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오늘은 뭔가 다를까 기대했는데 아니었다. 쉼 없이 체험은 계속되었다. 달라진 건 어제와 다른 파트너일 뿐. 코치 교육을 받는 같은 기수 절반이 자격을 취득한 코치님이었다. 연구소가 새로 생기면서 소장님이 개설하는 코치과정이 궁금해서 오로지 청강을 위한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절반은 나처럼 코치도 코칭도 처음인 일명'코칭에 코도 모르는 부류'였다.
절반 이상이 연구소장님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함께 듣는 수업 열기는 엄청났다. 대상에 대한 신뢰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일단 마음의 연다는 건 무엇이든 젖어들 준비 자세가 되었다는 의미다. 학생의 자세 중 단연코 최고이다. 미덕의 가치를 학생과 교사에게 알리며 걸어오신 교육현장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코칭을 받고 또는 알고 나서 삶이 바뀌었다며 톤을 높여 이야기하는 분,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분, 소그룹별로 코칭 실습을 하고 나서 내놓는 소감들은 대단했다.
'마음의 얼음이 녹았어요!'
'보듬어 주는 느낌이었어요'
'함께 코칭으로 춤을 추는 것 같아요'
' 내 존재를 이제야 알아차리게 되어서 기쁨의 눈물이 흘려요'
얼음, 춤? 기쁨의 눈물.... 한국어인데 외국어처럼 낯설게 느껴지는 표현들이었다. 실제로 그런 단어를 구사해서 대화하는 경험자체가 처음이라서 그런지도 몰랐다. 독립투사도 아니면서 마음에 없는 말은 잘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애매한 웃음만 짓게 되었다. 2일간의 숨 가쁜 체험의 소감을 들려주는 사람들은 진지했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존재코치과정을 신청했다는 사람, 내가 존재하는 것을 제대로 느끼고 싶어서 오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종교가 없어서 이런 가치와 의미를 대화의 주제로 삼는 일이 생경해서 그랬을까. 물에 섞이지 않는 기름처럼 보이지 않는 막이 있는 것 같았다. 체험(실습)을 통해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의미를 진지한 이토록 본격적으로 이야기한 건 처음이었다. 또, 실존에 대한 의문과 열병을 앓는 사람이 이토록 많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나는 그동안 삶의 의미는 먹고사는 일이 급하지 않는 사람, 편하게 표현해 보자면 배부른 고민이라고 생각했다. 1차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이상을 꿈꿀 수 있지 않나. 내 존재의 이유보다는 어떻게 먹고살지를 더 심각하게 고민해 온 나로서는 그게 불편한 것이었다.
저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나의 가치, 의미에 저렇게 목숨을 거는 걸처럼 보일까? 첫날에 규정할 수 없었단 불편함과 해소되지 않던 이유가 그것이었다.
계속된 코칭과 대화로 억지로라도 생각하고 답하게 되었다. 진짜 맞는지 이 자리에서 급조한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수 십 년간 동거했지만 마치 처음 뵙는 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제까지는 나는 먹고살기에 급급해서 이런 생각을 못한 걸까? 아님 그걸 생각하지 못해서 이렇게 빙빙 둘러 살아왔을까?
마무리 소감에 이런 대답을 했다.
"솔직히 존재에 대한 고민은 배부른 사치쯤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묻지 않고 살아왔던 것 같아요. 그런 걸 물을 때가 아니다 스스로를 다그치면 여기까지 왔어요. 그런데 이틀간 조금 다른 곳으로 여행을 다녀온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 시간이 낯설지만 마치고 보니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그런 질문과 대답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 것 같습니다. "
생각지 못하게 울컥 눈물이 나왔다. 배부른 사치를 이제야 할 수 있게 된 처지에 감격한 건지 분위기에 동요된 건지는 몰라도 시종일관 한 발 빼고 있다 이제 원 안으로 들어간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