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 때 쓰는 영어는 빡새다
한국에서 외국인들과 쓰는 영어나 외국 여행을 가서 고객으로서 쓰는 영어는 상대적으로 쉽고 내가 정말 영어를 잘한다고 착각하게 한다. 하지만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은 이미 한국식 영어발음에 익숙한 경우가 많고 자신들이 한국이라는 외국에 와있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의 영어에 대해서 큰 기대를 갖지 않고 듣는다. 또한 외국 여행 가서 돈을 쓰며 하는 영어의 경우, 우리를 대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을의 위치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우리의 영어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영어권 현지에서 한국식 영어발음에 익숙하지 않은 현지인들과 일하면서 써야 하는 영어는 어떨까? 우선 내가 있는 곳은 한국이 아니다. 회사에서 현지인들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영어발음으로 말할 때 인내심을 가지고 이해하려 하거나 틀렸다고 고쳐주지 않는다. 직장 생활하는 것도 힘들고 할 일이 산떠미같이 쌓여있는데, 만약 내가 의사소통을 제대로 못해서 회의를 지연시키거나 못 알아듣는다고 계속 물어보면 상대방은 짜증만 난다. 우리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자. 어떤 동남아출신 직원이 이상한 발음으로 한국말을 해서 알아듣기가 힘들고, 물어봤던 말을 계속해서 물어보면 우리는 어떨까? 정말 부처님이 아닌 이상 일반적인 사람들은 웬만하면 피하려고 할 것이다. 안 그래도 바쁜데, 내가 그 동남아출신 직원까지 챙길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호주 사회생활 초년기의 회사에서 회의가 있을 때 나는 너무 긴장이 됐다. 회의를 잘 알아들을 수는 있을까? 내가 뭔가를 몰라서 물어봤는데, 상대방이 내 영어발음을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지? 또 나한테 해줬던 말을 한번 더 물어보면 영어 못해서 계속 물어본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하는 걱정들이 너무 많았다.
한 번은 Cadreon (현 Kinesso)에서 근무할 당시 미국 본사팀과 우리 호주팀 미팅이 있었다. 기존 플랫폼에 대한 업데이트 내용을 본사 쪽에서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우리 팀의 의견과 질문을 묻는 자리였다. 그 회의는 오후에 있었는데 나는 그날 출근하고 아침부터 긴장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내가 말을 많이 해야 하는 회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긴장이 됐다. 드디어 회의 시간이 되고 미국 본사팀이 화상으로 회의에 접속했다. 우리 호주 팀도 미리 회의실에서 본사팀을 기다리고 있었다. 본사팀은 플랫폼에 관한 변경 사항 및 설명을 해주었지만 너무 빨리 말해서 정확하게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아마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회의에 들어가면 대략 60% 정도밖에 이해를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니 어떻게 질문을 할 수 있으랴? 나만 빼고 우리 팀은 팀장이나 팀원 할 것 없이 수 없이 질문을 했고 나는 본사팀의 설명을 잘 이해할 수 없어서 조용히 가만히 앉아있었다. 등에는 이미 식은땀이 너무 많이 났고 나도 뭐라도 한마디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꽉 차서 숨쉬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결국 나는 너무 긴장해서 한마디도 못했고 아쉽게도 회의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정말 나는 왜 용기를 내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했는지 그 상황이 너무 화가 났다. 그리고는 다음부터 틀리더라도 일단 말하고 보자는 다짐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 사건 이후에 점차 회의 시간에 질의응답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지금은 회의 시간에 너무 말을 많이 해서 오히려 줄여야 할 정도로 상황이 많이 바뀌었지만 그 당시에 나는 너무 간절했고 답답했다.
나는 어떻게 하면 나의 부족한 영어 리스닝 스킬을 보완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고 다음과 같은 방법을 써봤다.
1. 회사에 친한 친구를 만들어 놓거나 회의가 끝나고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중 친절해 보이는 사람한테 회의 주제나 회의 내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다. 그러면 상대방은 신이 나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회의 내용을 요약해서 얘기하기도 하고 나는 사람들이 회의 주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돼서 회의 내용을 잘 이해 못 했을 때 더 쉽게 파악할 수 있다.
2. 회의 중에 누군가 내가 모르는 영어 단어를 말했을 때 그 단어를 한글로 노트장에 써놓고 나중에 회의가 끝나고 사전을 찾아보고 그 단어를 계속 숙지한다. 내가 만약 스펠링도 모르는 단어를 영어로 써놓을 경우 옆에 앉아있는 사람이 볼 수 있어서 일부러 한글로 쓰면 남이 알아보지 못하니 걱정할 필요도 없고 나중에 그 단어를 사전에 찾을 때 용이하다.
3. 어떤 회의이든 회의 시작하기 전에 내가 모를 만한 단어들을 미리 찾아보고 회의 내용에 관해서 사전조사하고 회의에 참석한다. 무슨 내용을 회의할지 알고 들어가는 회의는 그렇지 않은 회의에 비해서 회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능동적인 회의가 될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4. 단순히 회의 자체만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실력을 늘리려고 노력한다. 온라인을 통해서 언어교환 파트너를 찾아서 호주식 영어 발음과 표현 그리고 호주 사람들의 회사 에티켓을 숙지하고 지속적으로 영어공부를 한다.
준비와 반복은 언어학습에 정말 중요한 요소이고 대게 실패하지 않는 방법이다. 그리고 너무 안 들리는 단어도 계속 찾아보고 호주식 발음을 익히고 노력하다 보면 그게 한두 단어씩 쌓이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기하급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어나 표현들이 늘어나게 된다. 결국 영어는 물리적 시간이 절대적이다. 물리적으로 수많은 시간을 반복했을 때 정말 자기 것이 되고 드디어 언어가 아닌 정작 중요한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기가 오게 되는 것이다.
다음 이야기…“호주는 인종차별이 심하다던데?”