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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맵다 쓰다 Sep 14. 2020

제목 한번 잘 지은 '나도 작가다'

뻔뻔하지만 나의 필명 앞에 붙이는 수식어가 있다.

자칭 브런치가 사랑하는 작가....


말하는 대로 이뤄지는 게 인생이라고 했는데 나라도 나를 그렇게 불러주자 하고  18번처럼 말하고 다녔더니

진짜 브런치의 사랑을 받는 느낌이다.


https://brunch.co.kr/@aa79/118


나의 끈질긴 구애 덕분인지 현란한 글빨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이름도 거룩한 밀크 PD님의 제안을 받았고  EBS에 녹음을 하러 상경했다.



라디오지만 내 인생 처음의 방송 데뷔를 글로 하게 되다니..

망설임도 없이 회사에 휴가를 내고 부산에서 일산까지 날아갔다.


내 마음은 직진인데 손가락은 정신을 못 차렸나 보다.

어쩐지 예상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네.. 했더니 일산 EBS가 아닌 MBC드.. 림 센터(?)에 가있었다.

'그렇구나,, 일산에 방송국이 하나가 아니였구나..'

MBC 앞에서 다시 펭수를 만나러 EBS로 가는 난감한 상황이 생겼지만 후기에 쓸 또 다른 에피소드를 선물해 주는구나.. 하며 머릿속엔 글.. 글뿐이다.




처음 온 티를 내고 싶지 않지만 입구부터  담당자 이름을 몰라서 길 잃은 어린양 이 되었다.

녹음 중이라 통화는 안되고..

아직 녹음 스튜디오로 못 갔는데... 산 넘고 물 건너는 느낌이다.


무심한 듯 쉬크하게 차려입은 내 감색 점프슈트가 무색하게... 난감한 내 표정이 안타까웠는지 방법을 찾아서 프리패스를 시켜준다.

다행히 받은 출입증



어떻게 들어왔냐는 담당 PD님의 환대를 받으며 앞서 녹음하고 있는 다른 작가님의 낭독을 조용히 들어본다.

듣다 보니 읽어주는 글에 빠져든다.

'참 맛깔나게 잘 썼네.... 뽑힐만하군..'생각하고는 그 말은 나도 뽑힐만해서 뽑혔겠단 생각으로 귀결되자 부끄러움에 귀가 빨개지는 느낌이 든다.


천천히 좀 긴 호흡으로 말하듯이 긴장하지 말고 해 보라는 주의사항을 듣고 녹음에 임했다.

립서비스였겠지만 "잘하시는데요?" 하는 한마디에 슬며시 광대가 올라간다.


라디오 부스에 나만 남겨지고 육중한 문이 닫힌다.

마이크를 통해 전달되는 내 목소리와 나의 글만 남는다.



나의 꿀꺽 침 넘기는 소리도 집중이 되는 곳.

글을 읽듯이 말고 말하듯이 읽어달라는 주문에..

(사실,, 제 글이 거의 대화예요..) 란 대답은 차마 못하고

대화의 주체가 헷갈리면 안 되니까 각각의 대상에 빙의해서 연기를 한다.


아이들 동화책 읽어주던 스킬이 여기서 이렇게 유용할 줄이야..

원래 실력대로 배꼽이 빠지게 실감 나는 연기는 차마 못했지만 나름은 선방한 것 같았다.


4천 자의 글은 생각보다 길었다. 이십여분의 시간이 흘렀고 중간중간 버퍼링이 안 되는 구간은 찬찬히 다시 읽으면 마법의 편집으로 다듬어 주시겠다고 했다.

내 녹음이 끝나갈 즈음엔 앞에 다음 작가님과 가족들이 보였다.

아빠가 녹음하는 모습을 보는 아이들에게도 좋은 경험이겠지?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엄마 혼자 서울에 가면 안 된다고 울고 불고 하는 막내 덕에  '좀 일찍 출근 하마'하고 몰래 올라왔지만..

언젠가 멋지게 글로 빛나는 엄마의 모습을 내 아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졌다.



참 제목 한번 잘 지었다.


나도 작가다.


맞다! 나도 작가다!

만여 건의 글 중에 당당히 뽑힌 브런치 작가!


당당히 내 글로 목소리 출연을 해서 출연비도 받고 연말에 수상집이 나오면 소정의 인세도 받게 된다고 들었다.

내 인생 첫 인세를 브런치가 가져다주는구나.


내 매거진의 제목이 '브런치가 브랜드가 될 줄이야!' 다.

제목 따라가는 가수의 운명처럼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기만 했는데 브런치로 강의도 했고 전자책도 내고 사랑받아 녹음도 하고 수상집도 나온다.


이쯤 하면 브런치는 내 요술램프 속 요정 이름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젠 뭘 생각하면서 램프를 문질러 볼까?


브런치를 통해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 이런 원대한 꿈은 어떨까?


브런치라는 내 잠재의식 속의 지니를 불러내 본다.


'브런치야~ 내 소원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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