데 손잡이를 달아놓는다거나 총천연색으로 남다름을 뽐내고 있으니 비슷한 친구들 것과는 차별화가 되었다. 성실히 잘해도 되지만 다르게 잘하는 것도 방법이 된다는 걸 의도하지 않았지만 배웠다. 


그때부터 차별화를 몸소 익혔던 것 같다. 똑같이 하는 건 대체로 알레르기 반응이 있어서 시키는 일보다 주도성이 주어지는 일을 재밌어했다.A를 하라면 A-1를 하거나 생각못한 B를 가져갔다. 대체로 성과는 좋았다.  독창성에 취해서 지루하지만 묵묵하게 일단 시키는 대로 익히는 방법을 까먹은 걸까? 내가 반응한 게 지루한 대화모델이 아니라 꼼수 없이 몸에 쌓아야 할 시간에 대한 명현현상인걸까?


적당히가 없는 코칭실습과 2시간을 쏟아붓고 나면 빠르게 소진되는 에너지를 부정하면서 핑계 댈 무엇인가를 찾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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