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짓는 집, 브런치
그림을 그렸다.
빨간 지붕. 잔꽃무늬 커튼이 드리워진 격자무늬 창문. 아치형 나무 문엔 작은 팻말. 노란, 핑크 튤립이 차례로 심어진 집.
너무나 많이 그려서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도 여전히 기억이 나는 집이다. 배 깔고 장판 위에 엎드려 동화 속에 나오는 것 같은 집을 24색 크레파스로 그려대며 행복해하던 여덟 살 꼬맹이.
나이를 먹으면 버석하게 말라간다.
집은 사는 것이 아닌 소유해야만 하는 것으로 아는 멋없는 어른이 되었다. 어릴 적 그리던 집에 살려면 아니 소유하려면 대지 몇 평에 건평은 얼마나 나와야 하는지 환금성은 있는지 따지는 40대이다. 실제로 따져볼 수 있다면 다행이고 언감생심 마음도 못 품는 돈도 없는 별 볼 일 없는 어른이다.
게다가 빡빡한 회사와 더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제자리가 더해졌다. 이런 재미없는 그림이나 그리며 살 줄 알던 내게 찾아온 건 글이었다. 이미 그리다 만지 오래되어 메마른 내 그림을 글은 물먹은 붓터치로 되살려냈다.
하얀 화면의 브런치는 나만의 전용 상담자였다.
퇴색돼 가던 그림 안에는 잊고 있던 '나', 살피지 않아서 보듬는 법을 잃어버린 '마음'이 있었다. 글은 오래 기다려온 그 둘의 손을 잡고 와주었다. 아무런 힘도 없는 글이 내 눈물, 콧물을 닦아주기도 하고 행복의 순간을 다시 회상할 수 있게 했다.
비밀친구처럼 일상 속에서 혼자 웃음 짓는 이벤트를 선사했다.
'작가가 되었습니다.'라는 메일을 받던 날, 내 글에 하트 하나, 말풍선 하나가 꼬리처럼 달리는 순간, 포털 사이트에 내 글이 올라 상상 못 할 조회수가 올라가고, 밀크 pd에게 제안하기 메일도 받았다. 아직도 내 프로필에는 당선 글을 녹음하던 날 사진이 걸려있다. 연차까지 내고 그 짧은 녹음을 위해 서울행 기차를 타던 날은 앞으로를 위한 약속이었다. 열심히 써도 된다는 격려와 깜짝 선물을 브런치는 꺼내놓았다.
쓰는 사람으로 길을 내주었다.
불과 5년의 시간은 나를 저자로 만들어주었다. 브런치를 주제로 강의도 하고 무엇보다 삶과 생각을 글로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여전히 나는 일상에서 만나는 작은 순간을 브런치에 쓴다.
님과 함께. 글을 짓는 집 브런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 년 살고 싶어.
유행가 가사처럼 브런치는 내 마음의 집이다. 어릴 적 내가 그리던 그림 같은 집. 그 집은 나의 가장 소중한 님을 초대할 수 있게 한다. 오늘도 언어로 영혼의 집을 짓기 위해 나에게 묻는다. 누군가에게도 한 뼘의 의미가 있길 바라며 내 집의 문을 열어젖힌다. 너른 마당이 있는 곳, 브런치는 글을 짓는 우리 모두의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